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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완전 정복
마크 사버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0월
평점 :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해리 렌트다. 그의 아내 안나는 성형수술을 받던 중 죽었다. 아내가 못생겼냐고. 아니다. 예쁘고 날씬하고 부자다. 이런 여자가 왜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했을까? 혹시 죽은 것이 의료사고는 아닐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콜걸과의 외도로 알 수 있고, 두 번째 답은 심장마비라는 설명으로 그냥 넘어간다. 소송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너무 간단한 설명이다. 뭐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날에 시작한다.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그날 그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식당으로 간다. 그녀는 몰리다. 멋진 꽃미남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지만 이 남자 조금 문제가 많다. 해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많이 끌린다. 성적 환상을 품는다. 그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으면 아내의 장례식 날에도 그곳에 갔겠는가. 그럼 그녀와 잘 아는 사이일까? 아니다. 그날 이 둘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손님과 직원으로. 그녀에게 압도당한 그는 손님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직원 추천 메뉴를 부탁한다. 그 음식의 이름은 몽테크리스토다. 그가 결코 먹고 싶지 않았던 음식이다. 힘겹게 먹고 장례식장으로 떠난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그냥 평범하다. 슬픔이 흘러넘치지도 않고,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장례업체의 농간에 비싼 관과 베개를 주문한다. 살짝 베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관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무겁다. 이 때문에 안색이 변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슬픔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보고 싶어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아주 슬프게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에게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몰리를 꼬시기 위한 작업도 같이 진행된다. 아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짓을 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끝에 오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소설은 거의 여섯 사람이 이끌고 나간다. 해리, 안나, 몰리, 루실, 클레어, 맥스 등이다. 죽은 아내는 과거 속에서 다루어지고, 나머지는 현재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몰리를 유혹하기 위한 단계로 선택한 웨이트리스 루실은 점차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모적인 인물에서 해리의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인물로 변한다. 그의 말과 행동 때문에 문제도 생긴다. 그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고 너무 쉽게 다가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선행을 통해 그는 잊고 있던 감정의 싹을 느낀다. 아내가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그를 선택하게 만든 선한 마음의 싹이다. 또 그녀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해리가 성장하게 만든다.
몰리. 이 모든 선행과 변신은 몰리 때문이다. 몽테크리스토라는 샌드위치가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상시키고 그 소설 속 주인공 당테스가 그의 제2의 인격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자기주장 없고 소심하고 찌질한 중년 남성의 가면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선행과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은 그를 진짜 변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거짓말로 채워졌던 시간들이 진실로 가득해진다. 고해처럼 풀어내는 진짜 감정과 사실은 삶을 새롭게 만들고 성숙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과연 짝사랑의 끝은 어떨까? 의문을 품게 한다.
맥스는 의사 동료이자 조언자고, 처형 클레이는 아내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를 압박한다. 왜 동생이 성형수술을 했을까 하고. 엄청난 부자 집안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는 해리와 말이 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진실을 알 때 그를 파멸로 이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와 행동이 하나의 목표로 다가갔을 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과연 어떤 일어 펼쳐질까 하고.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쳤던 아내 안나는 사실 그에게 버거운 존재다. 그들의 처음은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모와 싸우기를 거부하고 남편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틈이 생기고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가 조금씩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창녀들에게서 불안한 안식을 찾게 한다. 밖으로 보기에 더 없이 좋아 보였던 부부의 숨겨진 감정과 행동들이 하나씩 벗겨질 때 이 부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더 없이 착하고 따뜻하고 좋은 아내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나쁜 한 가지가 있다. 자기 뜻대로 사람을 조정하려는 것이다. 해리가 루실에게 잠시 보여줬던 바로 그 행동 말이다.
한 중년 남자의 좌충우돌 짝사랑 이야기와 성장을 동시에 다룬다. 우발적인 행동 하나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솔직한 감정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게 만든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로 변한다. 이 변화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먼저 털어놓는다. 그때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읽는 동안 정말 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정말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것이 아름답고 보기 좋다기보다 안타까움이 더 든다. 아내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더욱.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붙는 가속도와 밝혀지는 부부의 실제 관계는 몰입도를 놓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