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폴리스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 있음.

<네크로 폴리스>를 즐기려면 'V파, 히간, 갓치'같은 설정을 이해해야 한다. 죽은 자가 돌아오고, 함께 할 수 있는 V파, 범인을 갈기갈기 찟어버리는 갓치. 이미 여러번 히간에 참여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준'은 독자와 가장 가까운 입장이다. 그렇기에 '준'에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고, 나머지 사람들이 답을 해주는 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준의 질문의 계속 이어진다. 1권p.44를 비롯한 초반부내내, 2권p.287,313등) 하지만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애당초 모든 걸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몰라도,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작품 전체의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온다 리쿠답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먼저 시점. <네크로 폴리스>는 3인칭 시점으로 우직하게 이어진다. 지미, 테리와 흑부인 메리, 라인맨등의 시점을 번갈아 제시할 수도 있고, 그게 차라리 입체적인 구성엔 나아 보인다. <굽이치는 강가에서>등에서 완벽한 구성을 선보였던 작가이기에 의외라면 의외다.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다양한 가설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경의혹과 경사면에서 도망간 누군가의 정체 때문에, 지미에게 의혹이 집중되는 상황(2권p.28이하)에서 등장인물은 각자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준의 착각이었거나 테리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마리코, 지미가 거짓말을 한다는 하나, 테리가 살아있거나 지미와 테리의 공모라는 교수, 정신충격으로 인한 지미의 1인2역이라는 린네. 독자는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어느 한가지 입장에 동조하거나 다른 가설을 세워 볼 수도 있다.

의혹은 크게 4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오래전 증발하듯 사라진 켄트의 행방. 둘째, 연쇄 살인범 '피투성이 잭'의 정체. 셋째, 쌍둥이 테리와 지미와 관련된 의문점들. 넷째, 흑부인 메리를 둘러싼 의혹과 증발사건. ('하나'는 보다 자세하게 의혹을 정리한다. 참조하시길 2권p.239) 하나하나 자세하게 살필 생각은 없고, 인상적인 핵심사건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두번째와 관련, 피투성이 잭에게 살해당한 다섯 피해자가 등장하는 장면(2권p.107)이 있다.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질지 모른다고 기대하게 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밝혀진 건 범행수법뿐, 이들의 등장이 도리어 의혹만 증폭하게 된다.

이야기가 중후반으로 치닫고, 슬슬 걱정 되기 시작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대로 마무리할 수는 있을까?' 온다 리쿠가 깔아 둔 이야기는 번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했고, 의혹은 의혹대로 부풀려 졌기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 것이다. 결말은 역시 실망이었다. 황당하게 밝혀지는 진실은 '도대체 왜 의혹을 부풀렸을까?'란 배신감까지 느끼게 한다.

첫 번째 의혹은, '서맨서'란 여자아이의 말을 통해 해결된다. 서맨서의 말을 듣고 준이 비밀을 간파한다는 설정인데, 인물트릭을 이용한 진부한 반전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의혹이 해결되는 부분은 '황당하다'는 말로도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이없다. 잠자던 준을 습격(2권p.288이하)하는 테리와 지미가 자기 입으로 실컷 떠들면서 의혹이 해소된다. 시작부터 계속된 의혹이 저렇게 갑자기 밝혀지는 것이다.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흐지부지.) 저런 갑작스럽고 거친 전개를 선택하다니. 또한 테리와 지미의 행동도 괴상하다. 습격했으면서 목까지 그어놓고 죽이지 않는 건 뭔가? 피만 살짝나게 목을 그었다는 것도 웃기고, 변덕때문에 죽이지 않고 돌아가는 것도 웃긴다. 자신들의 정체를 준이 알게 된 상황 아닌가? 그런데 살려둔다고? (마지막 의문은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V파의 변화양상을 고려한 테리와 지미의 자신만만함 때문이 아닐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이없기는 마찬가지)

이제 남은 건, 흑부인 메리를 둘러싼 의혹과 사건이다. 온다 리쿠는 나머지 의혹은 재빨리 처리해 버리고, 저것으로 결말을 시도한다. 여기서 언급해야 하는 게, 라인맨의 누나 '아스나'이다. 아스나는 역시 라인맨이었고 켄트와 사랑에 빠져 외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 하지만 최근 V파를 찾았다 딸과 행방불명되었다. 이와 관련 아쉬운 건, 라인맨의 존재의의다. 라인맨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하고 뭔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걸로 짐작된다. 하지만 결말을 돌이켜 보면, 아스나를 등장시키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소모되었을 뿐이다.

아무튼, 준과 켄트, 라인맨은 아스나, 서맨서, 메리를 구출하러 나선다.(2권p.302) 최후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것. 여기서도 지적할 게 있다. 이 장면은 최후의 대결을 위한 절정으로 긴장감이 넘쳐야 한다. (정말 긴장감이 넘친다는 것과는 별개) 그런데 준과 켄트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대화를 나눈다.(2권p.313이하)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정말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왜 말이 되지 않는지 이해할 것이다.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준, 켄트, 라인맨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악의 무리따위도 없었고, 구하려 했던 이들은 어리둥절 할 정도로 잘 있었다. (이 부분은 너무 흐릿해 이해불가능.) 마지막 배커가 밝히는 V파의 변화내지 비밀 역시 큰 감흥은 없다.

한가지 더 말할 게 있다. 제임스의 <언덕의 품에서>(1권p.367)와 이를 영화화한 새뮤얼 가네다의 영화. 이는 미스터리함을 강화하고, 구성을 풍성하게 한다. 책의 내용도 언급되고, 가네다의 시점으로 보이는 프롤로그도 존재한다. 이 자체는 괜찮은 시도다. 하지만 역시 의혹해소 방식이 엉성하다. 아니, 의혹만 있고 나머지는 흐릿하다. (일본상영판 필름과 해외상영판 필름에 차이가 있다는 점, 필름에 손님이 찍혔고 이를 삭제했다는 의혹이다.) 전체를 조망하면 왜 이것이 등장해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시작은 멋졌지만, 중후반 이후 플롯을 통제하지 못했고 결말은 최악이다. 정치적 결말로 밋밋하게 끝낸 <메이즈>와 유사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azydevil 2008-09-1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정말이지 줄기차게, 신들린 듯 쓰는 것 같습니다. 다작이 나쁜 건 아니지만 양질의 과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재능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그래도 쥬베이님 리뷰를 보니 호기심이 생기네요~~^^

쥬베이 2008-09-12 16:40   좋아요 0 | URL
온다 리쿠 좋아하는 작가에요.
그런데 요즘 접한 작품은 하나같이 기대이하였답니다ㅋㅋㅋ
많이 쓰는 만큼, 실망이 큰 작품도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