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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펼쳐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다. 한 작가는 좋아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읽지 않았고, 다른 한 작가는 거의 전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달리기다. 두 작가 모두 거의 매일 달린다. 하루키의 글을 보면 달리지 않는 날이 없는 모양이다. 김연수의 경우는 그보다는 적지만 거의 매일 달린다. 중간에 쉰 날도 보인다. 이런 달리기와는 상관없겠지만 이 차이만큼 이 둘의 작품을 읽었다.
이번에 책 정리를 하면서 지난 번부터 어디 있을까 궁금했던 <7번 국도>를 찾았다. 얼마 전 새롭게 쓴 책이 나온 것을 알지만 그 당시 괜히 처음 쓴 글이 읽고 싶었었다. 시간되면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어디가 바뀐 것인가 비교해보고 싶은 황당한 기분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혀 실현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전에 그가 왜 이 책을 번역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 책이 있었는데 이번에 해소되었다. 그것은 달리기에 대한 책이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니 <달리기와 존재하기>가 보인다. 그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01권의 그의 이름으로 검색된 책들이다.
작가의 말에 이 책 제목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그것은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다시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와 연결된다. 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이 에세이가 담고 있는 핵심 요소가 들어있다. 그것은 추억, 달리기, 인생 등이다. 특히 달리기는 전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경험이다. 그의 엄청난 예찬을 읽다보면 나 자신도 밖으로 나가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동이 마구 생긴다.
사실 나는 오래 달리기를 잘 못한다. 학창시절 체력장을 위해 1킬로미터를 달려야 할 때도 반 정도는 걸어서 갔다. 군대에서 구보할 때는 중간에서 어쩔 수 없어 같이 발을 맞춰 완주했지만 혼자 달리라고 했다면 아마 중간에 낙오했을 것이다. 이런 나에게 달리기는, 특히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지금도 한 2백 미터 정도 달리면 숨이 차고 다리가 후달린다. 전력 질주가 아닌데도. 그 대신 걷기라면 힘들어도 비교적 오랫동안 할 수 있다. 한때 종로 바닥을 걸어서 헤집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것을 아주 즐겼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비교적 무겁게 쓴 내용들이 많아 하루키의 에세이와 알게 모르게 비교하였다. 달리기 사랑이 지극해서인지 그것이 곳곳에 보인다. 에세이 한 편의 분량도 차이가 난다. 하루키는 잡지 연재 때문인지 겨우 두세 쪽 정도인 반면 그는 긴 것은 열 쪽도 넘는다. 한 쪽의 분량을 생각해도 적지 않은 차이다. 덕분에 그의 세계에 조금 더 다가간 기분이 든다. 그가 살고 있는 일산과 호수공원은 가끔 가는 곳이라 낯익다. 아마 오후 6시경 호수공원에 간다면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찾을 것 같다. 한 번 정도는 나도 호수공원을 달릴지도 모른다. 한 2백 미터 정도.
모두 다섯 장으로 엮었다. 이 분류가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발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의 달리기 예찬과 삶의 흔적들을 읽다보니 공감을 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그 나이에 전혀 하지 못한 생각을 그가 한 것을 보고 나 자신은 뭐 했나? 의문이 생겼다. 그가 던지고 답한 몇 가지는 가슴 한 곳에 와 박힌다. 아프다. 부럽다.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생각과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단지 일상에 매몰되어 모든 것을 잊고 있지만. 소설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지나온 삶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뭔가가 있다. 아마 비슷한 연배이기에 더욱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김연수를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