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서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과 외계의 서사란 표현 때문에 선택했다. 소설집이란 것은 알았지만 단 두 편의 중편소설만 실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받았을 때 아담한 크기와 적은 분량 때문에 조금은 속은 느낌이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소개글을 잘못 이해한 탓인지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한 번 읽자고 마음먹고 책을 펼치니 예상보다 빠르게 읽혔다. 문장도 평이하고 내용도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읽히지만 구성과 품고 있는 의미들이 읽은 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표제작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은 출장에서 돌아오던 한 남자가 외계인을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까칠한 수염 때문에 3중 면도날을 찾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찾을 방법이 없다. 꺼림칙한 턱수염의 느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후 이상한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외계인이다. 그들의 우주선에 올라타서 온갖 감각들, 기분들, 의지, 의욕 등을 태워버린다. 이 이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욕도 의지도 없는 무력한 삶뿐이다. 직장도 나가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 아내와 딸들은 집을 나간다. 그래도 그의 삶은 변화가 없다. 있다면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명이 했지만 어느 순간 공원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작가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해방군을 등장시켜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장치다. 마지막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고, 나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마녀의 피>는 기억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사도마조히즘이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슬처럼 맞물린 이야기 구조가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온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순간 사슬 고리처럼 엮인 이야기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내가 본 호수공원의 마차나 남편이 맹인 소녀를 만나 다녀온 지하창고 등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제목과 첫 설정을 보고 다음 장면을 예상하면 그것과 완전히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사도마조히즘의 역할 바꾸기인가 하고 생각하면 온라인과 환상과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다. ‘뭐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꿈속의 장면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은 것과도 같다. 묘한 경험을 주는 소설이다.

 

서준환이란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를 번역한 번역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인데 이런 이력이 번역에 도움을 준 모양이다. 그 외 다양한 소설들이 출간되었는데 실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이 책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읽고 집어던지거나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도전 의욕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중편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문장과 이야기의 진행은 어렵지 않지만 전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소설에 대한 관심 말이다. 장편소설도 몇 편 있던데 과연 이 소설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하다. 10년 만의 재간에 대한 작가의 말은 역시 냉소적인 마지막 문장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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