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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슈라라봉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3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마키메 마나부. 두 권의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은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르겠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첫 작품을 읽고 우와~ 했다면 이 작가는 세 권을 읽은 지금도 뭔가 확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이 이후 점점 취향과 멀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마나부는 책 읽는 날의 컨디션에 따라 바뀌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도미히코의 소설은 비채에서 나온 작품이 정점을 찍었다면 마나부는 아직 그 정점을 유보한 상태다. <사슴남자>를 읽고 난 후 결정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사이 다른 작품이 짠~ 하고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마나부의 다른 소설처럼 이 작품의 등장인물도 초능력을 사용한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시가 현의 작은 도시 이와바시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히노데 가문이다. 히노데 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을 이용해 장사로 큰 돈을 벌어 이전 번주의 성을 샀다. 이 이와바시리 성에서 히노데 가의 종주 가족이 살고 있다. 히노데 가문의 능력자들은 이 성에 와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수련한다. 이 능력이 모든 히노데 가문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점점 그 능력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주인공 히노데 료스케는 사실 가문의 능력을 거부한다. 이런 능력이 평범한 삶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문의 결정에 따라 성에 와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런데 그와 함께 다닐 종가의 아들 단주로가 아주 괴팍하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아주 잘 사용한다. 너무 잘 사용해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면 무시무시한 복수가 벌어진다. 그를 뚱보라고 부른 상급생을 농구대에 매달아 놓고 벌집을 풀어놓을 정도는 소소한 것이고, 예전에는 집 둘레에 해자를 팔 정도였다. 그의 집안과 그의 성격을 아는 동급생이라면 누구도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가문에도 적수는 있다. 바로 나쓰메 가문이다. 이 집안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능력은 물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는 능력의 실체는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이 가문의 장남 히로미도 료스케와 같은 반이 된다. 앙숙인 두 가문의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이 두 가문은 서로의 능력이 발휘될 때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소리를 듣고 서로를 방어한다. 그런데 이 두 가문의 능력은 바로 비와 호 주변에서만 발현된다. 이 능력자들이 이 호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히노데 가문은 승승장구하고, 나쓰메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다.
이 세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주로는 료스케를 부하라 부르고, 료스케는 자신도 모르게 부하처럼 행동한다. 꽃미남인 히로미는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뚱뚱한 단주로 뿐만 아니라 료스케도 어떤 관심을 받지 못한다. 물론 시선을 끄는 것은 있다. 단주로와 료스케의 빨간 교복이다. 보통의 학교라면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이 도시의 히노데 가문이라면 가능하다. 이렇게 세 명은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얽히고설키게 된다. 그 틈새를 파고드는 여학생이 있는데 바로 교장의 딸이자 예전 번주였던 선조를 가지고 있는 나쓰메다. 단주로가 그녀의 재능을 사랑하고, 그녀도 같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단주로는 나쓰메를 바라보고, 나쓰메는 히로미를 바라보는 관계가 형성된다.
단순히 이들만의 관계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에게 공동의 적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이전 번주의 후손인 교장이다. 그는 이 두 집안의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단주로의 아버지와 히로미의 아버지를 식물인간 같은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현대 의학으로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 이들을 되돌릴 수 있는 존재는 교장 밖에 없다. 교장이 바라는 것은 이 두 가문이 비와 호를 떠나는 것이다. 비와 호를 떠난다는 것은 바로 능력을 잃는다는 의미다. 앙숙인 집안 사이의 웃기고 황당한 대결이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생사의 결투로 바뀐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다양하고 재미난 캐릭터가 더 있다. 남들의 마음을 읽고 쉽게 조종하다 자신의 평화를 잃은 그레이트 기요코나 료스케의 스승이 되는 총총 씨나 단주로 등의 등하굣길을 담당하는 겐 영감 등이 바로 이들이다. 등장의 분량은 각각 다르지만 읽다보면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인 슈라라봉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을 볼 때 착각을 했는데 이 기묘한 발음이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 때 빵~하고 터진다. 허식적인 설명이 사라지고 솔직한 표현은 자리한 곳은 금방 납득이 간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다시 표지의 안팎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먼저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세 남자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중요한 인물들이나 물건 등이 같이 보인다. 가끔 표지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표지가 그렇다. 그리고 아쉬운 점 하나로 꼽자면 영화로 나왔다는 사실과 그레이트 기요코 역이 후카다 교코란 것을 알고 배우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 왠지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옛날 후카다 교코의 연기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 공감하지 않을까? 앞부분은 조금 집중하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몰입해서 읽었다. 역시 구성보다 캐릭터가 더 강한 소설이라 유쾌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