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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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119일을 다룬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전봉준의 입을 통해 나온 종로 사거리 처형에 맞춘 듯한 이야기 전개와 설정 때문이다. 그가 가진 이상과 이력은 이 처형을 위해 그냥 사그라진다. 그가 의도적으로 체포되고 자신의 죽음으로 동학의 새로운 기회를 노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너무나도 무력한 모습과 이기적인 욕망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이에 비해 그를 회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토가 훨씬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행동은 정말 온갖 욕을 다하게 만들지만.

 

한때 10만의 동학도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 녹두장군의 체포와 처형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역사 속 한 장면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역량과 활약이 그 시대의 한 획을 긋고 민중의 힘을 보여줬다고 해도 동학도에게 거짓 주문을 외게 하고 죽음의 길로 이끈 것에는 자연스레 반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과연 10만이 일본군 몇 백에 무너졌는가 하는 의문이다. 6.25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 때문에 물러나야만 했던 역사를 생각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연발총이 지닌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이 과장되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동학전쟁의 성과나 패배를 뒤로 하고 전봉준 한 명에게 집중하자. 의도적으로 잡혀 사형당하려고 하는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를 압송하는 과정에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그의 욕망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자 비극이다. 이때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작가의 창작인지 잘 모르겠지만 전봉준의 압송은 가는 길 내내 피가 낭자하다. 그를 태운 가마를 네 명의 장정이 옮겨야 하는데 때는 겨울이다. 옮기는 장정 중 한 명이 발을 삐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죽임을 당한다. 혹시 동학도가 전봉준을 구하기 위해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단순히 가마꾼만 죽는 것이 아니다. 가는 도중에 지난 주막이나 가정집도 이 피해를 비껴갈 수 없다. 그들이 죽는 이유는 역시 단 하나다. 바로 전봉준의 행적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다. 그가 바라는 죽음을 이루기 위해 민초들이 또 죽어나간다. 이미 10만의 동학도를 죽음으로 이끈 적이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살리기 위한 시도가 그가 지나가는 행로를 죽음의 길로 만들었다. 그 처참함은 근래 보기 드문 모습이다. 개인적 감상으로 말한다면 전봉준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공범자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이 소설의 가치는 그 피의 행로와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조선의 현실 인식이다. 그 시대의 풍경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전봉준의 여정이라면 시대의 변화를 깨닫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아는 그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순간, 기존 가치관에 빠져 그것을 따라가는 순간 그가 바라는 혁명은 사라지고 단순한 자리 교체만 있을 뿐이다. 실제 이것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좀 덜 잔인하고 세련된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다. 넓게 새롭게 세계를 인식하고 보지 못하면 이런 과오는 그대로 반복된다.

 

개인적으로 이토를 통해 나오는 궤변은 흥미로웠다. 이 궤변이 전봉준을 좀더 흔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궤변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은 그 당시 역학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이 어떤 식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 합병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것은 다시 현대 미국이 자국에 유학생을 받아들인 후 그들이 각 나라로 가서 미국 추종세력으로 변하게 만든 것과 비슷한 통치 방식이다. 지금 한국도 이런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전봉준의 의도로 인한 비참하고 처참한 죽음을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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