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한국 SF스릴러다. SF 자체도 자주 나오지 않는데 스릴러까지 접목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한국의 SF도 스릴러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체에 대한 평가다. 부분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작품들이 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 작품의 경우가 그렇다. 김주영이라고 하면 <객주>의 소설가가 먼저 떠오른다. 아직은 인지도가 그 정도다. 나중이라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이력을 다시 봤다. 집에 사 놓은 책들이 보인다. 우선순위가 올라갈 것 같다.

 

시간여행을 다룬다고 하지만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를 옮겨다니면서 활약하는 내용이 아니다.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거의 한 시점인 1937년 상해로 와 주인공 강지한을 데리고 간다. 실패한 밀정이라는 설정을 그에게 부과했지만 조금씩 나오는 이력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과 날카로운 직관력은 이런 생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이런 강지한이 미래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변한 미래의 과학기술을 이해하는데 그의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와 강지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치엔이라는 시간 망명자를 두었다.

 

지한을 과거에서 데리고 온 인물은 제다. 미래 세계에서 그는 흔하지 않는 원주민이다. 지한을 데리고 오기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겪었는데 왜 그를 데리고 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한이 사랑했던 수향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세 번이나 시도할 정도는 아니다. 시간여행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에 대한 단서는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작가가 분명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설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분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곳이 꽤 있다. 읽으면서 생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읽은 후 나의 이해도와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거나.

 

미래는 대학살의 참사를 겪은 후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출산율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이 인물들은 그 시대에 죽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간 이민을 통해 미래 세계에 살게 된다. 치엔도 이렇게 미래로 온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과 원주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래는 아르고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인체슬롯이란 것을 이용해 통신망 등에 접속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들이 본 것과 들은 것은 모두 저장이 된다. 생활의 편리함은 높아지지만 개인의 비밀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보안등급이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통제와 감시 도구가 된다. 이 소설의 소재 중 하나다.

 

시간이동을 했다고 하지만 출신 성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립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미래 세계는 국가란 개념이 사라졌다. 그러니 이런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한이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 장면이 등장한다. 제가 이들에게 몇 번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무시한다. 이들은 다시 시간이민시킨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제의 이런 행동은 당사자나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잔혹한 것이다. 치엔이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의 성격 중 한 부분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원주민 출신인 제는 여자로도, 남자로도 살아본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감정이 메마른 부분이 있다. 이 세계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 있다. <공각기동대>다. 신체는 쉽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뇌와 관련된 부분은 다르다. 신체를 포기하고 뇌만 보관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뇌가 아니다. 데이터다. 기억과 인격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 속에 넣을 경우 같은 외모의 다른 사람이 된다. 인체해킹이다. 이 소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수백 년을 살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별족들에게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작가는 참으로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과 과도한 설정이 있기는 하다.

 

음모와 대학살과 연쇄살인 등이 서로 엮여 돌아간다. 미래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비판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바꾸는 별족 같은 귀족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이익이 극대화될 때 대학살이 벌어진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다. 단순한 연쇄살인처럼 보였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숨겨진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곳에는 강지한과 치엔이 있다. 생략된 부분과 몇 가지 의미 해석은 전체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가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장면들은 끝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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