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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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작년에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만큼 가까이>의 작가다. <이만큼 가까이>를 예상보다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삼남매의 각각 다른 이상한 초능력과 그들의 활약이 처음 예상한 것과 너무 다르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초능력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도 없다. 추정하면 삼남매가 먹은 색깔이 미묘한 바지락 칼국수 정도랄까. 이것도 나중에 재인이 택배를 보낸 장소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식당을 보고 유추한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 이 삼남매가 각각 다른 이유를 상상한다.

 

재인, 재욱, 재훈은 이 삼남매의 나이순이다. 가장 나이 많은 재인은 첫째 딸이고, 재욱은 둘째, 재훈은 나이차가 좀 있는 막내다. 위의 둘이 직장인이라면 재훈은 고등학생이다. 재인이 대전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다면 재욱은 아랍 사막의 플랜트 공사장에 일한다. 재훈은 엄마가 신청한 교환학생에 당첨되어 조지아 주의 농장으로 간다. 각각 다른 나라와 환경 속에서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구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온 소포 속에 메시지가 있다. 재인에게 온 메세지는 SAVE 1, 재욱은 SAVE 2, 재훈은 SAVE 3이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지만 작가는 중간에 그 의미를 밝힌다.

 

초능력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강화된 손톱이거나 문제가 있는 곳의 빨강 색으로 문제의 정도를 구분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쉽게 타는 것 정도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염동력이나 독심술이나 빠르게 달리거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등의 초능력과 전혀 관계없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들의 초능력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정확하게 맞는 능력이다. 왠지 미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맞게 능력을 배분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소포와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누구를 어떻게 구하라는 것일까? 이 의문의 답은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약간 평범해 보이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그 당사자들에게는 더욱더.

 

나이 차가 있는 삼남매는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의 폭언을 견디면서 살아야했다. 이것은 실제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언이나 고성을 쉽게 넘어가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엄마가 이 삼남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남매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떤 집이나 늘 있는 부모 자식 사이의 소소한 갈등과 다툼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여기에 포인트를 맞추지 않고 삼남매의 삶을 간결하게 그려낼 뿐이다.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일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뭔가 의미를 찾자고 하면 못 찾을 것도 없다. 그들이 구한 사람이 그들 자신을 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마지막에 나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단지 그 누군가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자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때도 있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간결하게 말해진다.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이나 설정을 간결하게 빠르게 풀어낸다. 분량이 많지 않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몇몇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이 나오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후기를 보면 친구들의 직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또 다른 활약을 하는 시리즈가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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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서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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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외계의 서사란 표현 때문에 선택했다. 소설집이란 것은 알았지만 단 두 편의 중편소설만 실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받았을 때 아담한 크기와 적은 분량 때문에 조금은 속은 느낌이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소개글을 잘못 이해한 탓인지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한 번 읽자고 마음먹고 책을 펼치니 예상보다 빠르게 읽혔다. 문장도 평이하고 내용도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읽히지만 구성과 품고 있는 의미들이 읽은 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표제작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은 출장에서 돌아오던 한 남자가 외계인을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까칠한 수염 때문에 3중 면도날을 찾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찾을 방법이 없다. 꺼림칙한 턱수염의 느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후 이상한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외계인이다. 그들의 우주선에 올라타서 온갖 감각들, 기분들, 의지, 의욕 등을 태워버린다. 이 이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욕도 의지도 없는 무력한 삶뿐이다. 직장도 나가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 아내와 딸들은 집을 나간다. 그래도 그의 삶은 변화가 없다. 있다면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명이 했지만 어느 순간 공원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작가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해방군을 등장시켜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장치다. 마지막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고, 나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마녀의 피>는 기억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사도마조히즘이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슬처럼 맞물린 이야기 구조가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온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순간 사슬 고리처럼 엮인 이야기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내가 본 호수공원의 마차나 남편이 맹인 소녀를 만나 다녀온 지하창고 등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제목과 첫 설정을 보고 다음 장면을 예상하면 그것과 완전히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사도마조히즘의 역할 바꾸기인가 하고 생각하면 온라인과 환상과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다. ‘뭐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꿈속의 장면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은 것과도 같다. 묘한 경험을 주는 소설이다.

 

서준환이란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를 번역한 번역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인데 이런 이력이 번역에 도움을 준 모양이다. 그 외 다양한 소설들이 출간되었는데 실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이 책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읽고 집어던지거나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도전 의욕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중편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문장과 이야기의 진행은 어렵지 않지만 전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소설에 대한 관심 말이다. 장편소설도 몇 편 있던데 과연 이 소설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하다. 10년 만의 재간에 대한 작가의 말은 역시 냉소적인 마지막 문장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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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저주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8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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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붉은 눈>이란 단편집에 처음 사상학 탐정 쓰루야 슌이치로를 만났다. 사상학 탐정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출간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상(死相)을 보는 특별한 능력이 과연 어떤 식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소설 한 편으로 그가 어떻게 사상을 보게 되었고, 미스터리를 해결하는지 알게 되었다. 시리즈 첫 권임을 생각하면 좋은 시작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슌이치로가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처음으로 의뢰받은 사건이다. 미숙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다음은 얼마나 발전했을지 궁금하다.

 

어릴 때 이상한 경험을 한 후 슌이치로는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외할머니다. 격세유전으로 능력이 전해졌는데 그녀는 아이젠으로 불린다. 이쪽 세계에서는 상당히 이름난 인물이다. 슌이치로의 이 능력은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 아이젠과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이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이 능력으로 할머니에게 도움을 준다. 죽음의 상을 보는 능력은 그가 더 탁월하다. 그 외의 능력은 할머니가 압도적이지만.

 

스무 살의 슌이치로는 독립해서 도쿄에 탐정 사무소를 차렸다. 죽음의 상을 보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이때 한 여자가 찾아온다. 사야카다. 탐정 사무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녀에게서 어떤 죽음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한다. 가라고 말한다. 그 후 그녀는 다시 한 번 찾아온다. 이때는 그녀에게 이상한 벌레들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약혼자가 죽은 이야기를 한다. 술집 호스테스 출신인 자신과의 결혼을 반대한 이리야 가 이야기와 함께. 약혼자 아키라의 사인은 급성 신부전증이다. 뭔가 수상하다. 이상한 일들도 일어난다. 집안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일들이 번갈아 가면서 일어난 것이다. 이상한 벌레와 함께 기이한 현상들이 슌이치로를 그 집으로 와서 사건을 해결하도록 한다. 이렇게 슌이치로만의 첫 사건이 시작한다.

 

이리야 가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 집이다. 이 집의 가장이었던 도시카즈는 사업 실패 후 역시 급성 신부전으로 죽었다. 이전에 그는 다양한 여성과 사귀었다. 모두 열세 명의 여자다. 이 여자들이 모두 다른 직업을 가졌다. 수녀, 무녀, 비구니, 수의사, 조각가, 보모, 가수 등으로 모두 다르다. 취향이 독특한데 문제는 이들에게서 아이가 생기면 아이만 본가로 데리고 오고 여자는 버린다. 이렇게 데리고 온 아이들이 네 명이다. 본부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죽은 아키라가 유일하다. 그리고 도시카즈가 죽은 후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인물이 바로 아키라다. 그의 죽음은 유산 문제로 이어진다. 유언장은 재산의 60%가 사야카에게 가게 되어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괴현상이 집안에서 일어난다.

 

할머니와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스무 살의 사상학 탐정 슌이치로.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그 집에 머물면서 사건을 조사한다. 한 명씩 대화도 나누고, 집안에 이상한 것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일자별로 각각에게 일어난 괴현상을 하나씩 기록한다. 데이터가 축적되기 전에는 어떤 규칙성도 발견할 수 없다. 어느 날 밤 이 집에서 이상한 괴물을 보기도 한다. 그것은 그가 사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본 것이다. 그러다 한 명씩 죽는다. 가장 먼저 죽은 것은 장남인 나쓰키다. 다음은 집에서 발생한 죽음 때문에 호텔로 달아난 첫 째이자 장녀인 하루미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얼마나 더 죽어야 그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시리즈 첫 권이 보여줘야 하는 것을 충실히 따라간다. 미숙한 탐정과 자기 능력의 과신으로 인한 늦은 사건 처리, 사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에피소드들. 또 괴현상을 일으키고, 초현실적인 죽음을 보여주면서 이 장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사상을 보는 것은 하나의 능력일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면서 가장 중요한 범인 찾기를 위한 단서들을 나열시키고, 그 속에서 규칙성을 발견하게 한다. 단순히 규칙성이 드러났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반전이 있다. 이 반전이 보통의 미스터리의 겉모습과 닮았지만 그 해결방식은 다르다. 이 때문에 약간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을 분명하게 정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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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간단한
최예지 지음 / 프로젝트A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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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물론 이 말을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실제 삶에서 간단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엮이고 꼬이고 풀리는 현실을 단숨에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가 이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몸과 마음과 관계들이 이것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늘 의식하고 산다면 어떨까? 쉽지는 않겠지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가 쓴 글들을 읽다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어놓은 글들에 이상한 감정을 집어넣는 나의 모습들이 보인다. 나보다 한참 어린 작가의 삶이 살짝 부럽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한 장의 비행기 티켓이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이다. 조건은 나중에 석 장의 산티아고 행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주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백수라면 좋구나 하고 가겠지만 그녀는 인턴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해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산티아고 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떠난다. 이 순례자의 길이 보통의 형식적인 말처럼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고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모두 산티아고 길에서 경험한 것을 다루지는 않는다. 약 3분의 1 정도는 산티아고를 걸었던 경험과 느낌과 생각들을 적었다면 나머지는 돌아온 후에 몇 개월 산 제주도와 그와 관련된 자신의 감정들이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그녀에게 내일이 아닌, 오늘도 아닌, 지금, 여기를 살도록 만들어주었다. 지금이 모여 오늘이 되고, 이것이 과거로 변한다. 내일은 오늘이 지나야만 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 그녀가 산티아고 길을 자신의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로 걸었을 때 다른 사람이 들려준 그 말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힘든 그 길을 한 발 한 발 내딛게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 여기를 살려고 했기에 무사히 그 긴 길을 마무리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녀는 말한다. 이 순례길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고. 다시 돌아와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스물다섯. 이 나이라면 누구나 취직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제주도 게스트하수 무보수 아르바이트생이다. 6인실에서 살면서 밥을 해결하지만 블로그를 관리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가 만난 제주도가 펼쳐진다. 작년에 내가 다녀온 제주도가 아닌 오랫동안 머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제주도가 하나씩 나온다. 올해도 갈 예정인 제주도에 새로운 갈 곳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작년 여행이 제주도 일주였다면 이번에 간다면 조금은 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데 이 책 속 장소들이 강하게 유혹의 손길을 벋친다. 단순 여행객이라면 그 매력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지 모르지만 눈과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의 글은 솔직하다. 그냥 간단하게 쓴 글들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솔직하게 적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쓴 글과 사진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내보여주려 한다. 첫 사랑, 두 번째 사랑, 그리고 아쉬운 이별 등을 그대로 적어놓았다. 그때의 감정도 역시. 자신만 보는 블로그라면 그럴 수 있지만 책으로 나온다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녀를 투명하다고 한 것도 바로 이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 솔직함이 처음에는 부담되었지만 지금은 좋다. 앞으로 그녀의 삶에 어떤 힘든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힘과 좋은 주변사람들이 그것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더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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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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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처럼 나도 <태백산맥>으로 처음 조정래의 소설을 만났다. 그 후 읽은 소설은 <대장경>이 마지막이다. 10권 정도의 장편을 읽을 여유가 잘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있을 때는 다른 소설을 읽기에 바빴다. 물론 이것은 핑계다.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두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3권 정도의 소설을 적지 않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핑계가 분명하다. 재작년에 <정글만리>가 나왔을 때도 사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왜일까? 내 마음 한 곳에 조정래의 소설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선순위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대담은 <정글만리> 출간 후 진행된 것이다. 강연도 있는데 시기 때문인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중복된다. 작가의 말에서 중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많이 나올지 몰랐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초기부터 실린 것을 담은 것이 아니다. 가장 먼 시간이 2002년 8월 한겨레신문에 실은 글이다. 그 다음이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글이다. 두 번의 대선 즈음에 나온 글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정글만리>이 출간 이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정글만리> 성공 후 진행된 대담 모음집과 같다. 물론 그의 인생과 철학과 문학관 등이 다양한 대담 속에 조금씩 흘러나온다. 조금씩 겹치는 부분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지만.

 

<태백산맥>에서 시작해 <한강>으로 이어진 20년 동안의 대하소설 집필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작가라면 한 편의 대하소설을 겨우 완성할 시간이지만 그는 무려 3편이다. 모두 열 권 이상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아직 <태백산맥>을 제외한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할 수 없지만 어느 한 편이라도 처지거나 나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매일 원고지를 일정 분량 씩 정서하면서 썼다는 사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의지와 집중력을 생각하면 괜히 내가 부끄러워진다. 점점 게을러지고 안락함에 빠져들면서 핑계만 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잘 보여서 그렇다.

 

<정글만리>의 시작은 1990년 <아리랑> 집필을 위한 취재를 갔다가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20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중국을 방문해 취재한 후 썼다고 한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대담 속에 조금씩 나오는 중국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인식이 중국의 현재와 같이 나가지 않고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고 질타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면세점의 주 고객이 누군가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시내 면세점을 가면 중국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 그렇다면 인도는 왜 그럴까? 거대한 인구 대국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담 속에서 반복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 과거의 거대한 자전거 물결은 이제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길은 수많은 자동차로 가득하다. 가장 높은 빌딩이 지어진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더 높은 빌딩이 옆에 지어진다. 이 변화가 너무 빠르다. 이 빠른 변화가 분명 수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것을 너무 쉽게 말한다. 주변에 수많은 기업인들이 현재 중국에서 어떤 고전을 치루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물론 몇 년 전까지는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무작정 간다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말한 2억이 넘는 농민공이나 매년 쏟아져 나오는 중국 대학생은 그냥 있겠는가. 작가도 말했듯이 엄청난 성장 뒤에 가려진 수많은 희생이나 부의 분배나 부동산 폭등 문제 등이 살짝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정글만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속에 나오는 중국의 모습은 가끔 가는 중국 출장이나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문학관은 동의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완전히는 아니다. 1인칭 사소설이 범람하는 것이 문제지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통찰은 배울 점이 많고, 우리가 잊고 있던 IMF의 기억을 새롭게 해 준 것은 좋았고 잊고 있어 부끄러웠다. 다음 작품이 교육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올해 나오면 봐야겠다. 한국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교육에서 비롯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대하장편 3편을 쓰는 동안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저녁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주로 안동소주를 한 잔씩은 했다. 저녁 술자리를 멀리한 이유를 들려줄 때 깊이 공감했다. 주변에 숙취에 시달리면서 하루를 멍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민족을 중심에 둔 그의 세계관과 문학관은 좀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스승이었던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고, 아내와 <태백산맥> 필사를 둘러싼 소문의 실체를 글로 확인했다. 그리고 <월간중앙>의 글에서 실체도 명확한 정의도 없는 창조경제의 원리를 조정래의 글에서 발견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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