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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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다. 이 소설을 시작한 것은 예전 PC통신 천리안 동호회 멋진신세계다. 그 후 몇 가지 설정이나 전개 방식이 변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대로다. 작가의 말에서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하나씩 알려줄 때 책소개를 읽고 가장 먼저 생각한 작품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없었다. 그 이유는 인간보다 유전자에 내가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힘에 의해 인간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이 힘을 획득한 인간들의 욕망과 의지가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감옥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천슈란의 말에 한 여성 사형수가 끔찍한 일을 벌인다. 그것은 자신의 눈알을 파내고, 자기 아들을 목 조르는 것이다. 의식과 의지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곧 일본으로 넘어간다. 십대 소년 후지이 스스미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발견과 그 소년이 조사 도중 경찰서를 벗어난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단순하게 보면 형사의 실수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뒤에 나올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설정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부제인 지배하는 인간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소설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초인들, 2부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 다르다. 1부는 흰원숭이들에게 보내는 메일로 시작한다면 2부는 류잉춘의 메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는 1부에서 보통 사람이었던 안시현이 2부에서 능력자로 변한 것이다. 이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때 이 능력자들을 순간적으로 휘감아오는 자살충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능력이 지닌 한계를 알려줄 때 이 정보가 그들에게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을 방어하거나 처리하는 방법도 같이.

 

호모도미난스의 능력은 어디에서 처음 생겼을까? 이 가설에 대한 답을 홍콩 까울룽씽자이에서 찾는다. 예전에 홍콩 영화에 자주 나왔던 공간이다. 단일공간으로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었던 이 구역에서 유전자가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이 공간이 해체되면서 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번식한다. 능력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능력자가 바로 류잉춘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계승하기 위한 사람으로 시현을 선택한다. 처음에 금강승이란 말뜻을 몰랐는데 나중에 이 능력을 이어받는 사람을 의미했다. 자살충동에 가끔 휩싸이는 류잉춘이 자신의 능력과 유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이 능력을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것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하지만 스스미처럼 미성년자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슈란처럼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채우려는 사람을 등장시켜 그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한다. 제어되지 못하는 절대 권력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과장되었지만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이 능력이 한 인간에게 작용할 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것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라고? 그럼 대단한 사람이다.

 

초능력자들이 나오지만 이들의 멋진 대결은 없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이것은 바뀐다. 이들의 능력은 보통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이 능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어느 순간에 작용하는지 보여줄 때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나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조종하여 나의 욕망을 채운다고 해도 진심이 사라진 그 틈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이것을 위한 설정으로 자살충동이란 설정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캄팻이 불교의 명상을 통해 삶의 의지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식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른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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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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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혹한 책이다. 저자가 건축학자인 것도 한몫했다. 여행의 속도를 인생에 비유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책은 안도 다다오의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장으로 문을 연다. 과연 여행이 사람을 만들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해석하면 맞는 말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것 중 많은 것들이 여행으로 채워져 있다. 더 많은 것은 친구들과의 생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일이 중심을 차지하면서 친구들과의 생활이 멀어졌다. 이때 가끔 함께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는 항상 여행이 들어있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들이 서로를 연결해준다.

 

여행의 속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도로가 더 많이 뚫리고, 비행기를 쉽게 타게 되면서 정체는 불안감과 짜증을 불러왔다. 여유와 느긋함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든 때문만은 아니다. 정체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이 때문에 날려 보낼지도 모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즐기기보다 앞으로 할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책은 빠른 속도에서 영의 속도로 내려가는 구성이다. 고속열차에서 묘지까지 이어지는 이 일련의 여행은 건축학자답게 건축물들이 우선이다. 그가 세계 곳곳을 다닌 것도 건축물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다. 이 여정에 탈 것들과 걷는 것이 하나의 도구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도구들과 도시과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낯익은 이름과 건물도 가끔 나오지만 낯선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건축학에 대해서는 대학 때 강의 하나 들은 것이 전부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이름이라고 느꼈다면 이 수업과 다른 책에서 본 것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인 저자가 이 책 속에 가장 많이 다룬 나라는 일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유학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인 것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 고속열차와 기차와 전차와 여객선과 도보로 하는 여행의 대부분이 일본이다. 가끔 프랑스나 스페인이 하나둘 그 자리 끼어들기도 한다. 이제 겨우 한 번 일본을 다녀온 내가 그것을 알기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만화와 소설에서 간접 경험한 것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연상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의 이런 일부 지역 편중은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저자가 비행기보다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행은 다양한 속도를 경험하게 만든다. 가장 빠른 비행기에서 기차나 승용차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 두 발로 걸으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봐야 하는 순간도 있다. 속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나 고속열차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고 정확하게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반면에 두 발로 걸어다니면 좀더 많이 좀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얻고 오는 것도 바로 이런 도보 여행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걸은 만큼 얻는 것도 많다. 하지만 여기에 빠지면 한 지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에는 탈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한 저자의 경험은 상당히 부럽다. 미국에 조금 산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차로 여행한 이야기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가 건축가다보니 이 책은 건물들에 대한 단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단상들 중 “타이완은 지역개발을 우선으로 여겨 무조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적인 건물들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라고 한 대목을 읽었을 때 ‘한국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의뢰인들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정보는 놀라웠다. 그가 멋지다고 말한 리옹의 오렌지 큐브의 어떤 부분은 욱일승천기 느낌이 나서 거부감이 들었다. 한입 베어 먹은 오렌지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 속에 나온 건축물들 대부분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이 건축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학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현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축물을 조금 더 좋아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건물의 효용성이나 지역과의 조화 등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불어 둘러보고 싶은 곳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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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날
유현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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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느와르 풍 소설이다.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조선족과 조선족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아직 너무나도 낯설다. 이 낯설음은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그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소설은 그 사회를 정면에서 보여줄까?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당 아줌마를 포함해서 말이다. 극적 장치를 위한 과장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사실이나 분위기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 굉장히 흡입력이 있다.

 

시작은 20년 전 회상에서 한 모자가 산을 걷는다. 이들의 대화를 보니 남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사람이란 느낌이 먼저 드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걷고 있던 곳은 한국의 어느 곳이다. 바로 이때가 첫 번째 날이 있었던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한 남자의 불안한 일상이 나온다. 불법입국한 조선족 정문환이다. 용정 건달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준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나 형사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발견되면 강제 귀국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돈을 벌어 아들에게 보내야 하는 그에게 이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때 북경에서 그와 문제가 있던 조폭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잡힌 그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성우 기자는 아내가 작가다. 조 기자는 HM캐피탈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친구를 찾아갔다. 이 회사의 사장은 제임스 리라는 조선족이다. 그런데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아내는 소설을 몇 권 썼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논픽션이다. 한국의 조선족 사회를 다루는 과정에 HM캐피탈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다. 스토킹의 내용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이 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인데 조 기자가 집에 가니 아내와 아들이 시체로 변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내면은 황폐해지고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그의 의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임스 리는 20년 전 회고에 나왔던 소년의 현재 모습이다. 그는 금융으로 조선족 사회를 휘어잡고 있던 고려행정사의 박 령감을 수족처럼 부린다. 이 둘은 공생관계다. 제임스 리는 박 령감의 잠자고 있던 욕망을 일깨워 그를 이용한다. 령감의 욕망은 강남 진출이다. 제임스 리는 더 큰 것을 바란다. 처음에는 그 윤곽이 보이지 않는데 과거 사건을 통해 그 그림이 드러난다. 사실 이 사건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시스템 불안정이 가져온 당연한 수순이다. 20년 전 과거의 진실이 드러날 때 지역 유지들의 부패와 숨겨진 잔혹성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던 단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한다. 이 욕망이 충돌하고, 살인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속고 속이고, 계획하고 기획하면서 일을 꾸민다. 하지만 이들은 더 큰 세력 앞에 너무 무력하다. 권력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격을 노린다. 쉬울 리가 없다.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로 어느 순간 바뀐다. 정보도 권력 앞에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과정과 결말에 드러나는 사연들은 결코 통쾌하지 않다. 승자의 활기가 사라지고 슬픈 사연들만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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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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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김성호가 주인공이다. 이 프로파일러의 정체가 좀 묘하다. 처음 읽을 때는 평범한 프로파일러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야기의 초점이 처음과 달라진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교차하고 겹쳐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으로 가는데 너무 많은 단서를 흘려놓았다. 범인들이 너무 쉽게 밝혀진다. 만약 범인 찾기만 있었다면 이 소설은 실패다. 이것을 상쇄하는 설정과 엔딩이 있기에 지금 이 소설보다 다음 이야기가 더 기다려진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다음 이야기는 언제 나올지 기대한다.

 

일베를 모티브로 한 듯한 주간파 사이트에 한 성형여성을 비하하고 모욕주고 살해하자는 글이 올라왔다. 몇 사람이 동조하고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모인 사람은 처음 그 글을 올린 중학생 준희뿐이다. 온라인 상에서만 용감했던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 밤 하나리가 죽었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준희가 지목되었다. 범죄행동과학계 프로파일러인 성호가 준희를 상대로 심리분석을 위해 지원나왔다. 정황이나 심리 상태 등을 보았을 때 이 소년이 범인일 확률이 매우 낮다. 담당 형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준희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인터넷에 김성호의 신상털기가 진행된다. 그는 다른 사건에 배정된다. 삼보섬의 실종 사건이다.

 

삼보섬에서 세 명의 여성이 실종되었다. 가족들은 가출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방송에서 이것을 보도하면서 사건이 유명해졌다. 삼보섬의 강대수 형사가 서울에 지원을 요청했다. 현장과 증거 자료 등으로 범인상을 프로파일링해달라는 것이다. KTX를 타고 가려고 하는데 동행이 한 명 있다. 여도윤이다. 용의자가 보낸 듯한 필적 감정 자료를 삼보섬 강대수 형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둘은 함께 경찰서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껄끄럽다. 하나의 사건을 위해 같이 움직이는데 따로 논다. 여도윤의 썰렁한 농담에 반응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에 뭔가 새로운 콤비의 탄생인가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나리 살인 사건을 풀어내는데 실패한 김성호 경사. 새롭게 도착한 삼보섬에서 현장을 돌고 용의자나 친인들을 만나면서 프로파일링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다. 납치 실종이 아닌 가출로 판단하면서 생긴 기초적인 문제다.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성호가 화를 낸다. 살짝 순간적으로 알력이 생긴다. 하지만 삼보섬 형사들의 신속한 대처와 조사로 범인상을 추리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 도식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른 소설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삼보섬에서 실종 여성들을 수사하는 도중에 과거의 기억 단편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어릴 때 다쳐 사라진 기억의 단편들이 되살아나면서 이것이 과연 이 삼보섬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삼보섬의 어떤 밤에 수상한 두 남자가 만나 이상한 대화를 한다. 분명히 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것이다. 자랑과 충동이 교차하는 대화다. 이때 비교적 쉽게 한 명의 범인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단숨에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진실은 기억 속에 왜곡된 채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독성이 좋다. 단숨에 읽었다. 하지만 감탄을 자아낼 설정이나 구성이 아니다. 만약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프로파일러 성호의 삶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시리즈로 발전하게 될까 하는 기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 파격적인 인물이 바로 성호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과정에 보여준 그의 다른 모습과 숨겨진 이야기는 처음에 준희와 대화하고 그 아이를 변호하던 그가 아니다. 이 파탄을 작가는 곳곳에서 드러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너무 많다. 조금 줄였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넘겨본 곳에서는 작가가 참 많은 단서를 넣어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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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1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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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영화도 재밌게 봤다. 집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었더니 영화도 보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봤다. 내가 먼저 읽은 책을 빌려줘 좋아한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하다. 사건도 사고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빨려 들어간다. 빈 여백으로 남은 공간들이 묘하게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 편의 동양화 같은 소설이었다.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느낌과 조금은 닮아 있다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이런 기억을 가진 작가의 신작 장편이 나왔으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몇 평의 공간이 필요할까? 솔직히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욕심이 많아지고 가지고 사는 물건이 많아짐에 따라 공간 부족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나의 삶도 공간도 그렇다. 방 한 칸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 방 두 개도 부족해지게 되었다. 물욕이 늘어남에 따라 마음의 여유는 더 사라졌다. 물론 이 소설이 이런 것을 소재로 쓴 것은 아니다. 마흔다섯에 대형 광고 회사를 그만 두고 월 10만 엔의 검소한 생활을 계획한 교코의 일상과 도전을 담았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엄마의 간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낡았지만 내부는 깨끗한 세 평 방을 가진 연꽃 빌라에 오게 된 사연이다.

 

앞부분에 그녀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간결하게 설명된다. 자신의 삶보다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자신들의 소득보다 비싼 집을 샀고, 남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일만 했다. 엄마의 욕심은 끝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당연히 투영된다. 집에서는 엄마의 간섭이, 회사에서는 접대라는 문화와 여직원들의 질투와 질시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녀의 삶은 거품 경제의 화려함도 누려봤지만 그 내면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월 10만 엔 생활자다. 물론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는 그녀가 독립을 결심하고 나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꽃 빌라에 오게 된 것도 3만 엔이라는 저렴한 월세 때문이다.

 

연꽃 빌라에는 모두 4명이 산다. 교코, 구마가이 씨, 고나쓰 씨, 사이토 군 등이다. 이들은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 다만 구마기이 씨와 교코가 종종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한다. 고나쓰 씨나 사이토 군은 인사 정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모두 함께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소개나 이런 저런 일로 3명이 함께 한 것이 최고다. 각자의 삶을 그냥 살아갈 뿐이다.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폭력식당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이토 군이 엄청난 폭력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한 적이 있지만 실제 개입하지는 않았다. 구마가이 씨 말처럼 아는 척하는 것이 사이토 군에게 더 힘든지도 모른다.

 

쳇바퀴 같은 회사 일에 익숙해진 몸은 여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퇴직한 후 며칠 동안 교코가 보여준 행동과 심리 묘사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직장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벗겨내기 위해 그녀는 집주변을 탐방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본다. 구마가이 씨 소개로 좋은 커피숍도 발견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 불안감도 살짝 든다. 이것을 친구에게 이야기해보지만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다 주소를 보고 엄마가 찾아온다. 남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는 딸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의 삶이 아닌 자신이 남에게 보이는 삶을 먼저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에 조카가 와서 고모의 방을 본 후 보여준 반응과 정반대의 것이다.

 

작고 깨끗하고 나무와 풀이 있는 빌라지만 오래 전에 지은 집이다. 여름이면 모기, 장마철에는 습기,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사실적으로 적어간다. 편안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던 사람이 자연 바로 옆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은 생활을 더 힘들게 한다. 모기와 습기는 그렇다고 하지만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도서관이나 다른 곳을 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안팎의 온도가 같은 추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런 그녀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교코의 삶을 읽다보면 부러움이 먼저 생긴다. 버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일상이 주는 힘겨움도 있지만 자신의 삶에 긍정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기쁨도 늘어난다. 사실 그녀가 집을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오빠가 보여준 반응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동생의 삶을 인정해준다. 그녀의 엄마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반응이다. 그래서 엄마와 만나는 것이 불편하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딸이 장기 해외 출장을 갔다는 거짓말도 한다.

 

내가 백수로 생활할 때 우리 부모도 그렇게 강하게 직장을 구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 어쩌면 불안했을지 모르지만 믿는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나의 삶이 그렇게 경쾌하지도 않았고 나이도 적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까? 그녀의 삶에 좀더 공감한다. 어쩌면 그녀가 거품경제를 포함하여 사치를 충분히 누렸기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구마가이 씨의 삶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부분이다. 이제 그녀의 독립이 겨우 1년 지났다. 그 후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지만 한두 번 더 적응기를 거치면 점점 더 좋은 연꽃 빌라 주민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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