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하늘 아래, 아들과 함께 3000일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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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의 신작 한 권을 읽었다. 

그 이전에는 그의 소설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읽은 책이 거의 없다. 

왠지 모르게 사 모으지만 잘 읽지 않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어딘가에서 아내 없이 홀로 아들을 키웠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는 오래 전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하니 이전 아내의 이름이 바로 나온다. 

그 유명한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다. 

두 부부 사이의 이혼 사유는 모르고, 사실 큰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혼 후 홀로 낯선 타국에서 아들을 키웠다는 부분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3000일, 8년이 넘는 기간이다. 

아들 나이 열 살에 이혼하고, 그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홀로 키웠다. 

솔직히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키우는 곳도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다. 

프랑스어가 유창하다면 좀더 쉽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유창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좋은 이웃과 친구들이 있었고, 둘의 노력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이 둘의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무난하게만 넘어간 것은 아니다. 

사춘기와 코로나 19 등이 겹치면서 결코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 에세이는 그 나날들의 시간 순 기록이다.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의 시선이 곳곳에 드러난다. 

프랑스를 계급사회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서 어떤 부분 때문일지 궁금했다. 

현실적으로 일본인 외모를 가진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분은 아주 현실적이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2개 국어를 하지만 일본어는 일본인 수준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일본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자신을 진로를 완전히 정하지 못한 상태라 시간이 필요하다. 

진로에 대한 부분은 이 책에 여러 번 나온다. 

상당히 유명한 작가란 사실을 생각하면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럴 마음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그의 글에서 나왔듯이 그 정도 자산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네 살의 소년이 열여덟 살 청년이 되기까지 기록이다. 

프랑스에 살지만 아직 그의 머릿속에는 일본의 생활이 그대로 남아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차려 먹기도 하지만 꽤 많은 수가 일식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아이의 식성이 바뀌는 부분도 나온다. 

코로나 19 때문에 자신처럼 밖에서 즐겁게 놀지 못하는 아들을 안타까워한다. 

다른 프랑스 부모라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한 부분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츠지가 아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아들도 요리를 배워서 한다. 

후반부에 오면 인스턴트 대신 홀로 만들어 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대단하다. 

 

음식과 함께 꾸준이 나오는 것이 음악이다. 

츠지 히토나리가 밴드를 하는데 아들도 음악 기기를 사서 자신의 음악을 만든다. 

작가의 삶과 더불어 음악가의 삶, 아버지의 삶을 함께 산다. 

한 번도 일반 월급쟁이처럼 살 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살짝 부러웠다. 

다르게 생각하면 글이나 밴드 활동으로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요리한 것들이 요리 책이 되고, 가끔 쓴 일기는 이렇게 책을 묶여 나온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것도 바로 그의 열정과 노력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을 키우는 것은 민감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졸업하고,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눈시울을 붉힌다. 

새롭게 자신들만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곳곳에 프랑스, 아버지, 가족, 아이의 성장 등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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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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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편의점>애서 <여자의 얼굴을 한 방문자>로 만난 적이 있다.

이전 글을 찾아보니 SF와 스릴러 요소가 담겨 있다는 글이 보인다.

이번 소설에서도 SF 요소는 필수적이고, 미스터리까지 넣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기본으로 한 소년의 여행을 그려낸다.

소년의 여행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멸망한 후 홀로 어머니의 흔적을 쫓아 나간다.

그 여정에 동참하는 것은 죽음의 화신이라고 자칭하는 검은 개다.

검은 개와 함께 길을 걸어서 어머니의 흔적을 쫓는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벙커 속에서 소년은 자랐다.

어머니는 과거의 유물을 통해 과거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먹을 것이라고는 과거에 만들어진 통조림뿐이다. 신선식품은 없다.

소년이 아플 때 어머니가 있었지만 깨어났을 때는 이미 사라졌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오지 않는다.

소년이 안전한 벙커를 떠난 이유다. 이 여행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야생 동물인데 그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상당한 들개를 도와주려고 하다 오히려 위험에 처한 경우는 있다.


어머니가 남긴 물건과 벙커에서 본 로고 등이 하나의 방향표가 된다.

우연히 어머니가 타는 차와 닮은 차를 발견하고 아파트 속에 들어간다.

아파트 안에는 암호가 걸려 있는 과거 컴퓨터가 한 대 있다.

소년은 추론과 관찰을 통해 비밀번호를 찾아내 그 기록 일부를 확인한다.

이때 정확하게 미래의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있는 연도가 나온다.

여기서 소년은 어머니가 간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이 아파트의 주인 현우가 근무했던 헨리에타 연구소다.

소년은 다시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다.


기이한 모양,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로봇.

현우의 카드로는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이때 소년을 기절시켜 데리고 나가는 여성이 나온다.

멸망한 세계에 소년 이외에 새로운 인간이 있다니 놀랍다.

이 여성은 소년에게 이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 소년의 엄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멸망의 과정과 소년의 엄마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우주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인공지능 생명체 헨리에타.

헨리에타를 통해 미래의 과학기술을 얻어내려는 인간들.

그렇게 발견한 연구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간을 내몬다.


이런 과거의 이야기와 새로운 세상과 그 사이를 채우는 호기심.

진실이란 이름의 물건이 가진 힘.

이 힘을 잘못 이용하면 어떤 파멸이 벌어질 지 모른다.

그리고 헨리에타를 통해 불멸의 힘을 가지려고 한 인간들.

소년의 주변에 갑자기 나타나는 죽음이란 존재들.

인간이 사라졌다고 지구에 종말이 온 것은 아니다.

인간 대신 지구를 채워 나갈 수많은 동식물들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동식물보다 인간 혹은 인간과 닮은 존재에 눈길을 준다.

어느 순간 소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죽음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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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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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김숨의 소설이다.

찾아보니 장편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단편들은 다른 모음집을 통해 가끔 읽었다.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은 집에 그냥 묵혀 두고 있다.

660쪽이 넘는 분량의 소설인데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룬다.

사실 분량 때문에 선택을 주저하기도 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면 이런 긴 소설을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며칠 동안 다른 책 읽는 동안 조금씩 읽다가 마지막에 좀 달렸다.

솔직히 이 소설의 구성이나 전개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덜 되었다.


1947년 9월 16일 단 하루 부산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았다.

시간도 해가 떠 있는 동안으로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특정한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다루다 보니 중복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특정 주인공으로 말하기에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단편적이다.

이런 단편들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각각의 사연과 관계, 엇갈리는 상황, 어떻게 든 살려는 의지 등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 목소리, 그 행동, 그 사연 하나하나가 이야기로 이어진다.


왜 작가는 1947년 9월 16일이란 특정 시간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선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해방 후 부산이란 공간은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머물고 떠나간 곳이다.

이 당시와 비교할 시간은 아마 한국전쟁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중국에서 넘어온 귀국 동포들을 생각한다면 조금 복잡해진다.

이 소설의 상당 부분들이 귀환선이나 야매 배를 타고 일본에서 넘어온 사람들 이야기다.

일제 감정기에 자의에 의해 가거나 타의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중 일부는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다 남편과 함께 넘어왔다가 버림받은 일본 여자들 이야기다.


방대한 자료 조사가 있어야 가능한 글이다.

옛날 지명을 되살리고, 강제 징용 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내야 한다.

강제 징용을 피해 숨은 아들을 찾기 위해 부모에게 폭력을 가한다.

위안부를 강제로 징용하는 과정에 공장으로 간다는 거짓말도 동원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일본에 부역한 그 시절 친일파들이 있다.

해방 후 보복이 두려워 도망친 일본 순사나 공무원들이 미군정이 오면서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일본인이 남긴 적산을 물려 받아 이전의 사업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탄광에서 일하며 겨우 생존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간결하지만 강한 인상을 준다.

만주로 넘어가 일본인, 만주인, 중국인, 한국인 등 필요에 따라 국적을 바꾼 사람도 있다.


주인 없는 땅을 찾아 간척지에 판잣집을 짓는다.

어딘가 집을 지을 곳이 있으면 가재 도구를 놓고 담을 합판 등으로 세운다.

이들은 어딘가에서 흘러와 다른 곳으로 흘러갈 유민들이다.

갈 곳이 없어, 살 곳을 찾아, 이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를 낸다.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연을 품어낸다.

머릿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북적거리는 시장통의 풍경과도 닮아 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날이 바짝 서 있는 삶이 곳곳에 보인다.

이런 와중에도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삶과 현실의 다양한 모습이다.

그리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배제한 채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덕분에 가독성은 더 좋아졌다.

너무나도 많은 풍경과 이야기가 들어 있어 놓친 부분이 많다.

평론가의 말처럼 언젠가 이 소설의 한 부분을 김숨의 다른 소설에서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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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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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2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이외 수많은 미스터리 상을 수상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고, 이전 소설 제목은 너무나도 특이했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인민교회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해 나도 알고 있던 사건이다.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요릭 타운에 있었던 집단 자살 사건이다.

미국 사이비 교주 짐 존스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 단체 이름이 인민 교회다.

이 집단자살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무려 909명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사건이라 어떤 식으로 변주를 했을지 궁금했다.

현재가 아닌 과거 사건이고,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기에 더욱 그랬다.


일본 작가가 미국의 사이비 종교의 집단 자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과거의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어우러져 멋진 일본식 탐정 미스터리가 탄생했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을 소설 속에 밀어 넣고 다양한 탐정의 해설을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부분도 있지만 그 이전에 깔아 둔 설정 등이 이 황당함을 누그러트린다.

일본에서 시작해 남아메리카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일어나는 사건은 많은 경우 예상을 벗어난다.

생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살인과 죽음은 특히 그렇다.

소설 마지막에 도달하면 왜 제목이 이렇게 지어졌는지 이해하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는 인민교회 신도들이 음독 자살하는 장면이다.

강제적으로 청산가리가 든 쿨에이드를 먹인다.

먹지 않으려고 달아나는 사람들도 잡아와 강제로 먹인다.

실제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졌는데 아주 참혹한 장면이다.

그리고 무대는 1978년 10월 30일 일본의 민박집으로 넘어간다.

총소리가 들렸고, 경찰은 시체 두 구를 발견한다.

이 중 한 명이 방송으로 유명해진 요코야부 유스케 탐정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오토야 탐정에게 경찰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오토야 탐정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듣고 조수 아리모리 리리코와 함께 현장에 간다.


이 사건은 두 개의 미스터리가 담겨 있다.

하나는 미제 사건 108호의 총이고, 다른 하나는 유스케 탐정이 죽은 방이 밀실이란 것이다.

여러 사람을 죽인 108호는 그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소년이다.

10년 전 사건이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108호의 총과 밀실. 오토야는 자신만의 추리를 내세워 경찰을 설득한다.

그런데 조수가 이 추리를 뒤집고 새로운 가능성을 말한다.

조수의 추리가 더 현실적이고, 증언이나 증거와도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조수 리리코는 인민교회 조사를 위해 떠난다.


리리코가 떠날 때 인민교회를 조사하러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귀국해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연락도 없다.

오토야는 자신이 가진 단서를 가지고 리리코가 간 곳을 찾아낸다.

그곳이 바로 짐 존스의 인민 교회다.

기자를 하는 친구와 함께 오토야는 떠난다.

인민사원 근처에서 비행기에서 읽고 무심코 바지에 넣어둔 인민사원 비판 기사 때문에 친구가 죽는다.

죽기 직전의 오토야를 살려준 인물이 연락두절되었던 리리코다.

리리코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온 동료들도 소개한다.

기이한 사이비 종교 집단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끼어든 것이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에 리리코가 낀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일본 사이비 종교 하나를 박살낸 이력 때문이다.

한국의 망명객 이하준의 존재도 재밌다.

오토야를 비롯한 다른 네 명도 모두 짐 존스의 트릭을 쉽게 간파한다.

짐 존스가 바라는 것은 인민교회를 소련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 네 명의 조사관이 온 것도 인민교회의 사이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갑자기 이 조사관들이 한 명씩 죽는다.

밀실과 알 수 없는 트릭으로 가득한 살인이다.

실제 사건과 상상력이 맞물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해설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해설들은 이 소설의 백미다.

그리고 후일담은 재미와 긴 여운은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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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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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하면 가장 먼저 마피아가 떠오른다.

내가 본 영화나 소설 등에서 시칠리아 마피아는 너무 잔혹하고, 매력적이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영화 <대부>의 주인공도 시칠리아 출신이다.

이 섬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시칠리아는 그냥 이탈리아의 섬이거나 마피아의 고향 정도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대해 알수록 이 섬은 다르게 다가왔다.

이탈리아 남북의 경제력 차이 부분은 그냥 무심코 읽고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다른 시각을 가진 것이다.

겨우 이 책 한 권 읽고 내가 시칠리아를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섬에 대한 이해의 첫 발을 내딛는 데는 큰 도움을 받았다.


저자는 시칠리아의 역사를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800년경 시칠리아에 처음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인들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로마, 반달족, 이슬람, 프랑스 노르만, 호엔슈타우펜 왕조, 카페 왕조, 아라곤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 부르봉 왕조 등으로 이어진다.

통일 이탈리아가 세워졌다고 시칠리아의 수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부 이탈리아가 남부를 차별하면서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 압축된 역사를 읽으면서 왜 이들의 비극은 덜 알려졌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럽의 거대한 곡창 지대를 노린 주변 강대국의 수탈이 이렇게나 긴 역사를 가졌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생긴 부분은 읽으면서 매우 안타까웠다.

대충 알고 있던 로마사와 관련해서는 더욱 무심한 부분이 많았다.


이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 강대국의 관심을 벗어난 계기가 재밌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 이 섬에 대한 관심을 예전보다 적게 했다.

이전까지 유럽인에게 지중해는 가장 거대한 바다였고, 시칠리아는 가장 큰 섬이었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충지였다.

강대국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수탈 행위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바뀐 수탈 세력은 가혹한 세금과 폭정으로 수탈을 이어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도 멈추지 않은 수탈의 역사다.

믿었던 참주나 왕에게 배반당한 시칠리아인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한때 시칠리아가 지중해의 곡물 창고에서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된 적이 있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 않았고, 시칠리아인들의 삶이 풍족해진 것은 아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공존하는 순간도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와 닮은 부분도 있지만 독자적인 왕조가 없었다는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민주정이 도입되었다가 중세 봉건제로 퇴행하는 일이 일어난다.

외부의 지배 세력이 앞잡이가 된 세력의 수탈은 더욱 가혹했다.

시칠리아와 비교해 짧은 우리의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이 부분은 더 부각된다.

물론 이런 역사 때문에 이들의 비극이 좀더 가까이 다가온다.


얼마 전 여행 카페에서 시칠리아로 여행가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탈리아 반도에 비해 저렴한 물가, 아름다운 풍경 등이 생각난다.

실제 에트나 화산은 여전히 연기를 품고 마그마를 흘려보낸다.

검색하면 최근에도 분화로 인한 굉음과 공항 일시 폐쇄가 있었다.

이런 자연 풍경보다 나의 시선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표지 사진이다.

김도근 작가가 찍은 시칠리아 어부인데 그 표정이 너무나도 강렬하다.

아쉽게도 이 어부는 최근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책 후반에 마피아와 이탈리아 남북의 경제력 격차 등에 대해 간략하게 보여준다.

아직도 마피아와의 전쟁은 진행 중이고, 높은 실업률은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시칠리아의 역사를 압축해서 읽기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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