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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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불편한 소설이다.

동물을 먹을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몰래 숨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식 인증한 인육을 사고 팔고 먹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배양육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바다에 있는 물고기를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부분은 작가가 다루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육이 정육시장에 편입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설명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사람이란 단어를 삭제한 것이다.

사람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죄책감을 덜어내었다.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마르코스 테호는 육가공 공장에서 일한다.

그가 인육 공장에서 일하는 이유는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다.

인육이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세계에서 요양원에서 죽은 사람은 고기로 팔 수 있다.

요양원 비용을 제대로 내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도 한다.

이전처럼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면 인육을 먹기 위해 무덤을 파헤친다.

그가 근무하는 육가공 공장 주변에는 인육을 먹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

이들을 스캐빈저라고 부르는데 한때 공장 안으로 침입한 적도 있다.

너무나도 강렬한 이들의 욕망은 후반부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마르코스는 얼마 전 아이가 죽었다.

이 상실감은 그의 아내가 집을 떠나게 하고, 그의 삶을 뒤흔든다.

돈이 아니면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기가 죽은 후 그는 의도적으로 인육 먹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의 산업이 된 그것의 공장 운영 방식 등이 앞부분에 나온다.

이 공장에서 신선한 고기를 사려는 독일의 바이어도 방문한다.

인간을 아예 먹을 수 있는 고기로 기르는 산업도 활성화된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공장에 도착한 인간들이 어떻게 정육 되는지도 자세히 보여준다.

이 장면은 현재 동물을 도축해서 분류하는 작업과 닮아 있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이 견뎌낸다는 것이 대단하다.


불행한 그의 일상에 아주 큰 변화가 하나 생긴다.

공장 매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고기용 암컷 한 마리가 선물로 제공되었다.

아내가 떠난 집은 황량하고, 이 고기용 암컷을 처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고기용 암컷을 집에 둘 때 해야 하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끔 색욕에 미친 남자가 이 암컷을 강간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발견되면 암컷과 강간한 남자 모두 도축 공장으로 간다.

이런 일은 공장에서 생기는데 이때도 강력한 처벌이 이어진다.

이런 처벌이 내려지는 이유는 인권이 아닌 고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공간이 확장되고 더 많은 일들이 생긴다.

자신의 몸을 인육으로 바치는 신흥종교, 집에서 상품을 길러 잡아먹는 유행.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했던 만행을 그대로 저지르는 인체 실험의 현장.

거대한 빚 탕감을 위해 자신을 사냥감으로 내놓는 사람들.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맛이 어떨까? 말하는 사회가 되었다.

읽으면서 불편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뛰어난 가독성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각인시키는 장면들에 눈을 떼기 힘들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자 충격이다.

이 장면은 이 바뀐 세계의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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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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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작가다.

검색하니 낯익은 제목의 책들이 나온다.

첫 장편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출간된 책이 상당히 적다.

이번 소설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교제 살인’이란 단어다.

좀더 범위를 넓히면 데이트 폭력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교제 살인이나 데이트 폭력이 언론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그 피해의 대다수는 여성들이고, 이 사건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나온다.

작가는 그런 피해자들 편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는 탐정사무소를 내세웠다.

이 탐정사무소 직원들은 과거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잔서는 25년 전 교제 살인으로 엄마를 잃었다.

단순히 시체를 본 것이 아니라 처참하게 타 죽는 모습을 보았다.

친척집과 보호소를 전전하다 성인이 된 후 경찰이 되었다.

엄마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녀의 경찰 생활을 거칠게 만들었다.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사람의 눈빛으로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용의자가 거짓말을 할 때,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폭발한다.

그녀의 뛰어난 능력도 이런 폭력 행위를 용인할 정도는 아니다.

경찰을 그만 둔 후 그녀는 엄마를 죽인 살인자 전택근을 죽이기 위해 25년 만에 무산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와 별 차이 없는 도시의 풍경.

전택근을 찔러 죽일 칼을 사서 살의를 다진다.

이런 그녀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로라미용실의 정 원장이다.

정 원장은 1층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2층은 탐정사무실로 사용한다.

찬서에게 탐정일을 맡기는데 이때만 해도 찬서는 탐정에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로라미용실을 찾아오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생각이 변한다.

가스라이팅과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구해달라는 요청.

스토커 범죄자를 아빠로 착각하면서 생기는 실수.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공책에 적은 세 사람의 남자들.

죽은 남자의 아이폰 속에 담긴 동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 등이다.


이런 다양한 데이트 폭력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보여준다.

불과 수십 년 전 우리가 가졌던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혐오들.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안이한 대처와 생각들.

순간의 실수를 피해자의 잘못으로 낙인 찍는 시선들.

이런 장면들을 보면 로라미용실의 복수가 아주 통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통쾌한 복수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법은 개인의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은밀하게 가해자를 찾아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라미용실 탐정과 조수는 각자의 실력을 발휘해 사건을 하나씩 해결한다.

이 과정에 찬서의 복수의지는 불타오르고, 전택근의 아들과 마주하는 일이 생긴다.


단순한 직선적인 복수극이 아니다.

과거 사실을 먼저 보여주고, 현실의 한계도 같이 다룬다.

왜 로라미용실 2층에 이런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는지 알려준다.

정 원장과 세린의 과거가 너무 빨리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다음 편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뭔가 여운을 남겨둬야 다음 권에서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전택근의 아들이 운영하는 술집과 그의 수상한 행동은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사건과 연결해서 풀어내는 장면은 전혀 예상 밖이다.

다만 마지막 복수극은 예상 가능한 것이고 너무 간단하게 처리한 것은 역시 아쉽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진 소설이라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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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빛 하늘 아래 푸꾸옥에서
이지상 지음 / 북서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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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두 여행지 중 한 곳이 푸꾸옥이다.

처음 이곳에 대한 소개는 베트남의 제주도 같은 곳이란 것이었다.

아마 한국 사람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았다.

이때만 해도 나의 관심 여행지는 다른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관심 여행지가 조금씩 바뀌었다.

이전에 가서 좋았던 곳도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시간 빼기가 쉽지 않다.

나의 관심사 덕분인지, 최근에 뜨는 곳인지 광고 알림에 푸꾸옥 여행이 많이 나온다.

푸꾸옥에 대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이 책을 펼쳤다.

나의 기대는 책을 읽자마자 사라졌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와 다른 방식의 편집과 내용이라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이지상 작가는 내가 생각한 그 이지상 작가가 아니다.

동명이인인데 이 작가의 다른 책은 검색에 나오지 않는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책은 사진도 많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작가는 가족과 함께 푸꾸옥 한달 살기로 왔다.

리조트 한곳에서 장기 투숙하면서 아주 느린 여행을 한다.

바쁘게 관광지를 돌면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나열하지 않는다.

리조트 주변의 식당과 과일주스 파는 곳과 마트 등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그리고 반복된 일상 속에서 푸꾸옥 사람들과 천천히 관계를 맺는다.

처음에는 뭐지? 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푸꾸옥에 길게 여행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정보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

기존 여행책들이 더 좋은 참고 자료다.

하지만 가족과 장기 투숙하면서 그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다면 권유할만하다.

여행이 단순히 보고 먹고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내가 리조트 직원에게 베트남어를 배우는 장면도 그 연장선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대과일에 대한 취향이 바뀐다.

오래 전 아내와 태국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1일 1망고가 며칠 지나면 다른 과일을 찾게 했기 때문이다.


강한 햇볕, 높은 체감 온도 등은 그냥 다니기 쉽지 않다.

그들은 킹콩마트에서 산 양산을 펼치고 다닌다.

하지만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지 않으면서 일사병에 걸리기도 한다.

가족 전체가 소식을 하는 듯해 화려한 먹방은 나오지 않는다.

동남아의 1인분이 충분하다고 할 때 특별히 양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리조트 주변 음식점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의 양은 더 늘어난다.

고마운 일이고, 그 이면에 깔린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런 관계는 일상의 대화와 SNS 친구맺기로 이어진다.

SNS는 그들의 대화를 더 매끄럽게 해주는데 그 일등공신은 구글번역기다.

점점 AI의 발전이 여행의 장벽을 조금씩 지우고 있다.


장기 투숙은 이웃과의 관계 맺기와 더불어 세밀한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같은 곳에 또 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그 변화.

이번에 가지 못하면 다음에 가면 되지 아는 여유로운 생활.

돈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현지인처럼 움직이는 여행.

바쁜 여행객들이 누리지 못하는 리조트 시설과 해변 수영 등.

아직 구체적인 정보를 모으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본듯한 관광지의 정보.

마지막 순간까지 아쉬움과 이별의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

읽는 내내 가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경험했던 동남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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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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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한때 이 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구해 읽었던 적이 있다.

집에도 꽤 많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취향을 벗어나면서 읽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이나 말한 한국 문학에 대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새로운 문학상 수상집이나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문제가 터졌을 때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그럼에도 이번에 읽게 된 것은 조경란 작가가 이제 이 상을 받았다는 부분에 놀랐기 때문이다.


집에 조경란의 소설이 몇 권 있다.

대할인의 시대에 마구잡이로 사 놓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언젠가 읽겠지 생각했지만 그냥 책더미 속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기억하고 있고, 관심을 둔 작가다.

인터넷 서점 책 표지를 보면 낯익은 표지들이 상당히 많은 것도 약간 의외다.

뭐 이런 한국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조금 뻘쭘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기에 한때 한국 대표 문학상이었던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은 정말 의외다.

그리고 이번 단편들이 과연 이전의 작품들보다 나은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이런 의문은 단편 소설에 대한 나의 낮은 이해 탓일 수도 있다.


대상작 <일러두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의 이야기다.

반찬집을 하는 미용과 복사집을 운영하는 재서다.

화자는 재서이고, 그는 미용의 삶을 훔쳐보고 관찰한다.

바로 다가가지 못하는 재서, 늘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 채 살아가는 미용.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이지만 미용의 삶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삶의 기억들이 터져 나온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흥신소의 사람 찾기가 이해되는 순간 미용의 삶이 더 다가온다.

<검은 개 흰 말>은 박사를 그만두고 우연히 새로운 길로 가게 된 시간 강사의 이야기다.

선배의 표현을 빌리면 집사인데 빈집에서 살면서 돌보는 알바다.

이 알바가 강사 시절보다 수익이 좋다.

이런 그녀에게 동생부부가 미국에 가면서 조카 설을 맡겼다.

그리고 설을 보살피는 와중에 실종에 관한 안전문자가 살짝 끼어든다.

설의 심리적 병, 실종된 사람에 대한 걱정,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등.


김기태의 <팍스 아토미카>는 강박증이 있는 남자 이야기다.

강박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하일지의 소설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나열하면서 그 강박의 수준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우화 같은 부분도 있다.

박민정의 <전교생의 사랑>은 제목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 이야기다.

아역 배우가 배우를 그만 둔 후 마주하는 현실과 영화판에 대한 이야기다.

낯익은 아역 배우들의 성공 이야기와 엇갈린 삶.

자신들이 등장한 영화이지만 미성년자라 볼 수 없었던 현실.

성인이 된 후 다시 그 영화를 보면서 드러나는 제작의 이면.

최미래의 소설과 더불어 가장 부담 없이 읽었다.


박솔뫼의 <투 오브 어스>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몇 가지 정보들이 눈길을 끌고, 좀더 세밀하게 읽어야 할 대목들이 생각난다.

제목을 보면서 아이들 TWS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성혜령의 <간병인>은 읽다가 이와 같은 수술을 한 여배우가 생각났다.

암으로 죽은 엄마, 엄마가 키우던 화분을 버리는 아버지.

자신도 암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방절제술을 하는 나진.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돌보기 위해 온 아버지의 어릴 때 동네 친구 미형.

현실적인 이야기와 불편한 감정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은 긴장감을 만든다.

최미래의 <항아리를 머리에 쓴여인>은 무겁지만 재밌다.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일로 생계는 유지하는 나.

그녀가 돌보는 아이 서라와 서라의 아버지.

나에게 더 많은 부탁이 올수록 돈이 쌓이지만 자신의 삶의 경계가 무너진다.

화자의 삶을 보면서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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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걷다 서점을 읽다 - B급 디자이너의 눈으로 읽은 도쿄 서점 이야기
김경일 지음 / 디앤씨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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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딱 한 번 가봤다. 그것도 도쿄만.

아주 오래 전이라 기억도 가물거린다.

이 책에 나온 서점 중에 가본 곳은 딱 한 곳뿐이다.

한국에도 있다가 사라진 북오프의 어떤 지점이다.

일본어를 잘 읽을 수 있었다면 아마 상당한 책을 사서 나왔을 것이다.

이때 여행의 목적이 책방을 도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구경만 하고 빈손으로 나왔다.

지금도 가끔 그때 내가 본 가격이 백 엔대였는지, 아닌지 헷갈린다.

아마 이 책을 읽고 갔다면 진보초 정도는 둘러봤을 것이다.

한때 한국의 헌책방을 돌면서 책을 열심히 모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가도 에세이스트도 아닌 책 디자이너다.

그의 직업은 도쿄의 서점을 돌아다닐 때 보는 부분이 나와 완전히 달랐다.

직업과 취미가 다르다보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 차이가 상당히 좋았다.

디자이너, 사진가, 미술가 등에 대한 풍부한 정보는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낯익은 이름이겠지만 나에겐 아주 낯설었다.

사진집이나 도록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관심사 밖이었다.

하지만 타국의 서점이라면 이 부분이 더 쉽게 책에 접근하게 해 줄 것 같다.

여행 중 서점을 방문했을 때 좋은 팁 하나를 배웠다.


많은 서점들이 나온다. 진보초와 북오프를 제외하면 모두 낯설다.

이 낯섦이 현재 일본 서점의 현황을 좀더 거리를 두고 보게 한다.

준쿠도의 텅빈 에스컬레이터 사진은 대형 서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서점 사진을 보면서 오래 전 사라진 종로서점이 떠올랐다.

한때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의 장소이자 책을 샀던 그곳.

진보초에 대한 정보를 좀더 세밀하게 수정하게 했다.

헌책방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책을 파는 서점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와나미 북카페는 한 번 가보고 싶다.

이와나미 신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물론 읽지는 못하지만 한국 번역본을 꽤 있다.

그리고 이와나미 출판사과 나쓰미 소세키 관계 부분은 상당히 재밌었다.


무지를 방문했을 때 한 켠에 놓여 있는 책을 본 듯하다.

상당히 간단한 표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물도 그렇다.

표지 이야기 빠질 수 없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82년생 김지영>이다.

저자는 한국판에 손을 들어주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오모테산도도 갔었는데 ‘산요도’의 벽화는 보지 못했다.

알았다면 무조건 그 주변에 가서 벽화는 구경했을 텐데.

저자가 얼마나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메이지진구야구장’ 편에서 나온다.

아! 산요도에서 만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 아사부키 마리코의 소설은 한국에 번역본이 없다.

대부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이 번역되는데 내가 놓친 것일까?


후반부로 넘어가면 대로변이 아닌 골목 등에 있는 서점들이 나온다.

덕후의 느낌을 자아내는 서점들도 있다.

오직 다자이 오사무만을 위한 서점인 ‘포스포렛센스’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서점 운영을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위한 서점을 연다는 것은 너무 멋지다.

자신이 모은 책과 새롭게 책을 구입해 빠른 나이에 서점을 시작한 사람들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부터 책을 온라인서점이나 아주 가끔 가는 헌책방에서 산다.

이런 현실에서 이 서점들의 존재는 오래 전 내가 책방 주인과 가졌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잊고 있던 관계, 열심히 책을 사던 열정, 어릴 때 꿈이었던 만화방 주인 등도.

몇 년 뒤 이 책의 개정 증보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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