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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 토스카나에서 시칠리아까지, 슬로푸드 레시피와 인생 이야기
제시카 서루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가 브라운 대학의 연구기금을 지원받아 1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배운 요리법을 적은 책이다. 단순히 요리법 책이라고 하기에는 저자가 만난 12명의 이탈리아 할머니들과의 교감이 너무 깊다. 책의 구성도 한 할머니를 만나고, 그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과 요리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는다. 그 다음에 그 할머니가 요리한 음식에 대한 요리법을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적어놓는다. 솔직히 말해 요리법의 경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와 단어가 수없이 나와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유이하게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쿡방이다 보니 몇 가지 들은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은 그 요리를 직접 먹어보지도 눈으로 보지도 못해 그 맛이나 모양을 충분히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각 요리법마다 사진이 없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기는 하다.
저자가 할머니를 찾아가는 방식에도 정해진 규칙이 없다. 처음 찾아간 할머니는 어릴 때 자기집 가사도우미의 어머니다. 인맥을 이용해 첫 만남을 가졌고, 이 다음도 소개를 통해 이어진다.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면 요리법이 나오고, 다시 다른 할머니와의 이야기와 그 할머니의 요리법이 나온다. 단순한 구성인데 앞에 나온 간단한 에세이가 그 요리법에 강한 이미지를 덧씌운다. 그리고 각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장, 첫 쪽에 간단한 격언 같은 것이 실려 있다. 이 말은 할머니들의 인생 신조 같은 것이다. 무심코 지나가다가 어느 순간 잠시 숨을 고르며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이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이탈리아 요리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요리가 전부였다. 파스타, 피자, 젤라또 등이다. 쿡방에서 샘 킴이 자연주의 이탈리아 요리를 할 때도 그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프랑스 요리의 기초를 만들어 준 곳이 이탈리아였음을 감안하면 나의 이 무지와 무식은 참으로 부끄럽다. 그리고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보면 더욱 더 부끄러워진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숨겨진 공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몇 가지 요리는 우리의 나물 요리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어떤 요리는 삼계탕이 떠오르기도 했다. 먹는 것만 좋아하는 내가 잠깐이나마 요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매력이 있다.
지금도 편협한 입맛이지만 예전에는 더욱 심했다.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토속적인 입맛은 새로운 도전을 많이 꺼렸다. 익숙하거나 비슷한 음식은 먹었지만 조금만 더 토속적인 음식이 나오면 당장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런 일들은 조금씩 더 외국에 나가고,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 음식을 찾아 먹으로 다니면서 점점 사라졌다. 어떤 때는 너무 도전적이다. 물론 금방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이 요리책을 보면서 거의 접해보지 못한 토끼 고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큰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파스타를 비롯한 많은 이탈리아 요리가 대중적으로 퍼진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슬로우푸드를 추구한다.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요리법은 이것과 잘 맞아 떨어진다. 아직도 예전의 방법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음식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달콤한 디저트는 새벽에 이 책을 읽을 때 허기를 더 많이 느꼈다.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이야기는 머릿속에 커피향을 채워주었고, 입안 가득 침이 고이게 했다. 하지만 요리법을 읽으면서 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오면 멍해지고 생각이 잠시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이성이 움직인다. 지저분해지는 부엌과 낯선 용어와 요리 도구 등이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넣는다. 그렇지만 그 맛난 음식들을 먹고 싶다는 욕망은 커진다.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요리책이 될 것이고,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요리가 있는지 잘 알려주는 에세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