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읽었다. 집에 찾아보면 동서판을 제외하고 다른 판본도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출간되고 나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구해놓았다. 늘 그렇듯이 그냥 구해만 놓았다. 이전에 히치콕의 영화로 본 적이 있어 흔쾌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십 수 년 전에 영화로 봤는데도 말이다. 지금 기억으로 그 영화가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었다는 느낌은 없다. 히치콕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런 기억 때문에 책에 손이 쉽게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을 읽으면서 나의 조악한 기억력에 다시금 좌절한다. 영화 속 이미지 하나를 제외하면 거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맨덜리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곳은 이제 없다. 이 회상은 없는 곳을 대상으로 한다. 추억과 기억의 대상은 항상 장소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이제 회상은 과거의 한 시점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맥심 드 윈터와의 첫 만남이다. 고아가 된 후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로 고용되어 여행중이었다. 말동무라고 하지만 거의 하녀 수준이다. 그런 그녀에게 드 윈터 씨가 다가온다. 반 호퍼 부인의 병으로 둘의 만남이 많아진다. 이들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 맥심이 그녀에게 청혼한다. 둘의 나이 차가 적지 않음에도 결혼한다. 단 화려한 결혼식은 없다.

 

맥심에게는 레베카라는 전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고로 죽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아름답고 멋지고 활동적이고 감각이 뛰어난 여주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경쟁할 수 없다. 그리고 한 번도 귀족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에게 맨덜리의 삶은 너무 낯설다. 거기에 레베카를 추종하는 댄버스 부인의 존재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신혼 여행 후 맨덜리 영지로 돌아온 이 부부에게 삶은 현실이 된다. 특히 그녀에게는 더욱 더. 소설의 전반부는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부정확한 영화 이미지가 살짝 끼워든다.

 

주눅 들고 익숙하지 않은 맨덜리의 생활은 그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남편도 영지로 돌아온 후 바쁘게 돌아다닌다. 밀렸던 일에 집중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자신이 여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전 여주인 레베카와 비교되고,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다. 자신이 지닌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그녀를 볼 때 안쓰럽다. 거의 신경쇄약 직전의 여자 같다. 집안 가득 들어차 있는 레베카의 흔적과 유산은 그녀를 더욱 괴롭힌다. 레베카가 탔던 보트와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좌초한 선박 때문에 발견된 보트와 시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화자의 심리 변화를 주로 다루는 스릴러에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현실로 변한다. 이 현실은 걱정의 대상이 바뀌면서 시작된다. 이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그녀를 어른이자 여주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바로 레베카에 대한 진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느끼던 불안감과 공포는 이제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이 반전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하지만 진정한 반전은 뒤로 가면서 이어진다.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결국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반전이자 첫장에서 맨덜리가 없다고 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밋밋한 부분이 많다. 공포감을 조성해주지도 않고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댄버스 부인이 만들어내는 몇 가지 장치와 행동이 나에게 공포와 억압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이후 다른 소설들에서 자주 본 설정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태위태한 화자의 심리 변화는 어떤 파국을 가져올까 기대하게 만든다. 이것은 끝까지 변함없다. 히치콕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본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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