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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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헌데 가끔 이런 것을 무시하고 읽는 경우가 많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마나님의 280일이란 단어에서 임신을 떠올렸어야 하고, 표지 그림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도 읽기 전에 놓쳤다. 요즘 많은 책들이 나오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정보를 얻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가끔은 제목을 오독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소설 속 공생원의 행동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닐까 멋대로 짐작해본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읽으면서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읽은 후 표지가 나타내고자 한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시대는 중종반정 후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단지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현대인과 별 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가문의 영광과 관련된 일은 생각할 바가 많다. 그 일이 무엇이냐고? 공생원 아버지 공령이 관료가 된 형님 공희달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다. 

잘 사는 형님에게 좀 신세지는 것이 무엇 대단한 일이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구조적으로 한 가문에 정착된다면 다른 문제다. 조선시대 양반은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야만 했다. 가문에 한 명도 합격자가 없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을 위해 온 가족이 한 사람이 합격하기를 바라고 뒷바라지를 한다. 한 번 합격하면 가문의 영광인 동시에 가족들이 이전에 고생한 것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이란 무형의 것에는 문제가 없는데 보상이란 부분이 늘 문제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관료가 받을 수 있는 녹봉의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지 너무 뻔한 것 아닌가. 요즘 누구네 형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덕을 보려는 가족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비껴나갔는데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공생원 마나님의 임신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다. 공생원과 최 씨 마님의 결혼이 어떤 의도에서 이루어졌고, 이 둘 사이가 어떠했는지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사실을 말하고, 마나님의 아들 얻기를 위한 지극한 정성을 풀어놓는다. 단지 이런 이야기라면 단편으로 충분했을 텐데 여기에 한 의생의 말에서 생긴 의심이 가슴 한 곳에 똬리를 틀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한마디로 한 소심한 남편의 의처증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공생원이 결혼 이야기를 듣고 최 씨 셋째 딸을 보러갔을 때 느낀 실망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래에도 나오듯이 셋째 딸은 미모가 출중해야 하는데 늘 예외는 있다. 늘 시험에서 낙방하는 그가 호구지책이자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결혼이다. 그런데 최 씨 마나님이 보통이 아니다. 공생원보다 덩치 큰 것과 말과 행동이 드센 것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늘 마나님에게 잡혀 산다. 공생원이자 공처가다. 이런 그에게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을 수 없다. 서의원이 그에게 심어준 의심이 마나님 뱃속 아기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의처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같이 살아온 동안에 그가 느낀 불안과 부러움과 질투와 사랑이 뒤섞여 있다. 자신은 부르지 못하는 ‘송아’란 이름을 부른다거나 자신과 다른 멋진 외모를 가졌다거나 아내와 자주 만난다거나 하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의심을 자기 주변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 바로 이 소설이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넘어갈 때마다 용의자는 지워지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뭐 그 덕분에 그가 마나님을 발길질 한 번에 나뒹굴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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