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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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한때 이 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구해 읽었던 적이 있다.

집에도 꽤 많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취향을 벗어나면서 읽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이나 말한 한국 문학에 대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새로운 문학상 수상집이나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문제가 터졌을 때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그럼에도 이번에 읽게 된 것은 조경란 작가가 이제 이 상을 받았다는 부분에 놀랐기 때문이다.


집에 조경란의 소설이 몇 권 있다.

대할인의 시대에 마구잡이로 사 놓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언젠가 읽겠지 생각했지만 그냥 책더미 속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기억하고 있고, 관심을 둔 작가다.

인터넷 서점 책 표지를 보면 낯익은 표지들이 상당히 많은 것도 약간 의외다.

뭐 이런 한국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조금 뻘쭘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기에 한때 한국 대표 문학상이었던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은 정말 의외다.

그리고 이번 단편들이 과연 이전의 작품들보다 나은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이런 의문은 단편 소설에 대한 나의 낮은 이해 탓일 수도 있다.


대상작 <일러두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의 이야기다.

반찬집을 하는 미용과 복사집을 운영하는 재서다.

화자는 재서이고, 그는 미용의 삶을 훔쳐보고 관찰한다.

바로 다가가지 못하는 재서, 늘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 채 살아가는 미용.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이지만 미용의 삶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삶의 기억들이 터져 나온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흥신소의 사람 찾기가 이해되는 순간 미용의 삶이 더 다가온다.

<검은 개 흰 말>은 박사를 그만두고 우연히 새로운 길로 가게 된 시간 강사의 이야기다.

선배의 표현을 빌리면 집사인데 빈집에서 살면서 돌보는 알바다.

이 알바가 강사 시절보다 수익이 좋다.

이런 그녀에게 동생부부가 미국에 가면서 조카 설을 맡겼다.

그리고 설을 보살피는 와중에 실종에 관한 안전문자가 살짝 끼어든다.

설의 심리적 병, 실종된 사람에 대한 걱정,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등.


김기태의 <팍스 아토미카>는 강박증이 있는 남자 이야기다.

강박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하일지의 소설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나열하면서 그 강박의 수준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우화 같은 부분도 있다.

박민정의 <전교생의 사랑>은 제목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 이야기다.

아역 배우가 배우를 그만 둔 후 마주하는 현실과 영화판에 대한 이야기다.

낯익은 아역 배우들의 성공 이야기와 엇갈린 삶.

자신들이 등장한 영화이지만 미성년자라 볼 수 없었던 현실.

성인이 된 후 다시 그 영화를 보면서 드러나는 제작의 이면.

최미래의 소설과 더불어 가장 부담 없이 읽었다.


박솔뫼의 <투 오브 어스>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몇 가지 정보들이 눈길을 끌고, 좀더 세밀하게 읽어야 할 대목들이 생각난다.

제목을 보면서 아이들 TWS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성혜령의 <간병인>은 읽다가 이와 같은 수술을 한 여배우가 생각났다.

암으로 죽은 엄마, 엄마가 키우던 화분을 버리는 아버지.

자신도 암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방절제술을 하는 나진.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돌보기 위해 온 아버지의 어릴 때 동네 친구 미형.

현실적인 이야기와 불편한 감정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은 긴장감을 만든다.

최미래의 <항아리를 머리에 쓴여인>은 무겁지만 재밌다.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일로 생계는 유지하는 나.

그녀가 돌보는 아이 서라와 서라의 아버지.

나에게 더 많은 부탁이 올수록 돈이 쌓이지만 자신의 삶의 경계가 무너진다.

화자의 삶을 보면서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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