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5
백상준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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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가 백상준의 <섬>을 연작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가장 긴 작품이자 대상 수상작인 <섬>과 <천사들의 행진>과 <거짓말>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을 단편으로 읽어도 상관없지만 이야기가 이어져있다. 읽을 때보다 모두 읽은 지금 그냥 한 편으로 엮어내면서 그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드러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런 작업을 했을 때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명의 분위기를 녹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섬>은 이전 수상작을 바탕으로 분량을 더 늘였다. 좀더 긴 작품으로 바뀌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다음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이런 변화는 읽으면서 잘 느끼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작에 대한 기억이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다음은 분량의 변화다. 읽으면서 경쾌한 분위기와 고립된 생존환경에 처한 주인공에 몰입하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마지막 <거짓말>에서도 반복되는 설정이다. 연작으로 만들어지면서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나는 전설이다>이다. 작품 속 상황이 많이 인용되고 비교되지만 다른 결말을 가진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주인공이 처한 환경은 다르다. 이런 다른 환경과 전개는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설정에 비롯한 것 같다. <나는 전설이다>가 마지막 인간의 생존이 전설이 되는 반면 <섬>은 고립되고 이기적인 현대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연대가 사라지고 경쟁만 남는 것이다. 마트 물건을 둘러싼 은밀한 대결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중간에 넣은 장면과 <거짓말>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로 이어진다.

 

이전보다 더 섬세해지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개작전의 경쾌함이나 함축성은 조금 사라진 듯하다. 아파트란 공간을 섬으로 설정한 것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섬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막은 것은 조금 아쉽다. 물론 이것에 대한 변명이자 이유를 다음 이야기 <천사들의 행진>에서 보여준다. 이 단편은 아마 가장 비열하고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은유이자 역설일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좀비로 변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남성의 성폭력과 강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 말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로 실명한 주인공과 그로 인해 그녀가 겪은 성폭력이 여고생을 통해 다시 재현될 때 가장 무서운 존재가 천사로 변신하는 모습은 삶이 지닌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연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거짓말>은 좀비로 변한 세계에서 생존한 군인들 이야기다. 모든 군인들이 좀비로 변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생존자가 있고 좀비를 공격한다. 하지만 실탄의 한계에 부딪힌다. 연료가 부족하다. 왜 어떻게 좀비로 변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화기를 보유한 군이 좀비 때문에 무력해진다. 몇 명의 생존자만으로 수백 만의 좀비를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좀비를 토벌하기 위해 나선 그들의 부대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오히려 안전한 곳이 된다. 이 또한 섬과 다를 바가 없다. 섬에 갇힌 군이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다. 그러나 명령 체계는 살아있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존재한다. 중대장과 말년 병장이 친구라 하여도. 그리고 여자가 있는 곳에 또 다른 성폭력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좀비를 지워버리면 군대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모든 군바리들이 왜 이런 일을 하지? 하는 의문을 다시 떠올린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 때의 남자들에게 최상의 선택일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휘감고 돌아다니는 불안과 공포는 자살이란 형식으로 표출된다. 생존이란 가장 큰 현실 앞에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포기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거나 철저한 명령체계의 군대는 외부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들이 또 다른 해법을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만나는 현실은 전편에서 보여준 몇몇 장면의 해설이자 인간이 가진 혹은 현실이 보여준 거짓말을 그대로 드러낸다. 혹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충격적인 반전 혹은 블랙 코메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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