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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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사랑받는 작가는 분명 이유가 있다. <마더나이트>를 읽으며 왜 커트 보네거트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심각한 상황에서 독자를 웃게 하는 작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 그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다. 이제껏 그를 몰랐던 건 슬프지만, 더 늦기 전에 알게 된 건 다행이다.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마더나이트>의 구성은 독특하다. 먼저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 미국판을 편집한 편집자의 말로 시작하고, 이어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이 이어진다. 이런 구성이 어떤 의도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직접적으론 편집자가 언급한 독일어 자작시 부분, 명예훼손과 외설을 우려해 중요한 삭제가 이루어졌다는 두 곳을, 본문에서 읽으며 혼자 좋아했다는 정도만 말해 두겠다.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의 화자는 표면적으론 나치의 라디오 선전원이었지만, 사실은 미국의 첩보원이었던 하워드W. 캠벨2세다.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온 하워드는 마치 장난처럼 위르타넨 소령에게 미국 첩보원으로 포섭된다. 운명이었을까? 하워드는 나치의 라디오 선전을 담당하며 첩보원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아무도 그가 스파이인 것을 몰랐으니까. 위르타넨 소령을 포함한 몇 명(총 3명)을 제외하곤. 전쟁이 끝나고 전범이 된 그는 말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였다. 나는 히틀러의 오른팔처럼 우쭐거리며 돌아다녔고, 어느 누구도 마음속에 깊이 감춰둔 진실한 나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미국 첩보원이었다는 사실을 과연 증명할 수 있을까?"(p.68)라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세상 모두를 속인 나치 라디오 선전원, 아니 미국 첩보원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다. 

특별히 이야기 하고 싶은 건 두가지다. 등장인물의 희화화와 과장, 작품에 숨겨져 있는 희곡코드.

1) 등장인물의 희화화

세상 모두에게 비난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하워드지만, '정상적인' 인물은 그밖에 없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과장되어 있고 비정상이다. 몇몇 부분을 보자. '오거스트 크랩타우어'의 사망장면.(p.124) 헬가의 짐을 옮기려고 계단으로 올라온 그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했던 하워드 캠벨 씨 같은 사람의 아내를 위해 죽는다면, 나에겐 영광이오."란 말을 남기고 푹 쓰러져 죽어버린다. 함께 있던 닥터 엡스타인은 부검하는 척 거칠게 다뤄놓고는 "나는 치과의사요"(p.125)라고 한마디 던진다.

아이히만과 하워드의 대화.(p.218) 하워드는 빈정거림을 시도한다. "당신은 일개 군인이었죠?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군인처럼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명령을 따르기만 한 거죠?" 그러자 아이히만의 반응은 대단하다. 희화화의 극치라고나 할까. 그는 하워드에게 자신의 진술서를 본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변론을 알고 있는가?"

그 외 몇 걸음마다 숨을 돌리고 스물까지 세면서 계단을 오르는 킬리 신부, "조금 있으면 모두 죽게 될 테니까 말하는 건데, 난 형부를 사랑해요."(p.146)라는 어린처제 레지 노트, 순수한 악을 처단한다며 까불다가 다치는 버나드B.오헤어 등등. 하여간 모든 인물이 코믹하고, 사회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과는 약간 엊나가 있다. 저자는 이들과 하워드를 대조하며, 하워드가 처한 역설적 상황을 강조한다.  

2) 작품에 숨겨진 희곡 요소

-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내의 각 장은 10페이지 남짓이다. 굉장이 짧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특히 1장부터 4장은 하워드를 감시하는 간수가 각각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아르놀트 마르크스, 안도스 구드만, 아르파트 코바치, 베르나르트 멩겔. 이건 마치 배경이 바뀌거나 등장인물의 퇴장등으로 구별되는 '희곡의 장(Scene)'을 연상시킨다. 또한 간수와 하워드의 대화가 주요내용이란 점도 희곡의 대립적 구조와 대칭된다. (1장부터 4장은 든 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이런 특징은 계속된다.)

- 희곡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개성있는 인물이다. 1)에서 이야기한 희화화된 등장인물은 이에 부합한다. 특히, p.282,283 레지와 하워드가 주고 받는 대화는 마치 희곡을 보는 듯하다. 처음 아무 생각없이 읽다, '이건 완전히 희곡인데'라며 놀랐었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듯한 둘의 대화. 엄청난 개성의 소유자 레지. 작가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이건 완벽한 증거이다.

- 나중에 이야기 하겠다던 작품 앞 '편집자의 말'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희곡 앞부분엔 '막이 오르기 전후에 필요한 무대 장치, 인물, 배경 등을 설명하는 글'인 '해설'이 있다.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 미국판 '편집자의 말'을 희곡의 '해설'과 병치시켜 보자. 어떤가? 한마디로, '편집자의 말'은 작품의 희곡적 요소이다. 희곡의 해설처럼 <마더나이트>를 해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이제 작품 외적인 요소를 보자. 주목한 것은 한 페이지를 깨끗하게 비워둔 작품 편집이다. '하워드W. 캠벨2세의 고백록'내 한 장(Scene)이 다른 장(Scene)으로 넘어갈 때, 한 페이지는 아무것도 없다. 원작도 그런지, 문학동네 편집자가 임의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후자라면 잘못된 추론이겠지만, 전자라면 '희곡의 장(Scene)'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고려해야 한다. 정말 궁금하다. 원작도 그런지, 문학동네 편집자가 임의로 편집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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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3-15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원작도 그럴겁니다. 전형적인 천재형 작가인 괴짜 커트라면 그런 발칙한 발상을 하고도 남을 겁니다. 저도 이거 조만간 읽어볼려고 했는데 벌써 접수하셨군요~~~^^

쥬베이 2009-03-15 22:34   좋아요 0 | URL
아 lazydevil님도 노리고(^^) 계셨군요ㅋㅋㅋ
이 작품 진짜 강추입니다!!
커트 보네거트, 제 베스트 작가가 될거 같아요^^

2009-06-28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