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런과 모리스의 컬렉션
린 섀프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묘하다. 포트 에세이란 말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경매 물품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경매물품이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우리가 그냥 버리는 것들도 상당하다. 간단한 메모지나 여러 곳에서 모은 돌 등은 보통 우리가 이사를 하거나 짐을 정리할 때 버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메일을 출력한 것도 있다. 뭐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지도 않은데. 이런 물품들이 적지 않은 금액으로 올라와 있다. 이 물품 목록을 보면서 이런 것들도 사는 사람이 있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처음에 읽으면서 당혹감을 느꼈고, 목록이 이어지면서 단순한 물품보다 이것과 관련된 사진이나 메모 등이 있으면 가격이 더 올라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출력된 메일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이것은 억지스런 이해다. 332점의 경매 품목 중 몇 개는 이 책에 사진이 없거나 경매가 철회된 것이다. 철회된 물건은 또 묘하게 뭘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읽으면서 결혼식 초대장까지 10~25달러에 올라와 그 가격에 놀랐고, 운세놀이 모양으로 접힌 오이스터 바의 메뉴가 15~20 달러란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만약 여기에 둘만의 어떤 기록이 있었다면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모리스가 세계 곳곳 150개 호텔의 카드 키를 모아 둔 것을 보고 어떻게 체크아웃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혹시 이 카드로 그 호텔에 몰래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금방 몇 호실인지 표시가 없으니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레스토랑에 훔쳐온 후추통과 소금통을 경매 목록에 올려놓은 것을 보고 장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런 물건에 대한 느낌과 감상이 먼저 다가왔다면 그들이 남긴 메모와 글들에서 그들의 사랑과 이별의 낌새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기획한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황당하고 장황한 경매 목록과 황당한 듯한 가격을 보면서 금방 이 의도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단순한 목록과 그 속에 담긴 메모 등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기존의 독서법으로 다가간다면 정말 카탈로그 보는 것 이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쪽지나 메모 등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 짧은 글에서 이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는 않다. 그 빈 공간을 상상으로 채워야 하고, 그들의 감정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둘의 파국을 암시하는 글 중 앤 둘런이 레노어 둘런에게 보낸 편지는 헤어짐에 대해 아주 통찰적인 글이다. 26살 음식 칼럼니스트 둘런과 39살 사진작가 모리스의 사랑은 이렇게 끝난다. 머물러 있는 사람과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일해야 하는 남자의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순간에 보여준 그 감정은 짧은 메모 등에서 잘 드러난다. 다 읽은 지금도 표지를 보면 묘한 감정이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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