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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내 남자>는 얼핏 연애소설 같지만, 연애소설은 아니다. 도리어 추리, 미스터리에 가깝다. 특히 현재에서 과거로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은, 이런 느낌을 배가한다. 재미있게도 사쿠라바 가즈키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이런 구성을 착안했다고 한다. (앞날개 참조)
1장은 결혼준비로 분주한 '하나'와 '오자키'의 모습, 하나의 양아버지 '준고'와 하나의 미묘한 관계가 핵심이다. 준고에 대한 하나의 미묘한 감정은 주목할 만하다. (결국, 이 작품의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는 준고와 함께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표현한다. '먼 과거가 캄캄한 물결이 되어 어두운 원망의 감정과 함께 밀려왔다.'(p.15)라고. 또한 준고가 뒤에서 껴안자, '몸속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일었다. 소름이 끼칠듯한 혐오감이 온몸으로 번졌다.'(p.24)라고 한다. 하나는 준고를 증오하고 있다. 준고의 행각에 의혹이 집중되는 상황.
하지만, 하나는 준고를 증오하면서 증오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이 말은 하나의 미묘한 심리상태와 어울린다. 결혼식에 준고가 오지 않아 먼저 식을 시작하려 하는데, 하나는 "아빠 없이는, 나 결혼 안 할 거야!"(p.36)라며 소리치고, 뒤늦게 도착한 준고를 보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한심함을 드러내고 있는 내 하나뿐인 혈육. 그 한 사람만의 은밀한 퇴폐가 황홀했다. 역시 내 남자는 너저분해도 아름다웠다.'(p.41)라고 한다. 준고에 의지하고 일면 자랑스러워하는 하나, 도대체 둘은 어떤 관계인가?
2장부터는 등장인물별로 시점이 바뀐다. 2장은 하나와 결혼한 오자키의 시점으로, 3년전 하나와의 첫 만남이 중심이다. 하나와는 정반대인 오자키의 삶이 제시되지만, 초점은 역시 준고와 하나이다. 타인이 바라보는 준고와 하나의 모습을 통해 비정상적인 부녀관계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한다. 하나의 직장동료들은 준고를 하나의 기둥서방이라 수근거린다. 준고가 젊은데다, 도를 넘는 친밀감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목할만한 부분을 보자. 하나가 오자키에게 준고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최악이고 최고에요. (중략) 이대로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떠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하면 떠날 수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어요."(p.119) 역시 모호하다.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중요소재가 제시된다. 오자키는 준고네 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전시회에서 본 이상한 그림을 떠올린다. "그 뒤엉킨 나무 두 그루 그림의 제목은 '체인 갱'이었다. 쇠사슬에 묶인 두 죄수라는 뜻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나 상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뒤엉킨 채 비쩍 마르고 지쳐 간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가지를 뻗는다."(p.140) 결말을 되짚으면 이는 직접적인 상징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3장은 준고의 시점이다. 경찰인 다오카가 준고를 찾아오고,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3장과 하나의 시점인 4장에서 미스터리였던 대부분의 비밀이 밝혀진다. 준고의 과거 일부(p.209), 살인사건의 비밀(p.185,243이하), 사진기의 비밀(p.234) 두 사람의 관계(p.188,223,257) 등등.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저런 관계일지는 몰랐다. 작품성을 별론으로 하고, 저런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걱정스럽다.
여기서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와 이 작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행동은 <잔학기>의 게이코와 유사하다. 오시오 할아버지는 준고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인물로, 하나와 준고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간파한다. 하나를 준고에게서 떼어내려고 노력(p.251)하지만 하나의 반응은 충격적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납치범 겐지에게 사랑을 느꼈던 게이코처럼, 하나역시 준고를 사랑하게 된건가. 단지 하나가 어렸기 때문 일수도 있다. 준고와 헤어진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준고가 하나를 안고 '엄마'라고 부르는 기괴한 장면p.336은 게이코에게 했던 겐지의 행동과 닮아 있다.)
아쉬운 게 있다. 사쿠라바 가즈키는 더 썼어야 했다. 준고와 하나의 만남이 핵심인 1993년에서 끝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결혼식 후 사라진 준고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고, 두 사람이 얽힌 살인사건은 흐지부지다. 결정적으로 하나의 탄생과정과 유년시절의 비밀-준고의 과거와 맞물린-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08년 현재를 끝부분(제7장으로)에 배치해 이야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핵심인 하나의 내면갈등이 좀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내 남자>는 굉장히 잘 읽히고 충격적인 설정이 인상적이다. 물론 설정에 거부감을 가질 분도 많을 것이다. 일본에서조차 반사회적, 반도덕적이란 비난을 받았을 정도니.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충격적인 설정도 추리적 구성도 아니다. 하나와 고마치, 두 여성의 미묘한 내면묘사, 이것이 <내 남자>의 진정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