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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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당히 편협한 독서 취향을 지녔다. 자서전이라고 읽은 몇 권은 대부분이 자기 성공담을 다룬 것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성공담이 신나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그들을 보여주기보다 한편의 시간 때우기 소설로 다가왔다. 대필 작가들이 쓴 글이나 깊이 있는 이야기가 빠진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선택이 나빴거나 그 당시 다른 읽을거리가 없었던 탓도 있다. 아주 정말 가끔 읽는 평전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일 때가 있지만 말이다. 

러셀 베이커 자서전을 선택한 것은 한 독자의 “자서전이란 이런 것”이란 글 때문이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좀처럼 읽지 않던 나에게 이 문장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1982년 퓰리처상 평전/자서전 부분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낯선 작가의 글이다 보니 혹시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펼쳐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러셀 베이커에게 빨려 들어간 것이다. 

처음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맹모삼천지교나 한국 엄마들이 떠올랐다. 자식을 성공과 공부를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을 위해 생활비를 쪼개 최고의 선물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그의 기억과 추억은 냉정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미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지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고부간의 갈등, 생활고, 연애, 자식의 성장과 성공 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다시 최근 최인호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고 추억한 글들을 연상시켜주었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아버지가 빨리 죽어 어머니가 힘겹게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과 작가가 된 것이다. 

시간적으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20대 중반까지 다룬다.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만 그의 과거를 좇아가다보면 그 시대의 사회 모습을 만날 수밖에 없다. 특히 공황기에 그들의 겪은 고통과 힘겨운 상황은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현재와 달라 굉장히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의 풍요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1차 대전을 비롯한 전쟁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것은 현재 미국인들이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보는 시선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현재의 우리도 그런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말이다.

가난은 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게 만들고, 한 곳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할머니 곁을 떠나게 만들고, 외삼촌에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그곳마저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사는 친한 친구와 헤어지게 만들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경제적 상황적 악화가 그들이 혐오하는 삶 속으로 밀어 넣지만 역시 어머니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한다. 비록 그 시대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시대적 한계는 러셀과 동생 도리스의 행동과 성격을 대비해도 금방 드러난다. 적극성이나 사업 수단이 더 뛰어난 도리스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 선택에 제한이 생기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다. 물론 이것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겪은 실패와 불안과 두려움 등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적극성을 키우려고 아들을 신문팔이로 만들거나 좋은 성적을 위해 옆에 붙어 공부를 시키거나 좋은 친구를 만나라고 하는 행동들이 우리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신문팔이의 경우는 조금 별개지만. 이것은 아마 적극성 외에 경제적인 이유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의 미래가 아이들의 과거”란 말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다. 이것은 앞부분에 나오는데 어릴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성장이란 제목처럼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그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유치하고 비열한 행동들은 아이들이 단순히 과거의 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소년의 성장기로도 읽을 수 있지만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빠르게 읽으면서 한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양한 주제들과 역사로 이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멋진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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