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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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김숨의 소설이다.

찾아보니 장편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단편들은 다른 모음집을 통해 가끔 읽었다.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은 집에 그냥 묵혀 두고 있다.

660쪽이 넘는 분량의 소설인데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룬다.

사실 분량 때문에 선택을 주저하기도 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면 이런 긴 소설을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며칠 동안 다른 책 읽는 동안 조금씩 읽다가 마지막에 좀 달렸다.

솔직히 이 소설의 구성이나 전개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덜 되었다.


1947년 9월 16일 단 하루 부산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았다.

시간도 해가 떠 있는 동안으로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특정한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다루다 보니 중복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특정 주인공으로 말하기에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단편적이다.

이런 단편들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각각의 사연과 관계, 엇갈리는 상황, 어떻게 든 살려는 의지 등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 목소리, 그 행동, 그 사연 하나하나가 이야기로 이어진다.


왜 작가는 1947년 9월 16일이란 특정 시간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선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해방 후 부산이란 공간은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머물고 떠나간 곳이다.

이 당시와 비교할 시간은 아마 한국전쟁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중국에서 넘어온 귀국 동포들을 생각한다면 조금 복잡해진다.

이 소설의 상당 부분들이 귀환선이나 야매 배를 타고 일본에서 넘어온 사람들 이야기다.

일제 감정기에 자의에 의해 가거나 타의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중 일부는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다 남편과 함께 넘어왔다가 버림받은 일본 여자들 이야기다.


방대한 자료 조사가 있어야 가능한 글이다.

옛날 지명을 되살리고, 강제 징용 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내야 한다.

강제 징용을 피해 숨은 아들을 찾기 위해 부모에게 폭력을 가한다.

위안부를 강제로 징용하는 과정에 공장으로 간다는 거짓말도 동원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일본에 부역한 그 시절 친일파들이 있다.

해방 후 보복이 두려워 도망친 일본 순사나 공무원들이 미군정이 오면서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일본인이 남긴 적산을 물려 받아 이전의 사업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탄광에서 일하며 겨우 생존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간결하지만 강한 인상을 준다.

만주로 넘어가 일본인, 만주인, 중국인, 한국인 등 필요에 따라 국적을 바꾼 사람도 있다.


주인 없는 땅을 찾아 간척지에 판잣집을 짓는다.

어딘가 집을 지을 곳이 있으면 가재 도구를 놓고 담을 합판 등으로 세운다.

이들은 어딘가에서 흘러와 다른 곳으로 흘러갈 유민들이다.

갈 곳이 없어, 살 곳을 찾아, 이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를 낸다.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연을 품어낸다.

머릿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북적거리는 시장통의 풍경과도 닮아 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날이 바짝 서 있는 삶이 곳곳에 보인다.

이런 와중에도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삶과 현실의 다양한 모습이다.

그리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배제한 채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덕분에 가독성은 더 좋아졌다.

너무나도 많은 풍경과 이야기가 들어 있어 놓친 부분이 많다.

평론가의 말처럼 언젠가 이 소설의 한 부분을 김숨의 다른 소설에서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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