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여행을 좋아해 - 30대 딸과 60대 아빠, 7년 차 여행 콤비의 청춘 일기
이슬기 지음, 이규선 사진 / 성안당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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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의 배낭여행기인 <댄싱 위드 파파>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도 이 부녀 사이가 부러웠는데 이번 여행기를 읽으면서 더 심해졌다. 이 둘은 오랜 여행 동반자다. 기본적으로 딸 이슬기가 전체 여행기를 끌고 나가고, 그 사이를 아빠의 여행일기로 채웠다. 이번 여행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해 북아프리카를 지나 동유럽을 거쳐 크로아티아에서 끝난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엄마와 동생까지 동행한다. 물론 이때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3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를 보는 딸의 시선은 따뜻함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아빠와 동행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여행기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정보도 충실하지 않다. 가이드북으로 쓴 책이 아니니 당연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전에 읽었던 여행기나 방송 등과 비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과장된 표현이 너무 많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쁜 부분이 생략되었거나.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 당시보다 다녀온 후 그 여운이 더 강하다는 지적이 이 책에 그대로 적용되었을 수도 있다. 가보지 못한 사람의 부러움이 괜한 트집으로 변한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에 더 그런지 모른다.

 

7년차 여행 동반자의 갈등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일정을 둘러싼 부분에서도 서로 조금씩 양보한다. 이들이 로마에서 만난 모녀의 모습은 아마도 그들의 첫 여행과 닮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작은 충돌 말이다. 이 부녀는 슬기롭게 이것을 넘어섰다. 그래서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동안 사소한 충돌은 늘 있다. 잔소리와 작은 배려는 이 부녀에게 늘 있는 일이다. 나쁜 일이 하루의 여행을 망쳐도 씻어내고 다음 일정을 시작한다. 장소의 차이를 생각하는 부분은 여행자의 작은 깨달음이다. 한 지역에서만 살면 그 깨달음이 늦게 오는 경우가 많다.

 

긴 여행을 떠나는 배낭여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여행을 보면 부럽다.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 속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떠나고 싶다. 현실은 언제나 하나의 핑계가 된다. 직장을 은퇴한 아빠가 한 행동을 직장인인 내가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혼자가 아닌 내가 딸처럼 훌훌 떠날 수도 없다. 다음 선택은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긴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행 이야기를 하면 늘 흥분하고, 읽고 듣고 본 것을 주절주절 떠든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도 혼자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자주 읽고 보고 듣고 한 장소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규선 씨가 직장인으로 살면서 딸에게 어떤 아빠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알 수 있다. 아빠의 여행일기에 딸의 전 직장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부분을 보면서 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 속에서도 또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기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이 부녀가 보여준 환한 웃음을 보는 것이다. 내 눈에는 둘이 닮아 보이는데 엄마를 닮았다고 한다. 천생연분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예쁜 사진도 있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도 가끔 보인다. 단순한 편집의 실수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직 이 부녀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어디로 갈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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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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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SF스릴러다. SF 자체도 자주 나오지 않는데 스릴러까지 접목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한국의 SF도 스릴러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체에 대한 평가다. 부분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작품들이 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 작품의 경우가 그렇다. 김주영이라고 하면 <객주>의 소설가가 먼저 떠오른다. 아직은 인지도가 그 정도다. 나중이라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이력을 다시 봤다. 집에 사 놓은 책들이 보인다. 우선순위가 올라갈 것 같다.

 

시간여행을 다룬다고 하지만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를 옮겨다니면서 활약하는 내용이 아니다.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거의 한 시점인 1937년 상해로 와 주인공 강지한을 데리고 간다. 실패한 밀정이라는 설정을 그에게 부과했지만 조금씩 나오는 이력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과 날카로운 직관력은 이런 생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이런 강지한이 미래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변한 미래의 과학기술을 이해하는데 그의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와 강지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치엔이라는 시간 망명자를 두었다.

 

지한을 과거에서 데리고 온 인물은 제다. 미래 세계에서 그는 흔하지 않는 원주민이다. 지한을 데리고 오기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겪었는데 왜 그를 데리고 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한이 사랑했던 수향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세 번이나 시도할 정도는 아니다. 시간여행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에 대한 단서는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작가가 분명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설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분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곳이 꽤 있다. 읽으면서 생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읽은 후 나의 이해도와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거나.

 

미래는 대학살의 참사를 겪은 후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출산율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이 인물들은 그 시대에 죽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간 이민을 통해 미래 세계에 살게 된다. 치엔도 이렇게 미래로 온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과 원주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래는 아르고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인체슬롯이란 것을 이용해 통신망 등에 접속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들이 본 것과 들은 것은 모두 저장이 된다. 생활의 편리함은 높아지지만 개인의 비밀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보안등급이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통제와 감시 도구가 된다. 이 소설의 소재 중 하나다.

 

시간이동을 했다고 하지만 출신 성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립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미래 세계는 국가란 개념이 사라졌다. 그러니 이런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한이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 장면이 등장한다. 제가 이들에게 몇 번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무시한다. 이들은 다시 시간이민시킨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제의 이런 행동은 당사자나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잔혹한 것이다. 치엔이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의 성격 중 한 부분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원주민 출신인 제는 여자로도, 남자로도 살아본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감정이 메마른 부분이 있다. 이 세계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 있다. <공각기동대>다. 신체는 쉽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뇌와 관련된 부분은 다르다. 신체를 포기하고 뇌만 보관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뇌가 아니다. 데이터다. 기억과 인격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 속에 넣을 경우 같은 외모의 다른 사람이 된다. 인체해킹이다. 이 소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수백 년을 살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별족들에게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작가는 참으로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과 과도한 설정이 있기는 하다.

 

음모와 대학살과 연쇄살인 등이 서로 엮여 돌아간다. 미래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비판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바꾸는 별족 같은 귀족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이익이 극대화될 때 대학살이 벌어진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다. 단순한 연쇄살인처럼 보였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숨겨진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곳에는 강지한과 치엔이 있다. 생략된 부분과 몇 가지 의미 해석은 전체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가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장면들은 끝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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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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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언론을 보면 과연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인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기레기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기자에 대한 혐오감은 과히 그 극에 달했다. 이런 시대라고 언론인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신의 본분을 위해 권력과 싸우고, 진실을 파헤치고, 어떻게든 이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더 많은 진실과 사실을 알게 되고, 찌라시와 오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왜 언론이, 특히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이 작품도 언론인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오 신문사 사회부 기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건의 시작은 7년 전에 있었던 여아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다. 이때 주오 신문은 특종에 대한 욕심에 그만 오보를 내고 만다. 그 오보의 내용은 유괴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사는 다른 언론과 피해자 가족의 지탄을 받는다. 이 보도와 관련된 사람들은 좌천되고, 다른 곳으로 발령난다. 그 당시 팀장이었던 세키구치 고타로는 지국을 전전한다. 현재는 사이타마현 지국의 기자로 살아간다.

 

고타로는 7년 전 사건이 단독 범행이 아니라 공범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이타마현에서 발생한 미수 사건에서 2명이 함께 움직였다는 말에 기자의 촉이 발동한다. 이런 미수 사건이 한 건이 아니다. 또 한 건 발생한다. 둘 모두 소녀들의 기지와 운이 작용해 무사히 마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고타로는 7년 전 사건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혹시 그때 잡히지 않은 공범이 있었다면 다시 납치 살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타마현 경찰을 찔러본다. 도쿄의 경시청도 움직이길 바란다. 그러나 7년 전 오보 사건의 주역이 현재 사회부 부장인 도야마다. 한때 사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좌천되었던 이력이 있다. 고타로에 대한 인상도 좋지 않다. 오보에 대한 공포증도 남아 있다. 신문사 내부의 갈등도 같이 다루어진다.

 

고타로를 축으로 7년 전 사회부 기자들이 중심인물로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고타로 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기자 중 한 명은 정리부로 빠진다. 마쓰모토 히로후미다. 기자의 펜에 의해 피해자 가족이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부서로 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문사 내부를 새롭게 보게 된 곳 중 한 곳이 이 정리부다. 신문사를 다룬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활자의 크기나 조판에 관련된 부서가 나오는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부분에서 전문인력이 동원되고 있다. 단순히 편집부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다른 한 명은 후지세 유리다. 현재 특별 취재팀 소속이다. 그녀가 다시 고타로와 함께 일하게 된 대는 그를 싫어하는 다른 기자 때문이다. 그녀라면 고타로와 본사의 중간 연결책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유리는 이 일을 아주 잘 해낸다. 우리가 흔히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고타로가 가진 끈질김도, 여성의 섬세함도, 저돌적인 모습까지 말이다. 고타로에게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지만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유리는 사이타마현 지국의 기자들과 함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주오 신문과 다른 신문 기자들이 등장한다. 특종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기 위해 늦은 밤 경찰의 집을 찾아간다. 대부분 쫓겨나오지만 집안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생긴다. 고타로가 주장한 공범설은 어느 순간 경찰 내부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고, 사건을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예전에 자주 나왔던 기자가 탐정에 액션까지 보여주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이다. 경찰과의 역할 분담이 무엇인지, 실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신문사 내부의 갈등과 정보를 둘러싼 경찰과의 대립과 특종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몰입도를 높여준다.

 

간단하게 결론을 말하면 재미있다. 기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만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기자 출신인 작가라서 그런지 세부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대목들이 나온다. 즐겁다. 범인에 대한 추측은 나오지만 그 범인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머리 써야하는 트릭이나 범인과의 심리전이나 반전도 없다. 있는 것은 범인을 찾고 정보를 하나라도 더 빨리 전달하려는 기자들의 열정이다. 독불장군 같은 고타로가 왜 필요한지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속보에서는 SNS에 밀릴지 모르지만 정확한 정보라면 아직은 언론사가 더 낫다. 언젠가 없어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기자지만 현재는 이런 기자들이 있어 우리는 사회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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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연결 -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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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가볍고 작은 책이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묵직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는 인터넷 검색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다룬 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목차에 나오는 한국에 연민을 느낀다는 보고 어떤 점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쪽수를 넘기면서 이 생각들은 조용히 날아갔다. 환경과 여행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철학적 이야기들이 가볍게 나의 뇌를 두드렸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당연한 수순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약한 연결. 우리는 흔히 강한 연결과 유대를 우선시 한다. 강한 연결은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 놓고 우연성에 대한 대처를 늦게 만들 뿐이다. 구글 검색의 예를 들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로 검색을 해봐야 늘 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장소를 바꾼다면, 다른 언어를 이용한다면 어떨까? 늘 같은 곳에서 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검색창만 바꿔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언어를 바꾸면 또 다른 내용이 나온다. 장소 변경은 같은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예를 든다. 체르노빌의 경험담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을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후쿠시마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실제 넓은 후쿠시마 지역에서 방사능이나 쓰나미의 피해가 전혀 없는 곳이 있는데 후쿠시마란 지명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른 용어를 만들자고 하는데 이 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곳을 가는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오해가 없게 할 수 있는지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첫 장의 인도 경험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 상의 걱정과는 달리 5성급 호텔 이름으로 쉽게 비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정보다. 늘 이런 상황이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을 감으로 인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단순히 장소만이 아니라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해서 풀어낼 때 그가 왜 여행을 그렇게 부르짖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나가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도시라고 해도 여행으로 다녀오면 아주 많은 이야기 거리가 생긴다. 그곳에서 경험한 것들이 시간 속에서 내재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구글 로드뷰로 어지간한 곳의 외부 풍경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음식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직접 그 나라에 가지 않아도 간접 경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현장에 가서 실물을 만지고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관광한 그의 경험은 이 학살의 현장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큰 반론이 된다. 이것은 다시 한국의 위안부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위안부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말과 물질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연민을 느낀 한국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이지만 이 책의 구성이 원래 그렇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말은 말일 뿐이다. 언어의 제약 속에서 우리는 산다. 다른 언어가 가능하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것도 사실이다. 체르노빌이 좋은 예다. 언제부터인가 맛집에 대한 검색이 신뢰도를 잃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맛집 정보가 가려진 탓이다. 파워블로거란 이름으로 정보를 풀어놓지만 홍보성 글들이 대부분이다. 여행지에 대한 검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문 카페나 사이트에 가야만 좀더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검색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해진 일정만 보낼 것이 아니라 우연에 맡기라고 한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검색어를 찾은 여행은 삶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과 그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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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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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출간되었다. 장르소설 애호가의 한 명으로 이렇게 출간된 것만으로도 반갑다. 사실 이 작품은 한국의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이 살인범을 잡으려는 의지나 과학 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책 속에도 나오지만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 범인을 잡는 명탐정도 없다. 어떻게 보면 13세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을 다룬 소설이다. 억지스럽게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도 않고, 불필요한 설명도 없다. 하지만 역사의 한 장면으로 독자를 끌고 가 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공항기 텍사스 동부 지역의 13살 소년 해리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노년의 해리가 과거의 한 연쇄살인 사건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해리는 여동생 톰과 함께 허리를 다친 개 토비를 죽이러 갔다가 강에 놓여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아이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린다. 아버지는 마을의 보안관이자 이발사다. 다음날 흑인 여성 시체를 치운다. 그리고 이 시체를 흑인들의 마을로 데리고 가서 흑인 의사에게 해부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 의사가 흑인 시체를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인종차별주의가 너무나도 당연했던 1930년대 남부로 데리고 간다.

 

이 훼손된 시체는 이후에도 발견되었지만 이전에 발견된 흑인 여성의 시체가 또 있었다. 언론은 이 사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녀들이 흑인 매춘부였기 때문이다. 만약 백인이었다면 흑인 중 누군가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거세되고 살해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 속에서 한 흑인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되고, 보안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목 매달려 죽는다. 백인들이 흑인을 몇 명이나 죽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남북 전쟁 이후 흑인들이 해방되었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백인을 나리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춘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흑인 매춘부의 죽음을 흑인들의 타고난 천성인 것처럼 매도하고 무시한다. 남자들의 아내에 대한 폭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불편한 사실들은 언제나 마주할 때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흑인들과 백인들이 사는 곳이 나누어져 있다. 백인이 흑인을 강간하는 것이 큰 죄가 되지 않지만 흑인이 백인 여성을 만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해리에게는 다행히 이성적 판단을 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인종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이 시절 남부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개인과 민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우리의 교육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이 시절에는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배심원으로 유죄와 무죄를 나누기에 백인들이 손해보는 일은 거의 없다. 존 그리샴이 <타임 투 킬>에서 다룬 것은 아주 먼 훗날이자 흑인의 인권이 아주 많이 신장된 후다.

 

긴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연쇄살인범과의 밀고 당기는 대결이 이 소설에는 없다. 연쇄살인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남부의 현실을 살인 사건 속에서 하나씩 보여주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다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해 어떤 마무리로 이어질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읽으면서 혹시 이놈이 범인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가 맞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 속에서 직관적으로 유추한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다가 얻어걸린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면 당연히 수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에필로그를 꼽고 싶다.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그 이전에 알려지고, 인종차별로 가득한 남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도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준 한 부분을 꼽으라면 이 에필로그다. 연쇄살인을 해결한 이후 현실의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데 냉정하고 비정하다. 동화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미담은 없다. 어쩌면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역사라고 하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종차별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섬뜩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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