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1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카모메 식당>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영화도 재밌게 봤다. 집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었더니 영화도 보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봤다. 내가 먼저 읽은 책을 빌려줘 좋아한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하다. 사건도 사고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빨려 들어간다. 빈 여백으로 남은 공간들이 묘하게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 편의 동양화 같은 소설이었다.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느낌과 조금은 닮아 있다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이런 기억을 가진 작가의 신작 장편이 나왔으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몇 평의 공간이 필요할까? 솔직히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욕심이 많아지고 가지고 사는 물건이 많아짐에 따라 공간 부족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나의 삶도 공간도 그렇다. 방 한 칸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 방 두 개도 부족해지게 되었다. 물욕이 늘어남에 따라 마음의 여유는 더 사라졌다. 물론 이 소설이 이런 것을 소재로 쓴 것은 아니다. 마흔다섯에 대형 광고 회사를 그만 두고 월 10만 엔의 검소한 생활을 계획한 교코의 일상과 도전을 담았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엄마의 간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낡았지만 내부는 깨끗한 세 평 방을 가진 연꽃 빌라에 오게 된 사연이다.

 

앞부분에 그녀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간결하게 설명된다. 자신의 삶보다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자신들의 소득보다 비싼 집을 샀고, 남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일만 했다. 엄마의 욕심은 끝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당연히 투영된다. 집에서는 엄마의 간섭이, 회사에서는 접대라는 문화와 여직원들의 질투와 질시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녀의 삶은 거품 경제의 화려함도 누려봤지만 그 내면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월 10만 엔 생활자다. 물론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는 그녀가 독립을 결심하고 나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꽃 빌라에 오게 된 것도 3만 엔이라는 저렴한 월세 때문이다.

 

연꽃 빌라에는 모두 4명이 산다. 교코, 구마가이 씨, 고나쓰 씨, 사이토 군 등이다. 이들은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 다만 구마기이 씨와 교코가 종종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한다. 고나쓰 씨나 사이토 군은 인사 정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모두 함께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소개나 이런 저런 일로 3명이 함께 한 것이 최고다. 각자의 삶을 그냥 살아갈 뿐이다.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폭력식당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이토 군이 엄청난 폭력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한 적이 있지만 실제 개입하지는 않았다. 구마가이 씨 말처럼 아는 척하는 것이 사이토 군에게 더 힘든지도 모른다.

 

쳇바퀴 같은 회사 일에 익숙해진 몸은 여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퇴직한 후 며칠 동안 교코가 보여준 행동과 심리 묘사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직장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벗겨내기 위해 그녀는 집주변을 탐방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본다. 구마가이 씨 소개로 좋은 커피숍도 발견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 불안감도 살짝 든다. 이것을 친구에게 이야기해보지만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다 주소를 보고 엄마가 찾아온다. 남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는 딸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의 삶이 아닌 자신이 남에게 보이는 삶을 먼저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에 조카가 와서 고모의 방을 본 후 보여준 반응과 정반대의 것이다.

 

작고 깨끗하고 나무와 풀이 있는 빌라지만 오래 전에 지은 집이다. 여름이면 모기, 장마철에는 습기,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사실적으로 적어간다. 편안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던 사람이 자연 바로 옆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은 생활을 더 힘들게 한다. 모기와 습기는 그렇다고 하지만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도서관이나 다른 곳을 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안팎의 온도가 같은 추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런 그녀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교코의 삶을 읽다보면 부러움이 먼저 생긴다. 버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일상이 주는 힘겨움도 있지만 자신의 삶에 긍정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기쁨도 늘어난다. 사실 그녀가 집을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오빠가 보여준 반응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동생의 삶을 인정해준다. 그녀의 엄마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반응이다. 그래서 엄마와 만나는 것이 불편하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딸이 장기 해외 출장을 갔다는 거짓말도 한다.

 

내가 백수로 생활할 때 우리 부모도 그렇게 강하게 직장을 구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 어쩌면 불안했을지 모르지만 믿는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나의 삶이 그렇게 경쾌하지도 않았고 나이도 적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까? 그녀의 삶에 좀더 공감한다. 어쩌면 그녀가 거품경제를 포함하여 사치를 충분히 누렸기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구마가이 씨의 삶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부분이다. 이제 그녀의 독립이 겨우 1년 지났다. 그 후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지만 한두 번 더 적응기를 거치면 점점 더 좋은 연꽃 빌라 주민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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