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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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았을 때 육식동물 사자가 샐러드를 좋아하게 되려면 자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교육이나 깨달음 등으로 벗어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목차를 둘러봤다.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 중 한 편이라고 미리 짐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뭐지? 하는 당혹감이 먼저 생긴다. 하지만 첫 에세이에서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나의 짐작이 너무 많이 나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하루키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다. 가장 최근까지 <앙앙>에 실린 글들이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하루키를 좋아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그의 에세이를 좋아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아마 그 당시는 소설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하루키의 재미를 알려면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을 했던 시기였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삶이 좀더 각박해지고 첫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게 되면서 이 짧은 글들이 사랑스러워졌다. 부담 없는 내용과 분량이 기발하고 독특한 시각과 어울리면서 꽤 많은 재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하루키의 글들에 공감하는 내용이 좀더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가슴을 탁 치는 재미가 있기보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십년을 사용한 후 더 이상 사용할 마음이 없어진 조그만 가방을 버리고 왔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지퍼가 떨어진 가방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가서 버리고 오는 것이 가끔 있다. 배낭여행을 가서 낡은 옷이나 신발 등을 버리고 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행동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작가들의 글을 통해서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여행을 갈 때 각각 다른 가방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나의 경우는 거의 하나인데. 그리고 그렇게 비싼 가방도 아닌 듯하다.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뭘 줄까 묻는 편이다. 가끔 누군가 주는 선물을 받을 때 내게 필요하지 않는 것이 오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들이 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좋은 선물은 어렵다. <그랜 토리노>란 영화에서 그냥 무심코 본 맥주를 자신의 글 속에 녹여낸 것을 보면서 남다른 관찰력에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의 경우 상표에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을 약간 다른 시각에서 풀어낼 때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된다. 그의 문제 제기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통해 가장 많이 얻게 되는 것은 역시 하루키의 정보다. 그의 일상과 관심사와 두려움이나 약간 특이한 행동들이다. 개인적으로 신호대기 중의 양치질은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칫솔질 후 이물질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뒤섞이며 하나의 영상이 훅하고 지나갔다. 결코 깨끗한 장면은 아니다. 그의 감각적 문체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을 계속하게 만든다. 아마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에 이 둘은 관계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평소 무심코 바라보던 것을 조금은 다르게 보면서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첫 무라카미 라디오가 나온 후 다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뭔 훗날 4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림을 그린 요하시 아유미의 후기를 보면 한 달 분량을 한꺼번에 전달해줬다고 하는데 언젠가 일 년 치를 한번에 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하루키의 영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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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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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119일을 다룬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전봉준의 입을 통해 나온 종로 사거리 처형에 맞춘 듯한 이야기 전개와 설정 때문이다. 그가 가진 이상과 이력은 이 처형을 위해 그냥 사그라진다. 그가 의도적으로 체포되고 자신의 죽음으로 동학의 새로운 기회를 노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너무나도 무력한 모습과 이기적인 욕망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이에 비해 그를 회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토가 훨씬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행동은 정말 온갖 욕을 다하게 만들지만.

 

한때 10만의 동학도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 녹두장군의 체포와 처형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역사 속 한 장면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역량과 활약이 그 시대의 한 획을 긋고 민중의 힘을 보여줬다고 해도 동학도에게 거짓 주문을 외게 하고 죽음의 길로 이끈 것에는 자연스레 반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과연 10만이 일본군 몇 백에 무너졌는가 하는 의문이다. 6.25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 때문에 물러나야만 했던 역사를 생각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연발총이 지닌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이 과장되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동학전쟁의 성과나 패배를 뒤로 하고 전봉준 한 명에게 집중하자. 의도적으로 잡혀 사형당하려고 하는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를 압송하는 과정에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그의 욕망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자 비극이다. 이때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작가의 창작인지 잘 모르겠지만 전봉준의 압송은 가는 길 내내 피가 낭자하다. 그를 태운 가마를 네 명의 장정이 옮겨야 하는데 때는 겨울이다. 옮기는 장정 중 한 명이 발을 삐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죽임을 당한다. 혹시 동학도가 전봉준을 구하기 위해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단순히 가마꾼만 죽는 것이 아니다. 가는 도중에 지난 주막이나 가정집도 이 피해를 비껴갈 수 없다. 그들이 죽는 이유는 역시 단 하나다. 바로 전봉준의 행적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다. 그가 바라는 죽음을 이루기 위해 민초들이 또 죽어나간다. 이미 10만의 동학도를 죽음으로 이끈 적이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살리기 위한 시도가 그가 지나가는 행로를 죽음의 길로 만들었다. 그 처참함은 근래 보기 드문 모습이다. 개인적 감상으로 말한다면 전봉준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공범자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이 소설의 가치는 그 피의 행로와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조선의 현실 인식이다. 그 시대의 풍경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전봉준의 여정이라면 시대의 변화를 깨닫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아는 그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순간, 기존 가치관에 빠져 그것을 따라가는 순간 그가 바라는 혁명은 사라지고 단순한 자리 교체만 있을 뿐이다. 실제 이것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좀 덜 잔인하고 세련된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다. 넓게 새롭게 세계를 인식하고 보지 못하면 이런 과오는 그대로 반복된다.

 

개인적으로 이토를 통해 나오는 궤변은 흥미로웠다. 이 궤변이 전봉준을 좀더 흔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궤변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은 그 당시 역학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이 어떤 식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 합병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것은 다시 현대 미국이 자국에 유학생을 받아들인 후 그들이 각 나라로 가서 미국 추종세력으로 변하게 만든 것과 비슷한 통치 방식이다. 지금 한국도 이런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전봉준의 의도로 인한 비참하고 처참한 죽음을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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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5
백상준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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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가 백상준의 <섬>을 연작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가장 긴 작품이자 대상 수상작인 <섬>과 <천사들의 행진>과 <거짓말>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을 단편으로 읽어도 상관없지만 이야기가 이어져있다. 읽을 때보다 모두 읽은 지금 그냥 한 편으로 엮어내면서 그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드러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런 작업을 했을 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명의 분위기를 녹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섬>은 이전 수상작을 바탕으로 분량을 더 늘였다. 좀더 긴 작품으로 바뀌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다음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이런 변화는 읽으면서 잘 느끼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작에 대한 기억이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다음은 분량의 변화다. 읽으면서 경쾌한 분위기와 고립된 생존환경에 처한 주인공에 몰입하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마지막 <거짓말>에서도 반복되는 설정이다. 연작으로 만들어지면서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나는 전설이다>이다. 작품 속 상황이 많이 인용되고 비교되지만 다른 결말을 가진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주인공이 처한 환경은 다르다. 이런 다른 환경과 전개는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설정에 비롯한 것 같다. <나는 전설이다>가 마지막 인간의 생존이 전설이 되는 반면 <섬>은 고립되고 이기적인 현대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연대가 사라지고 경쟁만 남는 것이다. 마트 물건을 둘러싼 은밀한 대결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중간에 넣은 장면과 <거짓말>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로 이어진다.

 

이전보다 더 섬세해지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개작전의 경쾌함이나 함축성은 조금 사라진 듯하다. 아파트란 공간을 섬으로 설정한 것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섬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막은 것은 조금 아쉽다. 물론 이것에 대한 변명이자 이유를 다음 이야기 <천사들의 행진>에서 보여준다. 이 단편은 아마 가장 비열하고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은유이자 역설일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좀비로 변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남성의 성폭력과 강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 말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로 실명한 주인공과 그로 인해 그녀가 겪은 성폭력이 여고생을 통해 다시 재현될 때 가장 무서운 존재가 천사로 변신하는 모습은 삶이 지닌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연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거짓말>은 좀비로 변한 세계에서 생존한 군인들 이야기다. 모든 군인들이 좀비로 변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생존자가 있고 좀비를 공격한다. 하지만 실탄의 한계에 부딪힌다. 연료가 부족하다. 왜 어떻게 좀비로 변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화기를 보유한 군이 좀비 때문에 무력해진다. 몇 명의 생존자만으로 수백 만의 좀비를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좀비를 토벌하기 위해 나선 그들의 부대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오히려 안전한 곳이 된다. 이 또한 섬과 다를 바가 없다. 섬에 갇힌 군이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다. 그러나 명령 체계는 살아있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존재한다. 중대장과 말년 병장이 친구라 하여도. 그리고 여자가 있는 곳에 또 다른 성폭력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좀비를 지워버리면 군대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모든 군바리들이 왜 이런 일을 하지? 하는 의문을 다시 떠올린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 때의 남자들에게 최상의 선택일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휘감고 돌아다니는 불안과 공포는 자살이란 형식으로 표출된다. 생존이란 가장 큰 현실 앞에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포기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거나 철저한 명령체계의 군대는 외부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들이 또 다른 해법을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만나는 현실은 전편에서 보여준 몇몇 장면의 해설이자 인간이 가진 혹은 현실이 보여준 거짓말을 그대로 드러낸다. 혹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충격적인 반전 혹은 블랙 코메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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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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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읽었다. 집에 찾아보면 동서판을 제외하고 다른 판본도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출간되고 나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구해놓았다. 늘 그렇듯이 그냥 구해만 놓았다. 이전에 히치콕의 영화로 본 적이 있어 흔쾌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십 수 년 전에 영화로 봤는데도 말이다. 지금 기억으로 그 영화가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었다는 느낌은 없다. 히치콕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런 기억 때문에 책에 손이 쉽게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을 읽으면서 나의 조악한 기억력에 다시금 좌절한다. 영화 속 이미지 하나를 제외하면 거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맨덜리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곳은 이제 없다. 이 회상은 없는 곳을 대상으로 한다. 추억과 기억의 대상은 항상 장소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이제 회상은 과거의 한 시점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맥심 드 윈터와의 첫 만남이다. 고아가 된 후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로 고용되어 여행중이었다. 말동무라고 하지만 거의 하녀 수준이다. 그런 그녀에게 드 윈터 씨가 다가온다. 반 호퍼 부인의 병으로 둘의 만남이 많아진다. 이들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 맥심이 그녀에게 청혼한다. 둘의 나이 차가 적지 않음에도 결혼한다. 단 화려한 결혼식은 없다.

 

맥심에게는 레베카라는 전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고로 죽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아름답고 멋지고 활동적이고 감각이 뛰어난 여주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경쟁할 수 없다. 그리고 한 번도 귀족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에게 맨덜리의 삶은 너무 낯설다. 거기에 레베카를 추종하는 댄버스 부인의 존재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신혼 여행 후 맨덜리 영지로 돌아온 이 부부에게 삶은 현실이 된다. 특히 그녀에게는 더욱 더. 소설의 전반부는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부정확한 영화 이미지가 살짝 끼워든다.

 

주눅 들고 익숙하지 않은 맨덜리의 생활은 그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남편도 영지로 돌아온 후 바쁘게 돌아다닌다. 밀렸던 일에 집중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자신이 여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전 여주인 레베카와 비교되고,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다. 자신이 지닌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그녀를 볼 때 안쓰럽다. 거의 신경쇄약 직전의 여자 같다. 집안 가득 들어차 있는 레베카의 흔적과 유산은 그녀를 더욱 괴롭힌다. 레베카가 탔던 보트와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좌초한 선박 때문에 발견된 보트와 시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화자의 심리 변화를 주로 다루는 스릴러에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현실로 변한다. 이 현실은 걱정의 대상이 바뀌면서 시작된다. 이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그녀를 어른이자 여주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바로 레베카에 대한 진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느끼던 불안감과 공포는 이제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이 반전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하지만 진정한 반전은 뒤로 가면서 이어진다.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결국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반전이자 첫장에서 맨덜리가 없다고 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밋밋한 부분이 많다. 공포감을 조성해주지도 않고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댄버스 부인이 만들어내는 몇 가지 장치와 행동이 나에게 공포와 억압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이후 다른 소설들에서 자주 본 설정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태위태한 화자의 심리 변화는 어떤 파국을 가져올까 기대하게 만든다. 이것은 끝까지 변함없다. 히치콕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본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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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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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이도 다케루란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켜준 것은 그 유명한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이란 작품이다. 그 이후 그의 작품을 몇 편을 읽었지만 이전 같은 재미를 제대로 누린 적이 없다. 첫 작품이 준 인상이 너무 강한 것도 이유 중 하나고, 이 시리즈를 그 뒤 일부러 읽지 않는 탓이다. 그러다 만난 이번 소설에서 살짝 이전 재미를 기대했다. 강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전개 말이다. 결론만 먼저 이야기하면 아니었다. 이전 작품과 다른 방향으로 이 소설을 썼다. 사회파 의학소설이란 평이 있는데 그 장대함에 비해 재미는 사실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시리즈의 첫 권 같은 느낌이랄까.

 

가상도시 나니와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그냥 무난하다. 오래된 개업의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신종인플루엔자 캐멀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 양상을 보면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신종플루 사태와 거의 비슷하다. 매스컴을 통한 공포 분위기 조성과 백신 열풍은 엄밀한 과학적 분석이나 대처를 넘어 진행되었다. 소위 광풍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캐멀이 지닌 위험성을 과대 포장한 세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서 한국과 다른 원인을 보여준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한국에서 신종플루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때 가장 덕을 본 것은 제약회사다. 타미플루란 약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백신을 꼭 맞아야 하는 필수였다. 지금도 이 단어를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와 글들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소설 속에서처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종플루로 죽는 사람보다 계절성 인플루엔자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공포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어떤 사태로 이어지는지 그대로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런데 작가는 신종플루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소설은 쓴 것이 아니다. 읽으면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의사 부자가 사라진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했다.

 

신종플루 캐멀에 대한 사실을 밝히면서 이야기는 1년 전으로 돌아간다. 동경 특수부의 에이스 가마가타 마사시가 나니와로 부임해오고, 지사와 만난다. 갑자기 변한 전개에 어리둥절할 때 무라사메 지사를 통해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좌익도 우익도 아닌 의익(醫翼)이다. 의료를 통해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를 변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이다. 일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을 깨트리고자 하는 시도다. 그러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대응책 중 하나가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 전략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과 비슷한 설정을 하나 더 발견했다. 그것은 룰렛이란 대응책이다. 하나의 스캔들이나 사건이 터졌을 때 다른 추문이나 사건으로 돌려 막는 것을 말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일어났다. 7~80년대 간첩단 사건이나 21세기 연예인 스캔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문화 구조와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이다 보니 전략도 비슷한 모양이다.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과 함께 룰렛은 읽으면서 실제로 가장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혼란을 주는 인물은 바로 히코네다. 그는 대단한 통찰력과 분석력과 기획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다른 등장인물들과 대비되는 동시에 이 소설이 시리즈의 첫 권이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왠지 모르게 장대한 이야기의 도입부이자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멈췄다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가 앞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설정은 분명하게 보여줬다. 일본에 무지한 나에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캐릭터나 사건 등이 주는 재미가 부족하다. 거대한 헤게모니 싸움과 사회파 의학소설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말이다. 오락적 재미보다 지적 재미가 더 큰 소설이라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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