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
발렝탕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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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렝탕은 기욤 뮈소의 동생이다. 동생이라고 하지만 그의 글은 형과 완전히 다르다. 같은 점도 있다. 간결한 묘사와 빠른 장면 전환으로 속도감을 높여 잘 읽힌다는 것이다. 기욤 뮈소의 글이 로맨스에 더 치중했다면 발렝탕은 스릴러에 더 가깝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다. 결말을 말하면 절대 안 되는 설정과 전개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색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완벽한 계획이란 반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와 같은 소설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한 번 읽었기 때문인지 조금은 관대해졌다.

 

친구를 얼마나 알고 있지? 이 물음은 도발적이다. 예전에는 잘 안다고 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잘 모른다는 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 것만큼 친구도 변하고, 주변 환경들이 심하게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사이를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 사이라고 시간과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평생 갈 수는 없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 상황이 나를 혹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가끔 혼자 과거를 추억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연락조차 잘 하지 않는 친구들이 생각난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자리에 없는 친구들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이 친구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현재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이다. 이 소설도 바로 과거의 한 사건에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차가 달리다가 안전띠를 잠시 푼 여자가 차 사고로 죽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 죽음이 시작이고 여러 죽음을 몰고 올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살인 예고다. 그리고 금요일 첫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테오는 여자 친구 도르테와 함께 피레네 산맥의 한 산장으로 놀러온다. 이들을 초대한 것은 한때 친했던 친구였던 로뮈알이다. 이 둘은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이때 테오를 초대한 것이다. 그 당시 친구였던 다비드도 여자 친구 쥘리에트와 함께 왔다. 초대한 이유는 다같이 등산을 하자는 것이다. 십 년만에 만난 친구의 초대를 너무 순순히 허락한다. 뭔가 있는데 아직 그 실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첫날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

 

둘째 날 이들은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을 인솔하는 사람은 로뮈알이다. 그가 짠 계획대로 산을 탈 예정이다. 로뮈알을 제외하면 다들 등산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산의 무서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이제 이야기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현실의 등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 등산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설명하기 위한 과거다. 현실은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면 과거는 이들의 관계를,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로뮈알의 과거 삶이 어떠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로뮈알의 출신과 테오와의 만남으로 인한 삶의 추락이다.

 

로뮈알은 혼혈에 가장 위험한 아파트에서 산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부에 대한 재능이 있다. 프랑스 상위 대학에 갈 수 있는 학교인 프레파에 입학할 정도다. 수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이것이 부자집 아들 테오의 시선을 끈다. 가난하지만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던 로뮈알에게 테오는 독약과도 같은 존재다. 그가 살던 곳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에게 마약을 경험하게 만든다. 술에 취하게 만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풍요와 친구 때문에 그의 이성은 점점 사그라진다.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같이 사라진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들과 그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잠시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산행이 로뮈알의 실수처럼 포장된 계획에 의해 점점 더 힘들어진다. 비가 내리자 허둥지둥 동굴을 찾아 비를 피한다. 제대로 산행 준비도 하지 않아 험한 산길에서 어떤 위험을 경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로뮈알이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읽으면서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한다. 어떤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하고. 그런데 이 산행의 속도와 더불어 테오와 함께 하면서 즐거웠던 그 시절을 같이 다루면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이 소설의 장르를 잊었다. 노련한 구성과 진행이다.

 

읽으면서 어색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시점이다. 테오의 독백과 대비되는 로뮈알에 대한 삼인칭 설명은 어떤 의도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세밀하게 읽지 않으면, 혹은 대담한 발상을 하지 않으면 이 시점이 의도하는 바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물론 이 산행에서 로뮈알이 계획하고 있는 바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명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과거가 현재로 다가오면서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모든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마무리에서 한 발 더 나가 거대한 반전을 완벽한 설정 속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다시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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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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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부제인 마녀에게서 온 편지와 지적 유희란 단어였다. 지적 허영이 있는 나에게 이것은 강한 유혹이었다. 이탈리아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많지 않기에 약간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마녀에게서 온 편지라는 부제가 나를 끌어 당겼다. 설정도 흥미롭다. 죽은 사람이 보내는 편지라니 얼마나 재미있나. 이런 저런 이유로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앞부분은 상당히 힘들게 읽었다. 낯선 이름과 각각 다른 화자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 쉽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하는 의문도 생겼다. 그러다 반전처럼 멘눌라라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멘눌라라는 아몬드를 줍는 여자란 의미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몬드를 따고 주우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었다. 그러다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가문인 알팔리페가의 가정부로 들어온다. 그때 나이가 열세 살이다. 처음에는 변호사집안인 알팔리페가의 단순한 가정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가문 사람들이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을 본 후 자신이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 가문의 재산은 다시 불어난다. 이 가문 사람들은 멘눌라라가 이루어놓은 재산을 막 쓰기 시작한다. 그 어떤 고마움도 느끼지 못한 채 당연하다는 듯이. 귀족인 그들은 자신들과 가정부였던 그녀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놓고 산다. 비록 멘눌라라가 주는 돈에 의존하는 바가 크지만.

 

소설은 일자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만 그 사이에 과거 이야기가 삽입되어 멘눌라라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사연들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 낯설어 지루했다. 한 가정부의 죽음을 두고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각자가 다르게 그녀를 기억하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 조각들이 모이면서 재미있어졌다. 파편화된 기억은 진실의 한 조각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것을 믿지 않고 의심했다. 오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의 계기를 통해 멘눌라라의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집 가족들을 무시하고 건방지고 고고하고 악착같던 그녀의 삶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1963년 9월 23일 월요일. 멘눌라라가 죽었다. 그녀의 아파트에 알팔리페가 자식들이 모인다. 이들이 모인 것은 자신들의 재산을 제대로 열정적으로 관리해준 멘눌라라를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관리한 재산에 대한 유언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전해진 한 장의 편지에는 그녀의 장례식 등에 관한 요구사항이 적혀있다. 처음에 이들은 몰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그래서 대충 이행했다. 다음날 우체국에 가서 멘눌라라 앞으로 온 우편물을 내놓아 라고 생떼를 쓴다. 매월 25일에 그녀가 준 돈이 우체국을 통해서 왔을 것이란 추측의 결과다. 하지만 그냥 쫓겨날 뿐이다. 장례식도 대충 치렀다. 그런데 이 장례식장에 마피아 대부가 왔다 간다. 다시 소문이 왕성해진다.

 

소문이 왕성해지는 데 일조한 사건들이 몇 있다. 공공장소에서 멘눌라라를 욕한 사람들의 차나 집 정원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것이다. 마피아 대부의 부하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이 공포 때문에 알팔리페가의 자식들은 신문 부고를 새롭게 낸다. 다시 그녀로부터 편지가 한 통 온다. 이들에게 유산을 남겨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사람들의 욕심은 그녀의 장점보다 단점에 더 시선을 둔다. 그녀의 지위를 탓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내세운다. 잠깐 좋았던 순간이 나오지만 이것은 유산에 대한 기대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소동은 바로 멘눌라라의 편지을 받은 후 알팔리페가의 자식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이다. 그녀의 노력과 헌신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지 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놀라고 분노한다. 어느 순간은 아깝고 안타깝다.

 

소문은 그냥 소문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진실의 파편들이 살짝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녀의 유산이나 그녀의 헌신, 그녀가 보여준 대담함, 부동산과 금융 투자의 성공, 알팔리페가 가주와의 소문, 악의에 찬 질투, 비난, 헛소문 등에서 그 빛을 조금씩 드러낸다. 물론 이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마지막에 나온다. 어느 부분은 예상한 것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이렇게 한 하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평가가 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추억과 기억 등이 뒤섞여야 비로써 그 실체의 일부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아주 느리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간다. 마무리가 좋고,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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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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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프레드 바르가스의 다른 책이 몇 권 있다. 할인 판매할 때 사 놓은 것들이다. 워낙 대단한 광고였기에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사 놓고 다른 책처럼 묵혀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행운이다. 왜냐고? 그것은 프랑스 추리문학의 여제로 명명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이 책이 '형사 아담스베르그 시리즈' 최신작이란 것이다. 이 소설 이전에 몇 편의 시리즈가 더 있었는데 읽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번역 출간된 책이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도입부에서 간단하게 하나의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한 노부인의 죽음이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현장을 둘러보고 빵 속살을 이용해 아내를 질식시켰다는 것을 추리해낸다. 50년 이상 같이 산 부부인데도 남편은 아내의 결벽 등살을 견디지 못하고 죽인 것이다. 이렇게 사건을 해결한 후 경찰서로 간다. 다른 작품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을 동료 형사 베랑크의 복귀 문제를 논의한다. 그때 한 노부인이 경찰서 앞을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이 이전에 비둘기가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비둘기 다리를 줄로 묶어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그냥 보고 넘길 수 있는 사건이지만 그는 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바로 이 노부인이 가져온 사건이다. 그녀는 딸 리나가 본 환상 때문에 겁에 질렸다. 그 환상은 1777년 유령부대가 노르망디의 본느발 숲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대는 성난 군대로 불린다. 이들이 지적한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리나가 본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고, 그 중 세 명은 아는 사람이다. 그 중 첫 번째 인물인 에르비에가 집에서 사라진 것이다. 리나의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에르비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때문에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피해가 올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리나. 예전에도 이 환상을 본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형사라면 이것을 그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믿지 않지만 의심할 수는 있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노르망디로 달려간다. 그 공포의 숲에서 한 노부인을 만난다. 레온이다. 이 노부인은 사라진 에르비에의 시체를 숲 속 성당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개를 기다린 후 집에 와서 신고한다. 서장과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가를 나누어 핀 후 유대를 쌓는다. 이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헌병대다. 헌병대 대장은 나폴레옹의 제국 원수였던 다부의 후손인 에므리 대위다. 그는 서장이 자신의 관할에 와서 사건 수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살짝 다툼이 생긴다. 레온의 집 근처에서 쉬던 서장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레온의 집으로 달려간다. 레온이 바닥에 짓이겨진 상태로 혼수상태다. 이제 사건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건이 추가된다. 그것은 경제계의 거물인 클레르몽이 차 안에서 타 죽은 사건이다. 방화된 차가 놓인 장소와 방법 등이 한 명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방화 10범의 모모다. 아담스베르그는 모모가 한 범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직관과 관찰력이 만들어낸 믿음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휘둘러 모모를 범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서장은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위험한 수단을 사용한다. 바로 자신이 인질이 되어 모모를 달아나게 하는 것이다. 공범으로는 자신의 아들과 바로 자신이 된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형사들 몇몇은 이 비밀을 알아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그를 감시한다. 상부에서는 모모를 일주일 안에 잡지 못하면 그와 부하 형사들이 잘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긴장감은 고조된다.

 

하나의 사건만 다루지 않고 여러 건을 같이 펼쳐놓고 진행한다. 세 건의 살인 사건 중 한 건은 해결했고, 비둘기 같은 동물 학대 사건은 조사중이다. 이런 그의 곁에는 특이한 인물들이 있다. 고시를 말하면서 탁월한 수사능력을 보여주는 베랑크, 베랑크를 싫어하고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인 당글라르, 거구지만 비둘기를 되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탕쿠르, 그 외 다양한 습관을 가진 형사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너무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라 아담스베르그 서장이 아니라면 이들을 잘 지휘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인을 추리해내는 그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늘 멋진 형사나 탐정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들은 연결되어서 아담스베르그의 통찰력과 추리에 의해 모두 해결된다. 한 마을의 비극 속에 한 가족을 집어넣고, 그들을 사건의 중심으로 만든다. 라나의 환상 속 성난 군대는 그것을 현실화시킨다. 한 명씩 죽는다. 희생자들은 심정적으로 살인자임을 누구나 알지만 증거가 없어 놓아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어떻게 보면 통쾌하지만 현실은 그 뒤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실패했다. 경찰들의 노력과 오랫동안 쌓인 경험은 날카로운 이성과 더불어 범인에게 한 발 다가가게 한다. 뭔가 허술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밝혀진다. 성난 군대 전설이 중심에 서고, 현실의 사건들이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짜임새 있게 나아간다.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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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뉴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 학고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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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여행 에세이다. 분량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 주석을 빼면 130쪽도 되지 않는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분량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오래 전에 사강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언제나 빗나간다. 열네 편에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을 담은 에세이들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긴 호흡의 문장들이 잠시도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내가 아는 곳의 여행기는 나도 모르게 기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물론 그곳도 가본 곳은 아니다. 책과 영화와 텔레비전로 본 곳들이다.

 

앞에 봉주르란 제목을 단 이야기가 네 편 있다. 뉴욕, 나폴리, 카프리, 베네치아 등이다. 이 연작들은 잡지 엘르의 편집장 청탁을 받아서 쓴 글이다. 요즘 흔히 보게 되는 여행 에세이와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 간략하게 그린 그림 한 장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면 과연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림이다. 못 그렸다기보다 지역적 특성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상징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각 지역은 사강의 멋진 묘사와 설명 덕분에 순간적으로 생명력을 얻어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여행에 대한 환상을 살짝 불러온다.

 

대부분 젊을 때 쓴 에세이지만 몇 편은 만년에 쓴 것 같다. 특히 ‘나의 애마 이야기’는 말년의 그녀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느낌이다. 도박과 약물 중독을 살짝 다루는데 이 책을 출간한 아들의 모습이 잠시 겹쳐서 떠올랐다. 어머니의 엄청난 부채를 상속받은 후 빚을 모두 갚고 다시 사강의 책들을 내놓았다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어떻게’와 같은 호기심과 함께 ‘대단하다’는 감탄까지 자아내게 되었다. 말에 대한 그녀의 첫 경험과 애정은 글 곳곳에 너무 강하게 심어져 있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봉주르 시리즈를 제외하면 가장 재미있지 않나 생각한다.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카스트로가 등장하는 ‘쿠바’ 편이다. 쿠바 혁명 기념일에 전 세계에서 50명 정도의 기자를 뽑아서 혁명 후 상황을 알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카스트로가 연설하는 곳으로 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야 한다. 연설 후에 돌아오는 것은 더 고역이다. 꽉 막힌 그 길을 100만 명의 시민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돌아온 후 그가 쓴 글에서 쿠바 경제에 대한 부분이 있다. 경제 회생이 요원할 것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된다.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생적으로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부족함이 가시지 않지만.

 

짧은 글이지만 사강이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는 강렬함이나 신기함이나 재미는 부족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평화로운 고향의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짧게 쓴 글 때문이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여행 에세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지만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바뀌어 그 기억이 흐릿하지만 바뀐 그곳을 뚫고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뛰어노는 장면을 잠시 볼 때가 있다. 그 아련한 그리움이라니.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일상의 반복 중 한 장면일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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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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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스위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가 아주 강하게 스위스 여행을 추천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반한 것이다. 그 후에도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스위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회사의 팀장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 꽃할배의 첫 여행지 중 한 곳도 스위스였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방송에서 마테호른과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연결해서 설명하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스위스는 몇 가지 풍경과 치즈, 시계 등으로 대변되는 제품으로 알려줘 있었다.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의 남편은 이탈리아 출신 스위스인이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스위스 개발 당시에 이주노동자로 스위스에 왔다. 이것은 알불라 철도 이야기에 잠시 나온다. 이 철도 개발은 스위스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난 후 보게 되는 풍경을 묘사한 글에서 나의 상상력이 꿈틀거렸다. 반면에 꽃할배에서 본 마테호른의 풍경은 약간 심심했다. 카메라 앵글 속 풍경이 실제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일까? 솔직히 이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책의 중심이 되지 않다 보니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가끔 스위스 여행 블로그 포스팅에 나오는 것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아닌 사람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니체에서 바그너까지 모두 22장에서 적지 않은 스위스 방문 혹은 생활자를 다룬다. 재미난 것은 니체가 바그너를 숭배하다가 그의 변화에 실망한 후 극렬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2장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것을 단순히 방문객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을 같이 연결해서 설명해준다. 같은 지역에 있었다고 해도 시대가 다르거나 만난 적이 없다거나 같이 만났다고 해도 각자가 너무 거장이라 각각 한 장을 할애한 듯하다. 단순히 스위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라면 이런 식으로 편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스가 영구중립국이란 것과 징병제란 사실만 알고 있었지 여성참정권이 1971년에야 허용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금이야 국민소득이 높지만 한때는 이민이나 인력을 파견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병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스위스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거는 나치와 연결되고, 현재는 은행과 이어진다.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던 그때 가혹한 국경 정책은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책에서도 봤지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데 그들은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한국처럼 아직도 인정하지 않거나 일본처럼 부인하는 나라도 있다.

 

스위스가 관광대국이 된 데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알프스를 알린 것도 처음에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나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식이 풍듀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이 퐁듀가 스위스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첫 번째 음식이 되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관광과 연계해서 홍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스위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폐병환자들이 머물던 다보스가 예전에는 영화 촬영도 거부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필요에 의해 그 사실을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최근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재빠른 정책 변화에 놀란다. 그들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관광 영업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중립국이란 이유 때문인지 스위스를 거쳐간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연히 레닌이다. 여성참정권 이야기는 스위스를 새로운 면모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존엄사로 부르기도 하는 조력자살이다. 안락사에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의미있었지만 이런 조력자살을 법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여성참정권을 그렇게 늦게까지 허용하지 않은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엇박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2013년에 논란이 되었던 사적사용 토렌트 법적 인정 같이 놀라운 판결도 나온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언어의 유사성 때문인지 독일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스위스 국적은 물론 더 많다. 여행 가이드 책이 아니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더 중심에 놓여 있다. 인물이 중심에 놓이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이 같이 곁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 목록을 보니 각장 마다 몇 권씩 있다. 번역본이 없는 것이 더 많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왜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려 읽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통상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목적을 가진 여행자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아니면 나처럼 스위스와 그곳을 다녀간 방문객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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