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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일들
신재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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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범죄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다년간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돋보인다. 한국형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기존에 본 한국 스릴러 소설들보다 나아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결말은 예전에 읽었던 한국 추리소설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던진 것 같다.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어 더 간결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연쇄살인범 유기훈의 프로파일링과 정보를 강의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최재준 형사의 강의가 끝난 후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소위 높은 분들이 그에게 식사 초대를 한다. 사건을 핑계되고 눈치를 받으면서 현장으로 달려간다. 이때 한 노인이 현장으로 달려가려는 최 형사에게 한 마디 한다. “흔한 일들에 연연하면 형사 생활 오래 못 해요.”라고. 이 장면을 통해 그의 아슬아슬한 정신세계의 일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보광동 모녀 살인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연쇄살인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이 소설은 기존 연쇄살인범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의 공식을 상당히 많이 따른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다음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고, 범죄 현장은 깨끗하게 정리된다. 증거는 단순히 형사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 남겨진 것이고, 진범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형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현장을 수사하고 주변을 탐문하면서 수집된 증거를 분석하는 것이다. 과학수사와 법의학적 정보들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범인이 있으면 소용이 없다. 이미 그 유명한 미국 과학수사물 CSI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는가. 형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하면서 실수하기를 기다리거나 남겨진 증거나 상황들을 통해 하나의 범인상을 만드는 것이다. 

최 형사는 서울청 프로파일러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통해 범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하지만 이 직업이 쉬울 리가 없다. 끔찍한 현장을 계속해서 봐야 하고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참혹한 현장을 재구성하고 앞으로 펼칠 살인을 상상해야 한다. 이것도 단서와 증거가 충분히 늘어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사건이 늘어나면 심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더 강해진다. 모녀 살인이 그 아버지 살인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면서 경찰과 최 형사를 비롯한 팀의 업무는 과부하가 걸린다. 특히 최 형사는 더 심해진다. 여기서 첫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인 차아령의 등장은 또 다른 참혹한 연쇄살인사건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간다.

가독성과 더불어 사건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피살자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재구성하는 장면이나 혈흔의 모양 등은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감정이입을 차단했다. 덕분에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감정 소모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 형사의 감정이 과도하게 분출되면서 충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끔찍한 현장이 최 형사의 감정에 파묻히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이런 미묘한 균형감이 뒤로 가면서 사실성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대결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마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결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건과 사건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그 이외의 재미가 보이지 않는다. 같이 등장하는 형사들의 캐릭터가 분명한 윤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차아령의 심리를 좀더 세밀하고 깊게 다룬다거나 최 형사의 복잡하고 어두운 심리를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런 추가 작업이 작품 전체의 균형을 깨트린다는 생각을 작가가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본 수많은 한국형 스릴러가 감정의 남발이나 반전에 너무 신경을 써 아쉬움을 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살인사건을 한두 개 줄이고 등장인물들 내면을 더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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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제프리 디버의 장편소설.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가 제프리 디버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화려하게 귀환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제프리 디버가 새롭게 창조해낸 007 시리즈 <카르트 블랑슈>는 작가의 세심하고 신중한 조사, 빠른 속도감을 주는 문체, 다이내믹한 액션 등이 이언 플레밍의 명성과 현대적 재구성으로 결합되면서 출간 이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007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프리 디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소설이다. 시리즈 5로 적힌 것도 의미심장하다. 

 '밀리언셀러 클럽' 119권. 나오키 상, 에도가와 란포 상, 추리작가 협회 상, 이즈미 교카 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수상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소설. 30여명의 남자들과 단 한 명의 여자가 무인도에 표류되면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리노 나쓰오는 특유의 시니컬한 문체로 독특하게 완성시켰다. 제44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작.  

최근에 미로 시리즈로 다시 나를 사로잡은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다. 무인도와 홍일점이 과연 어떤 사건을 만들어낼지, 인간의 바닥은 어디까지 드러날지 궁금하다. 

<이방의 기사>와 더불어 신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인 시마다 소지의 청춘미스터리물. 일본의 고하라 히로시(시인, 평론가)가 1980년대 일본의 대표작품 중 하나라며 극찬을 했던 작품으로 제94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에서 8위를 차지하며 대중성도 갖춘 작품이다.
  

살인자일지 모르는 여인과 청년의 불안한 사랑에 서스펜스적 요소까지 있다니 과연 시마다 소지다. 이 소설을 읽는다면 나는 과연 어떨까 계속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권. 1995년 첫 발표되어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미스터리 평론가와 독자들을 충격과 놀라움으로 경악케 한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극악무도한 살인마들과의 심리적 소통을 통해 사건 해결 및 차후의 피해자를 방지하는 임상 심리학자 토니 힐의 활약을 다룬 작품이다.  

시리즈의 첫 권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호평은 더욱 눈길을 끈다. 1995년 첫 권이니 그 뒤로 상당히 많이 나왔을 테니 많은 즐거움이 남아있다. 

 시리즈의 대단원 <마지막 행성>은 <노인의 전쟁>의 주인공 존 페리, 그의 부인 캐시를 빼닮은 <유령여단>의 장교 제인 세이건, 동지이자 원수였던 샤를부탱의 딸 조이라는 독특한 가족 구성을 통해 치열한 우주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 또다시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소시민 영웅 존 페리는 우주개척연맹과 외계집단 '콘클라베' 사이에서 개척민들의 미래를 위해 뒤엉킨 사건의 실마리를 매듭짓고 그 속에 내재된 배신과 음모의 함정을 파헤친다. 

시리즈의 마지막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아쉬움을 남겨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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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그림자
스테파니 핀토프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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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뉴욕 주 돕슨에서 10년 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퇴근 무렵 온 전화로 현장이 윙게이트가 저택임을 알려준다. 뉴욕 형사 출신이었다가 여자 친구를 1904년에 있었던 제너럴슬로컴호 화재 사건으로 잃은 사이먼 질이 여기서 경찰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과거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의 평온을 깨트리는 이 살인사건이 과거 기억을 되살려준다. 이때 그에게 온 한 통의 전보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유명한 범죄학자 앨리스테어 싱클레어가 범인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범인 이름이 마이클 프롬리라는 것까지 알려줄 정도다. 이 둘의 만남은 현대 과학 수사의 결합이다. 처음에는 그 윤곽이 분명하지 않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뚜렸해진다.

싱클레어 교수가 프롬리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프롬리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범죄심리학과 프로파일링을 위한 기초 작업을 교수가 한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극히 최근에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으니 한 세기 전에 프랑스 범죄학자 알렉상드르 라카사뉴가 더 작은 규모이지만 비슷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한다. 당연히 작가가 싱클레어 교수의 프로파일링 본보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계속된 찜찜함을 날려준다. 앞에 이런 정보들이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보통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프롬리가 범인상으로 만들어진 다음에는 그가 범인임을 보여주는 단서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의 과거사가 이런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어느 수사나 마찬가지지만 한 번 방향이 설정되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프롬리의 행방을 계속해서 쫓고 그가 범인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 교수와 프롬리가 연결된 부정의 고리가 보이고 환상의 콤비처럼 보였던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 사이로 악의가 끼워들고 수사에 혼선이 생긴다. 그리고 읽는 동안 그 틈새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작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20세기 초는 아직 지문이 증거자료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때다. 하지만 선구적인 형사라면 이 증거를 무시하지 않는다. 거기에 싱클레어 교수의 범죄학 이론은 태동기 과학 수사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충분히 시대정신이 이런 상황을 용인할 정도가 아니라는 한계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형사들이 범인을 찾는데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그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방법이 있다. 현재 같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 없던 시대다 보니 범인과 형사의 대결은 또 다른 균형을 이룬다. 누가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한 발 더 앞서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시대를 1905년으로 옮겼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현대적이다. 물론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지문이나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논의 등이 바로 이런 시대의 모습이다. 살해당한 세라의 과거 행적에서 페미니즘의 강한 정치색이 드러나는데 이것도 뉴욕 시장 선거의 부정과 함께 그 시대를 엿보는 재미를 준다. 분명히 현재와 다른 뉴욕 경찰의 생활상은 이미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보아왔지만 여전히 낯설다. 이 낯선 환경이 색다른 재미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범죄수사의 과도기를 다루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광고 문구처럼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나쁘지 않다. 낯익은 지명의 낯선 풍경을 통해 충분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조금 처지는 듯한 전개와 긴장감이 부족한 구성은 아쉬움을 준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만들어 놓았지만 아직 캐릭터가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역자의 글을 보면 이미 두 권 더 출간된 것 같다. 지금보다 다음이 더 기대되는 것은 역시 만들어지고 있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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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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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살인의 해석>이란 처녀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몰랐지만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사실 전작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읽으면서 받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역자의 글을 통해서다. 읽으면서 왜 이런 장황한 설명이 나오지 하는 의문에 대한 조그만 해답도 얻게 되었다. 전작을 읽게 되면 이번 소설에 대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장면은 9.11 테러를 연상시킨다. 1920년 9월 16일 낮 12시 마차에 실린 폭탄이 월 가를 초토화시킨다. 적지 않은 폭탄이 실렸기에 그 피해도 상당하다. 물론 9.11 같은 엄청난 사건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다. 그것도 미국 금융의 중심가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두 주인공이 사건을 마주하고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형사반장 리틀모어와 영거는 이렇게 엄청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영거가 사랑하는 콜레트의 알 수 없는 사건도 같이 엮이면서 흘러간다.

사건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당연히 월 가 폭탄 사건이고, 다른 것은 콜레트를 납치하거나 살해하려는 사건이다. 당연히 이 두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리틀모어고, 영거는 당사자와 직접 연결되면서 사건과 엮인다. 월 가의 사건이 단순한 테러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면 콜레트는 왜 그녀가 표적이 되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특히 이상한 여자들이 콜레트를 찾아오는 이상한 일들이 그렇다. 물론 현대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방문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녀가 퀴리 부인의 애제자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언제나 큰 사건이 발생하면 이 사건을 둘러싼 영역권 문제가 생긴다. 거대 은행 재벌 JP 모건 은행 앞이자 재무부 근처에서 터진 것을 감안하면 일개 관할경찰이 전담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다. 단순 강도 사건이라면 충분할 수 있지만 그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면 정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교묘하게 이것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내었는데 책 중간에는 사실 조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가독성이 더 좋아지고 새로운 실마리들이 하나씩 풀려나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현재까지 미해결 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콜레트의 사건은 처음에는 왜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는지 잘 몰랐다. 이 답을 알려주는 것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황당하다. 하지만 그녀의 사건을 통해 영거의 2차 대전 당시 모습과 과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한 축인 콜레트의 한스앓이와 동생 뤽의 병에 대한 원인이 같이 다루어진다. 콜레트를 통해 사건의 공간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가고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등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만남을 통해 작가는 프로이트 후기 이론의 핵심인 죽음본능을 작품 전체에 녹여내게 된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거의 700쪽이다. 앞부분에 왜 이런 장면들을 넣었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현재를 잊고 그 시대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통해 우월감에 살짝 도취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달리다보니 결코 많은 분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 예상한 것 이상으로 가속도가 더 붙는다. 그 시대 상황과 정치적 음모가 뒤섞이고, 현재의 욕망이 과거에 다시 투사되면서 단순한 과거 사건을 넘어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영거를 통해 2차 대전이 끼친 심리적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잘 몰랐던 혹은 잊고 있던 전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의 아주 인상적인 첫 문장에서 단어 하나만 바꾼다면 그 사실은 더 분명해진다. “전쟁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정말로 힘든 건 그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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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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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이다. 처음에는 이 제목에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새롭게 와 닿았다. 낯익은 타인이라는 모순된 단어 조합이 첫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그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자신을 찾는 K의 3일 동안의 여정을 시간대별로 보여준다. 분명히 낯익고 함께 살아온 그들이 주는 낯선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말이다. 그의 3일 여정은 어떻게 보면 자신을 찾는 구도 과정이고, 어떻게 보면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다.

주인공 K는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말 동안에는 자명종을 켜지 않는데 울린다. 아내가 켰을까? 아니다. 아내는 기계치다. 이런 낯선 생각을 하고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본다. 놀란다. 낯선 누군가가 자기 앞에 있다. 자신이다. 소변을 보고, 면도를 한다. 스킨을 바른다. 그런데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것이 아니다. 낯설다. 이 낯익은 공간에서 벌어진 낯선 환경이 신경을 건드린다. 이것은 부엌에 있는 아내에게서도 느껴진다. 분명히 자신의 아내인데 낯선 타인 같다. 이렇게 K는 낯익은 사람들과 낯익은 공간 속에서 낯선 기분을 느끼고 자신을 잃어간다.

그가 가장 먼저 잃은 것은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상실은 그가 가진 인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현대인에게 핸드폰은 단순히 전화기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그 속에 담아놓고, 많은 것을 핸드폰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자기 핸드폰을 찾기 위해 전화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바로 회신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연락이 닿았다. 이 연결이 낯익은 타인에서 낯선 타인과 환경 속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속에 만난 사람들은 재미나게도 낯익은 사람들의 반복이다. 한 사람이 다른 직업과 위치에서 낯익은 모습으로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익숙한 일상의 변화를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낯선 감정을 깨닫게 된다고 해도 K처럼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품고 K의 모험 속에 빠졌다. 비록 그 모험이 너무나도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 때문에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K가 느끼는 이질감이 거울 이미지와 중첩되기도 했다. 혹시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거울 속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그런 평이한 구성을 벗어났다. 자명종과 자신의 집을 시발점으로 삼으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환경을 구축했다. 그가 잔 곳과 상관없이 매일 7시 자명종 소리에 자기 방에서 깨기 때문이다.

K의 모험은 낯익고 낯선 세계를 떠도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를 되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사람의 반복적인 등장과 낯선 환경은 묘한 결합을 이루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그 과거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기억과 추억 여행이다. 하지만 이 기억과 추억은 낯익은 타인들과 잊고 있던 자신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강한 지진은 세계를 뒤흔들어 세계의 틈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준다. 더 깊이 들어가면 머릿속이 더 복잡할 것 같다.

빠르고 흥미롭게 읽힌다. 하지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불가해의 세계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나’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낯익은 세계가 진짜인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심오한 철학세계로 빠진다. 능력 밖이다. 이 부분은 그만하자. SF소설이라면 다중우주 혹은 평형우주 이론을 내세워 다르게 풀었겠지만 작가는 그럴 목적이 전혀 없다. 곳곳에 묻어나오는 자전적인 내용들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가독성에 비해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첫 번째 전작 장편소설이란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현대물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보다 나중에 더 많이 생각날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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