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우 아저씨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48
민사욱 그림, 송정화 글 / 시공주니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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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붉은 여우 아저씨’는 ‘흰 털’을 가진 여우 아저씨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붉은 모자, 붉은 신발, 붉은 가방, 붉은 옷을 입고 있죠. 그러니, 붉은 색이야말로 ‘붉은 여우 아저씨’의 본연의 모습은 아니지만 또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색일지 모르겠어요.

그런 ‘붉은 여우 아저씨’가 길을 떠나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그 과정에서 대머리독수리를 만나고, 버드나무를 만나며, 숭어를 차례대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붉은 여우 아저씨는 자신의 모자, 신발, 가방을 하나씩 빼앗기게 됩니다. 각자에게 이것들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거든요. 대머리독수리에게는 모자가 필요했고, 버드나무는 움직이기 위해선 신발이 필요했으며, 숭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가방이 필요했죠.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서 보게 되는 점은 붉은 여우 아저씨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예요. 붉은 여우 아저씨의 빈틈을 노리고 이 친구들이 빼앗아 간 거예요. 붉은 여우 아저씨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에요. 그런데,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그 후의 붉은 여우 아저씨의 반응이었답니다. 붉은 여우 아저씨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아요. 도리어 그것들을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다며 좋아하죠. 그리곤 그들과 친구가 되길 원하고요.

 

바로 이 부분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자발적 선행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상황 때문에 하는 선행 역시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요. 아울러 내가 자발적 선행을 하려 하다가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우리의 기분도 달라짐을 꼬집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제 경우로 예를 들어 볼게요. 꽉 막힌 길에서 옆에서 차가 끼어들려고 해요. 그런데,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죠. 그럴 때, 제가 기쁜 마음으로 양보를 해요. 여기까진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끼어든 차가 고맙다는 표시도 하지 않으면 괜히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하거든요. 바로 이런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 아닌가 돌아보게 되네요.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마지막에 가선 붉은 여우 아저씨 스스로 자신의 붉은 옷을 벗어 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년에게 벗어 준답니다. 어쩌면 붉은 여우 아저씨는 처음부터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는지도 몰라요. 대머리독수리가, 버드나무가, 그리고 숭어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붉은’ 것들을 가져감에도 화는커녕 오히려 잘됐다고 미소 지었으니 말이에요.

 

우리도 이런 예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예쁜 마음씨를 가진 ‘붉은 여우 아저씨’는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붉은 색이 하나도 없음에도 친구들이 생겨 행복하답니다.

 

이 예쁜 그림책, 『붉은 여우 아저씨』는 또한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여우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려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동화 속에 나오는 여우는 언제나 못된 녀석, 영악한 녀석이죠. 게다가 붉은 색에 대한 편견도요. 짧은 이야기이지만,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동화이며, 아울러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는 메시지도 숨어 있는 좋은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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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꼭대기에 꼬마둥이그림책 5
수잔네 슈트라서 글.그림, 서지희 옮김 / 좋은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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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픈 곰은 높다란 건물 꼭대기에 있는 창문을 통해, 맛나 보이는 케이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너무 높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죠? 곰은 친구들과 힘을 합치게 됩니다. 곰 위에 돼지가 올라가죠. 그래도 손이 닿지 않자, 이번엔 또 그 위에 개가, 개 위에 토끼가, 토끼 위에 암탉이, 암탉 위에 개구리가 올라가죠.

이제 개구리까지 올라간 후에는 어쩜 손이 닿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때 창문에 한 아이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만 아이가 케이크를 홱 가져가 버리네요. 이를 어쩌죠? 동물 친구들은 케이크를 먹기는커녕 와르르르 무너져 내렸답니다. 과연 동물 친구들은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요?

『맨 꼭대기에』란 제목의 이 그림책은 책의 모양도 높다란 건물처럼 길쭉하네요. 그리고 동물 친구들 하나하나가 추가되면서 높이 탑을 쌓아갈 때마다 과연 이번에는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고조시킨답니다. 이렇게 친구들이 올라갈 때, 풀쩍, 팔짝, 깡충깡충, 파닥파닥, 폴짝 폴짝. 이렇게 의태어로 표현함으로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의태어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요.

 

이 그림책은 무엇보다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도 친구들이 하나하나 힘을 합하게 될 때, 점점 손은 케이크 가까이 갈 수 있거든요. 이게 바로 함께 하는 힘, 함께 함의 마법이죠.

 

또 하나 이 책에는 유쾌한 반전이 있답니다. 바로 함께 나눔의 즐거움이죠. 커다란 케이크를 혼자 먹으면 이건 정말 살이 되고 피가 된답니다.^^ 하지만, 함께 나눌 때,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고 행복할 수 있죠.

역시 그림책은 이처럼 명확한 게 좋아요. 너무 추상적인 그림책들은 솔직히 누굴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경우도 없지 않거든요.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어쩌면 아이들이 까치발을 하고 들을지도 몰라요. 높은 곳의 케이크를 잡기 위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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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이순원 그림책 시리즈 4
이순원 글, 김지민 그림 / 북극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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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네 아빠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은지와 함께 있을 수 없답니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거든요. 모두 퇴근한 회사를 밤새 지켜야 하거든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할 수 없는 은지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할지 상상이 가 안타깝네요. 모두가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크리스마스이지만, 어쩌면 은지에게도 은지 아빠, 엄마에게도 너무나도 춥고 쓸쓸한 날에 불과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춥고 쓸쓸한 날이 한 사람의 관심과 배려로 따스하고 밝게 변하게 됩니다. 바로 아빠와 함께 근무하는 건물의 전기 기사님 때문이에요. 마침 은지와 엄마는 아빠가 근무하는 회사 앞으로 왔답니다. 이 때, 전기 기사님이 은지를 축복하는 글씨들을 건물에 띄우거든요.

이순원 작가의 그림책은 처음 만났습니다. 소설로 만나던 작가를 그림책으로 만났는데, 역시 작가만의 따스함이 그대로 묻어나네요. 이순원 작가의 글에서는 포근하고 따스한 향이 나거든요. 이 그림책 역시 그런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그림 역시 예쁘고요.

 

이 그림책을 읽고 나니, 오늘 우리들의 선물이 어떤 모습인지도 돌아보게 되네요. 수백만원짜리 캐릭터 인형이 동이 나서 살 수 없다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어요. 수백만원짜리 인형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 아이들이 장차 자랐을 때, 과연 어떤 선물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작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선물은 값비싼 것들만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사정을 알고 배려하는 작은 불빛, 그 불빛이 우리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관심과 배려의 불빛이야말로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선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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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따카니 - 삐딱하게 바로 보는 현실 공감 에세이
서정욱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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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세상을 바르게 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삐딱한 세상을 바르게 바라본다면 여전히 삐딱할 뿐이다. 삐딱한 세상을 바르게 보기 위해선 보는 사람의 시선 역시 삐딱해져야 한다. 만약 삐딱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 사람은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삐딱한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 삐딱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세상을 풍자하는 그림에세이가 있다. 이 책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삐따카니』는 도리어 세상을 바로 보는 책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삐따카니』의 저자 서정욱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 안타까운 현실들을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나 이야기와 그 모티브를 연관시켜 풀어나간다. 풍자를 가득 담고서.

 

예를 든다면 이렇다.

 

<걸리버 여행기>는 하루에 거인국과 소인국을 왔다 갔다 하는 가장의 쓸쓸함을 풍자한다. 가정에서는 식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어떻게든 가정의 버팀목이 되어야만 하는 소인국 속의 거인 걸리버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꾸 작아져만 가는 거인국 속의 작은 걸리버에 불과하다. 직장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든 버텨내야만 하는 가장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준다.

 

새롭게 바라보는 현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있다. 같은 반에,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같아 서로 잘 어울리며 함께 있으면 너무 재미있는 친구 사이가 있다. 둘은 같은 동네에 살기에 더욱 좋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금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다른 친구와는 놀지 말라고 한다. 왜? 이 친구는 고급 아파트단지에 살지만, 또 다른 친구는 허름한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아파트 단지는 같은 동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삐딱한 세상 역시 이러한 건너지 못할 수많은 강들이 존재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 살지만, 엄연히 다른 세상. 결코 건널 수 없는 강. 누가 이 강을 만들었나?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들, 남들보다 더 힘이 있는 자들은 이 건너지 못할 강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 좋은 것 누리며 산다고 즐거워한다.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오늘 우리 사회에 이 건너지 못할 강이 존재하지 않다 말할 수 있나? 그렇기에 우린 때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봐야 한다.

짧은 글귀, 그림 가득한 페이지. 그렇기에 이 책은 술술 넘기며 책 한 권을 뚝딱 읽을 수 있는 ‘스낵 컬처 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쩌면 깊은 맛은 조금 부족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삐딱한 세상을 삐딱하게 바로 보는 저자의 눈은 참 정확하다. 대부분의 글들을 읽으며, 독자는 ‘맞아! 그렇지!’ 추임새를 넣을 만한 그런 공감 에세이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렇게 삐딱함이 가득한 세상임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모두 삐딱하지 않게 바라봐도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세상을 꿈꾸며,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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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눈물 (한영일 대역 시집) 포엠포엠 시인선 11
권순자 지음 / 포엠포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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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시대적 아픔에 관심을 갖는 시가 좋다. 평소 시인은 문학의 힘으로 시대적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권순자 시인의 시집 『천개의 눈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커다란 시대적 아픔을 어루만지는 문학의 위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꽃다운 나이에 공장이나 간호사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회유, 가족의 안녕을 담보로 한 협박, 납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함 가운데 처함으로 타의에 의해 지옥을 맛봐야만 했던 우리네 할머니들. 여전히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하고 한 맺힌 가슴을 부여안고 한 분 한 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성노예 할머니들. 바로 그분들의 아픔, 한, 한숨과 눈물을 어루만지는 시가 바로 『천개의 눈물』이다.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이기에 추상적이지 않다는 점도 좋다. 시인만의 세계에 시어들이 갇혀 있지 않다는 말이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에 시인의 시어들이 쏙쏙 들어와 할머니들의 아픔, 맺힌 한, 흘렸을 눈물들이 오롯이 독자의 것이 된다.

 

또 하나 이 시집의 특징은 한․영․일 대역 시집이라는 점이다. 모든 시가 한글, 영어, 일어로 성노예 할머니들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일어로 시를 번역하고 있음이 의미 있다 여겨진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 시를 읽고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뉘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성노예 할머니들의 억울하고 한 맺힌 한숨이 조금은 잦아들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고 포장하려 하는 그네들이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님을 안다. 언젠가 독립기념관에서 일본 고등학생들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눈물을 흘리며 울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사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선조들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선조들의 잘못을 반성하며, 그 만행의 끔찍함에 눈물 흘리던 여고생들. 그녀들이 흘렸던 눈물과 같은 의미의 눈물이 이 시집을 통해, 흘러내릴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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