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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굴레 - 경성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경성탐정록 2
한동진 지음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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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경성탐정록>을 재미있게 읽었다. 셜록 홈즈의 일제 시대 오마주인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이 책이다. 이번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왜일까? 전작에 비해 이번 소설의 표지는 강렬하다. 제목도 표지의 느낌과 더불어 강한 인상을 준다. 얼마나 강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시리즈 마음에 든다. 시대의 한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좋은 일본인 경부 덕분에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낯익은 동시에 낯설다. 그리고 반갑다.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려는 그의 노력에는 박수를 치고 싶다. 

모두 네 편이다. 첫 편 <외과의>는 고모부와의 식사 중 얻은 힌트를 통해 만들어진 단편이다. 살인의 이유는 진부한 연인 문제다. 조건 좋은 약혼자가 있는 남자가 그를 사랑하는 기생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약혼자가 의대 학생이다. 살인 방법은 코카인 1.5그램을 주입하는 것이다. 마약 과용이다. 작가는 이 살인자의 일기를 통해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 섬뜩한 상황 설명도 꽤 나온다. 완전범죄에 대한 자신과 열망은 결국 설홍주에 의해 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범인이 설홍주를 평가한 것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안개 낀 거리>는 한 남자가 죽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체의 정체는 놀랍게도 엄청난 거부 신의택이다. 그는 투기와 협박 등으로 부를 쌓았다. 당연히 적도 많다. 비가 온 덕분에 현장에 남은 증거도 거의 없다. 신타로로 불렸던 그의 영향력 때문에 위로부터 압박을 받던 레이시치 경부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설홍주가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치자 요인이 바로 이 경부다. 신타로를 파고들수록 나타나는 과거는 수많은 적들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야쿠자도 있다. 하지만 진범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범인을 대하는 설홍주의 대응법이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표제작 <피의 굴레>는 중편이다. 1910년 3월 5일 아침 동경 간다 구에서 한 남자가 쥐약을 먹고 죽었다. 이름은 허장남, 스물다섯 살이다. 뇌종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무려 22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왜 첫 장면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잡지사에 와서 광고를 내겠다고 한다. 다다이즘을 연상시키는 난해한 시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인물이 허장남이다. 광고를 내겠다고 온 인물은 흥행업의 귀재로 불렸던 김명수 사장이다. 그도 허장남처럼 쥐약인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했다. 이렇게 끝난다면 설홍주가 아니다. 그는 살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죽은 김 사장의 주변을 탐문한다. 그리고 시의 비밀을 밝혀낸다. 암호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난 소재가 될 것 같다. 트릭도 재미있지만 설정 등이 시대의 풍경을 잘 드러내어 흥미롭다.

마지막 단편 <날개 없는 추락>은 씁쓸한 뒤끝을 남긴다. 설홍주의 형 이야기나 특고 이야기는 그 시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설홍주의 활약으로 인한 멋진 환상들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이번 사건도 처음에는 추락에 의한 사고사로 보였다. 손 박사의 의견에 의해 타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피살자 백청만, 일본명 사이고 시로와 제1 발견자 현준건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난다. 당연히 그는 제1 용의자가 된다. 재미난 것은 이번 사건의 의뢰자 역할을 손 박사가 했다는 것이다. 일제 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품고 있던 그가 이 둘의 연관성을 알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백청만은 과거에 독립운동의 배신자였다. 이 때문에 특고가 주시하고 있다. 만약 빠른 시간 안에 진범을 잡지 못하면 특고가 그를 데리고 가서 범인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재빨리 진범을 잡아야 한다. 설홍주가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죄수의 딜레마는 그 당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식상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한계와 비극과 아픔은 가슴과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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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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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오마주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주 오래전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읽지 않았던 고전을 읽겠다는 생각에 선택해서 읽은 소설이다. 한때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해 그 유명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읽은 적 있다. 하지만 그때도 왠지 모르게 읽지 않은 소설이 <죄와 벌>이었다. 상당히 두툼한 분량이라 조금 질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책이 더 두껍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바로 그 유명한 세계문학을 기원으로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1월 3일부터 1월 8일까지 오리건 해변에서 썼다. 처음에는 이 날짜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지 속 시간과 편지 쓴 날짜가 맞지 않았다. 오타인가도 생각했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차이를 알게 된 것은 거의 마지막에 와서였다. 왜 이런 형식을 가졌는지, 이 편지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마지막 순간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물론 많지 않은 분량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결한 문장과 소년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다.

소년이 파라노이드 파크에 간 것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해서다.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 제니퍼의 유혹도 뿌리치고 친구 자레드와 그곳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자레드가 꼬시려고 했던 여대생의 호출로 약속을 깬다. 제니퍼를 만날까 생각도 하지만 보드의 유혹이 더 강하다. 혼자 공원에 있는데 한 부랑자가 다가온다. 스크래치다. 5분만 보드를 타게 해달고 한다. 빌려준다. 5분 후 돌아온다. 그의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러다 스크래치가 기차를 타자고 한다. 역으로 들어가는 기차를 올라타는 것이다. 새로운 재미와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그때 경비원이 그들을 보았다. 

단순히 쫓아낼 줄 알았던 경비원이 납이 든 것 같은 봉을 휘두른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가 도망가는 것은 성공하지만 스크래치는 잡힌다. 스크래치가 당한 위협을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보드를 휘두른다. 처음에는 약하게 그 다음은 아주 강하게. 운 나쁘게 경비원이 쓰러진 곳은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다. 몸이 뒤틀리고 끌려간다. 결국은 두 동강 난다. 죽었다. 이 상황에서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순간의 갈등 후 달아난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 소년의 두려움과 심리적 갈등이 섬세하면서도 깊숙이 묘사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소년도 엄청난 고민을 한다. 또 소냐처럼 메이시 맥러플린이 등장한다. 살인이 중심에 놓여있다. 이런 설정과 구성이 <죄와 벌>의 오마주임을 나타내준다. 하지만 다른 시대와 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한 가족의 해체, 청소년의 성, 이 시대의 양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부모의 이혼은 소년의 고뇌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를 보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제만으로 벅차다. 가족 관계마저 인스턴트화 되어 가는 듯하다. 양심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순간 드러나는 거짓말은 이 시대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죄와 벌. 살인을 저지른 죄로 소년은 벌은 받는다. 법에 의한 벌이 아니라 양심과 두려움에 의한 벌이다. 처음에는 살인에 대한 뉴스를 찾는다. 없다. 얼마 후 뉴스에 나왔을 때 경찰의 손길을 두려워한다. 도망가는 것도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너무나도 무겁다. 잡혀갈 줄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군가를 죽였다는 양심은 같이 다닌다. 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가족과 친구들은 단지 자신들의 판단으로 그를 재단할 뿐이다. 그가 바란 것은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은 곳에는 잡히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평생 이 벌이 자신을 따라다닐 것임을 알고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2007년 칸 영화제 60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스케이트보드가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 스케이트보드를 작가는 글쓰기에 비유하고, 영화감독은 스케이트 보더들을 아웃사이더로 본다. 이 둘의 차이가 왠지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작가는 편지 형식을 취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어떨까? 열린 결말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영원히 입을 다물지. 문장에 대한 극찬은 원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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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베러 블루스 - 재수 듣고 그리다
재수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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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명의 재즈곡과 그 곡이 나온 같은 이름의 영화다. 스파이크 리 감독에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였다. 이 재즈곡에 반해서 시디를 산 후 한동안 이 음악만 줄기차게 들은 적도 있다. 노라 존스의 앨범과 함께 직접 산 몇 되지 않는 재즈 앨범이다. 뭐 찾아보면 거장의 앨범도 몇 장 있겠지만 그들의 음악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름 때문에 샀다. 책에서 본 명성 때문에 사서들은 것이다. 물론 좋았다. 하지만 개인 취향이나 몰입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만화가 재수, 잘 모른다. 시선을 끈 것은 제목이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재즈 곡명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펼친 첫 장면이 군악대 모습이다. 별 셋을 단 장군을 위한 이,취임식 행사 연주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수를 한다. 별 하나가 사라지는 그림이 나온다. 이 장면은 꿈이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군 제대 후 남자들이 가장 겁내고 두려워하는 꿈이 군에 다시 입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악몽에서 깬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공포 대상인 직장 생활이다. 

이태백 시대에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의 직업이 회계사임을 생각하면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인공 구근운에게 이런 반복적인 일상은 자신의 삶을 갈아먹을 뿐이다.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과 자신이 사라진 삶과 직장 상사의 서류 던지기 신공은 더욱 각박하게 상황을 만든다. 재즈를 좋아하지만 연주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재즈가 아닌 음악이라도 제대로 듣고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트럼펫을 한밤중에 잠시 불어보지만 옆집 아줌마의 원성만 살 뿐이다. 삶의 탈출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삶을 작가는 음악 기호를 사용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또 다른 삶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숫자는 그의 직업에 대한 감정이자 혼란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숫자로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증상은 심하다. 사람 얼굴이 제대로 보이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러다 천둥번개에 의해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숫자가 0으로 보이는 것이다. 삶이 리셋되어 초기화된 것이다. 과거가 사라졌다는 것은 현재도 사라지고 변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부터 일상을 벗어난 삶이 일어난다.

예쁘게 그려진 그림은 아니다. 오히려 투박하다. 각 장마다 새로운 음악 기호를 표시한다. 음악과 구성의 조화다. 화면 구성은 원근을 무시하거나 섬세한 연출을 통해 두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이용한 듯한 연출인데 곳곳에 이런 영화 기법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그림만 본다면 강한 인상을 주기 힘들다. 하지만 이야기에 집중하고 화면 구성과 내용을 연결시키면 달라진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지만 감정과 상황을 적절하게 담아내었다. 작화보다 연출이 더 뛰어난 작품이다. 잊고 있던 재즈에 대한 향수와 열정을 살짝 깨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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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완전 정복
마크 사버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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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해리 렌트다. 그의 아내 안나는 성형수술을 받던 중 죽었다. 아내가 못생겼냐고. 아니다. 예쁘고 날씬하고 부자다. 이런 여자가 왜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했을까? 혹시 죽은 것이 의료사고는 아닐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콜걸과의 외도로 알 수 있고, 두 번째 답은 심장마비라는 설명으로 그냥 넘어간다. 소송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너무 간단한 설명이다. 뭐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날에 시작한다.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그날 그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식당으로 간다. 그녀는 몰리다. 멋진 꽃미남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지만 이 남자 조금 문제가 많다. 해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많이 끌린다. 성적 환상을 품는다. 그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으면 아내의 장례식 날에도 그곳에 갔겠는가. 그럼 그녀와 잘 아는 사이일까? 아니다. 그날 이 둘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손님과 직원으로. 그녀에게 압도당한 그는 손님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직원 추천 메뉴를 부탁한다. 그 음식의 이름은 몽테크리스토다. 그가 결코 먹고 싶지 않았던 음식이다. 힘겹게 먹고 장례식장으로 떠난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그냥 평범하다. 슬픔이 흘러넘치지도 않고,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장례업체의 농간에 비싼 관과 베개를 주문한다. 살짝 베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관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무겁다. 이 때문에 안색이 변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슬픔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보고 싶어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아주 슬프게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에게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몰리를 꼬시기 위한 작업도 같이 진행된다. 아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짓을 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끝에 오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소설은 거의 여섯 사람이 이끌고 나간다. 해리, 안나, 몰리, 루실, 클레어, 맥스 등이다. 죽은 아내는 과거 속에서 다루어지고, 나머지는 현재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몰리를 유혹하기 위한 단계로 선택한 웨이트리스 루실은 점차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모적인 인물에서 해리의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인물로 변한다. 그의 말과 행동 때문에 문제도 생긴다. 그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고 너무 쉽게 다가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선행을 통해 그는 잊고 있던 감정의 싹을 느낀다. 아내가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그를 선택하게 만든 선한 마음의 싹이다. 또 그녀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해리가 성장하게 만든다.

몰리. 이 모든 선행과 변신은 몰리 때문이다. 몽테크리스토라는 샌드위치가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상시키고 그 소설 속 주인공 당테스가 그의 제2의 인격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자기주장 없고 소심하고 찌질한 중년 남성의 가면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선행과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은 그를 진짜 변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거짓말로 채워졌던 시간들이 진실로 가득해진다. 고해처럼 풀어내는 진짜 감정과 사실은 삶을 새롭게 만들고 성숙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과연 짝사랑의 끝은 어떨까? 의문을 품게 한다.

맥스는 의사 동료이자 조언자고, 처형 클레이는 아내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를 압박한다. 왜 동생이 성형수술을 했을까 하고. 엄청난 부자 집안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는 해리와 말이 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진실을 알 때 그를 파멸로 이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와 행동이 하나의 목표로 다가갔을 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과연 어떤 일어 펼쳐질까 하고.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쳤던 아내 안나는 사실 그에게 버거운 존재다. 그들의 처음은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모와 싸우기를 거부하고 남편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틈이 생기고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가 조금씩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창녀들에게서 불안한 안식을 찾게 한다. 밖으로 보기에 더 없이 좋아 보였던 부부의 숨겨진 감정과 행동들이 하나씩 벗겨질 때 이 부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더 없이 착하고 따뜻하고 좋은 아내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나쁜 한 가지가 있다. 자기 뜻대로 사람을 조정하려는 것이다. 해리가 루실에게 잠시 보여줬던 바로 그 행동 말이다.

한 중년 남자의 좌충우돌 짝사랑 이야기와 성장을 동시에 다룬다. 우발적인 행동 하나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솔직한 감정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게 만든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로 변한다. 이 변화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먼저 털어놓는다. 그때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읽는 동안 정말 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정말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것이 아름답고 보기 좋다기보다 안타까움이 더 든다. 아내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더욱.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붙는 가속도와 밝혀지는 부부의 실제 관계는 몰입도를 놓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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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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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을 처음 본 것이 영화 속이었다. 악마와 싸워 이긴 주인공이 악마를 영원히 가두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소금사막이었다. 그때 든 생각이 만약 이 소금들이 다 사라지면 악마는 다시 부활하겠구나 였다.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이 책 속에서 그곳을 보니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금사막이 이 책의 제목이지만 작가 김영희에게는 60일간의 남미 여행 중 잠시 둘러본 곳 중 하나다. 그곳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수많은 감동과 의미를 부여한 곳들 중 한 곳이란 의미다.

<나는 가수다> 첫 방송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광고할 때만 해도 이런 인물들이 나와 경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던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도 어떤 조그만 기대 때문이었다. 김영희 PD의 말처럼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의 첫 음을 내는 순간 빠져들었다. 최고였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 주지 못한 엄청난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주말에 유일하게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김건모의 첫 탈락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다. 재도전의 기회가 부여되었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다. 김영희 PD가 짤리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생긴다. 재도전의 방송이 또 다른 감동을 준 것이다. 최고 중의 최고였다. 그렇지만 그는 떠나야했다. 그 떠남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60일간 29번의 비행이 남긴 흔적이란 글과 그가 다녀온 곳의 지도가 눈길을 끈다. 첫 느낌은 부럽다였다. 60일간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주일 휴가도 빼기가 쉽지 않은 월급쟁이니 더욱 그렇다. 그가 다녀온 곳을 훑어보니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하여 아바나를 거쳐 남미대륙을 한바퀴 도는 일정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너무 자주 이동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바닥에는 부러움이 깔려 있다. 대충 넘겨본 책 내용은 글자가 별로 없고 그림과 사진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읽어보니 맞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27만원짜리 디카로 찍은 것이고, 그림은 그가 현지에서 산 스케치북에 직접 그린 것이다. 사진을 보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 때문에 당연히 DSLR로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히’가 무너졌다. 똑딱이로 이런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내다니 놀랍다. 아니 부럽다. 전문가들이 보면 또 다르겠지만 사진에 무식한 나에게는 그렇다. 이 사진과 그림은 그가 간 곳의 느낌을 잘 드러내준다. 조금씩 나오는 사유의 글들은 그림 등에서 받은 감흥에 잠시 쉼터가 된다. 그가 그곳에서 받은 느낌과 사유는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고, 느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가수> 하차 후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나가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인터뷰 등에서 본 내용도 나오고,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지금은 조금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식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나의 마음은 움직인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지지만 그들의 사연과 노래는 가슴으로 다가온다. 잊고 있고 잘 몰랐던 가수들의 등장은 반갑다. 물론 그가 떠난 후 <나가수>에 대한 글은 없다. 다만 이 책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남미의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인식에 의문이 생기는 대목도 살짝 있지만.

그는 책 앞에서 말한다. ‘나는 피디다’라고. 비교적 긴 여행이지만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 남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가 남미 여행을 간 것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게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은 없다. 사진과 그림과 짧은 단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는 부분은 나의 단상으로 채우면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을 말할 때 얼마 전 내가 외친 그 단어가 반갑다. “인생… 지금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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