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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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 앉아 있던 그 앞에 한 여자가 말도 없이 앉는다. 그리고 말한다. “날...... 좀 데려다줘요.” 황당한 상황이다. 이렇게 두 남녀 준성과 서진은 만난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은 한 해커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광고판에서 살던 한 여자 모델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순간만 해도 준성은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랐고,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해커와 광고 모델의 만남은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준성에게 필요가 아닌 순간의 욕망에 지배당해 상품을 사는 서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들의 이익을 부수기 위해 프로그램 크랙을 만들고 배포하는 그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 속에 빠져 사는 그녀를 만난 것은 어쩌면 극과 극은 통한다는 통설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가 그의 욕망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욕망만으로 그가 그녀의 삶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거짓과 기만 속에서 자란다. 이미지가 만들어낸 환상이 사람을 현혹시키고, 필요가 아닌 욕망이 소비를 촉진시킨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보다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에 더 신경을 쓰고, 그 때문에 자신을 점점 더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현명하다는 말이나 탁원한 선택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넘어가면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에 멸시의 대상이 되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서진이 홈쇼핑 속옷 모델로 벗고 돌아다닐 때 그녀의 탁월한 미모가 한 몫을 했지만 시청자들에겐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그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살아 움직이는 마네킹만 존재한다. 성공을 위해 자신을 던지지만 돌아온 것은 언제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뿐이다. 그 일상의 끝에 만난 사람이 바로 준성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바라는 성공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화려한 소비와 자신을 우러르 볼 사람을 바라는 그녀의 것과 반대편에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공허와 욕망에서 비롯한 결핍들을 그는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서진의 욕망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받아들일 뿐이다. 그녀의 거짓말을 알게 되어도, 그녀의 일탈을 알게 되어도, 뒤틀린 욕망을 알아도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도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그녀 속에 자리한 욕망이 텅 비거나 공허가 채워지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와 욕망 뒤에는 순수함이 있다. 이 순수함은 그녀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트릴 뿐이다. 고가품으로 치장하고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 않던 그녀가 영화판에서 받은 감동은 그 순수를 아직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려한 광고 세계 속에서 볼 수 없던 투박함과 진솔함은 강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늘 유혹은 그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기 전까지.

준성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녀가 사채를 이용해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들을 사는 것이나 단숨에 인기를 얻기 위해 PD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다른 두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이 괴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춰진 모습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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