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
마르셀라 세라노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작은 아씨들>을 읽지 않았기에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는 건 어렵지만, <작은 아씨들>을 읽어야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이 리메이크지 등장인물 설정, 전체적인 느낌을 제외한다면 거의 다른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명확한 코멘트는 <작은 아씨들>을 읽은 다음 하겠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네 자매의 애증과 파란만장한 삶을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셀라 세라노의 단아한 문장과 내밀한 묘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먼저 네 자매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은 사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촌관계이며, 고모할머니 카실다와 함께 푸에블로 제재소에서 산다. 첫째 니에베스는 예쁘고 우아했으며 동생들이 잘 따랐다. 현모양처를 꿈꾸며 라울과 결혼해 쌍둥이를 낳는다. 둘째 아다는 활동적, 반항적이며 선머슴 같은 면이 있었다. 사촌오빠 올리베리오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꾼다. 셋째 루스는 착하고 조용한 아이다. 의료봉사를 위해 아프리카로 간다. 넷째 룰라는 남자들이 줄줄 따를 만큼 매력적인 미모의 소유자로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많았다. 경제전문가로 크게 성공한다.
각 장마다 시점이 바뀐다. 1장 '메그'는 니에베스, 2장 '조'는 아다, 3장 '베스'는 루스, 4장 에이미는 룰라의 시점이다. 즉, <작은 아씨들>의 등장인물이 네 자매와 각각 대응된다. (이와 연관되는 서술은 p.235) 이러한 구성은, 한가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서로를 바라보는 네 자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예를 들어, 에우세비오 강간사건(?) 후 집을 나간 아다를 올리베리오가 데리고 오는 장면. 아다 시점인 2장에선 '사흘 후 올리베리오는 아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p.116) 한 문장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루스 시점인 3장에선 루스가 본 많은 것을-올리베리오와 아다의 모습, 카실다 고모할머니의 반응등-이야기(p.168) 한다. 네 자매간 관계를 보는 시각도 약간 다르다. 니에베스는 비슷한 성향끼리 '니에베스, 룰라 / 아다, 루스' 한 편이었다(p.30)고 하고, 루스는 연령대로 '니에베스, 아다 / 루스, 룰라' 한 편이었다(p.148)고 한다.
가장 주목한 것은, 네 자매의 우정과 갈등, 질투, 한마디로 애증관계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구성은 애증관계를 드러내는데도 효과적) 특히 아다와 룰라사이는 심각했다. 룰라가 회상하는 에피소드(p.226이하)를 보자. 아다는 성냥갑에 털이 북실한 거미를 넣어 룰라를 놀래킨다. 거미를 정말 무서워했던 룰라는 여름내내 괴로워 한다. 애지중지 키운 들고양이를 문을 열어 도망하게 하거나, 아끼는 털코트를 못쓰게 한 것도 아다였다. 룰라는 복수심으로 그랬는지, 아다 쓴 소설원고를 불태워 버린다. 정말 심각한 건 올리베리오를 둘러싼 관계였다. 둘 다 사촌오빠인 올리베리오를 사랑한 것이다. (물론 아다가 룰라의 마음을 알았는지는 분명치 않기 때문에, 둘 사이 경쟁관계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은 아다(p.112이하), 빼어난 미모로 유혹하려는 룰라(p.239).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자매간 경쟁이라니.
이들의 삶을 붕괴시키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73년 9월 11일에 벌어진 군부쿠데타. 올리베리오는 군인순찰대에게 갑자기 끌려가고(p.121), 아다 역시 군인들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지낸다. (군인들은 '테러리스트 조직의 수장인 위험한 여자를 찾는다'며 아다를 잡으려 하는데, 왜 이들이 올리베리오와 아다를 잡으려 하는지는 에우세비오와 친척 실비아와 관련되어 있다.) 연이어 카실다 고모할머니가 죽고, 엄청난 부채가 드러나 제재소는 몰락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아다에게 <작은 아씨들>을 리메이크 하라고 권하는 장면(p.304)이 있다. 이를 주목하면 '마르셀라 세라노의 자전적 요소가 아다에게 크게 반영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 권한 사람은 '하이메'이다. 그와의 만남을 역으로 살펴보자. 사귀던 외교관을 떠나 어딘가 향하던 아다는 사고를 당한다. 겨우 올리베리오에게 연락을 취하고, 올리베리오는 의뢰인이었던(올리베리오는 변호사가 되었다.) 하이메를 보내 아다를 간호하게 한다. 정성껏 아다를 간호하는 하이메. 점점 이들은 가까워지고 함께 프랑스로 가기로 한다. 둘의 관계는 아주 친밀했지만 사랑까지는 아니었다. 하이메는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섹스나 감정적인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얼마 전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빌어먹을 여자를 사랑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p.272) 저건 아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사랑한 건 오직 올리베리오뿐이므로.
6장 '메그, 조, 에이미'는 늙은 판차의 장례식을 계기로 29년만에 푸에블로로 돌아오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셋째 루스는 이미 죽었다.) 즐겁게 과거를 회상하고, 변한 푸에블로의 모습에 놀라는 이들. 제재소의 새주인이 에우세비오란 사실에 격분하며(p.335) 방화를 모의하기도 하고, 강간사건의 진실을 듣고 놀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 제재소가 있던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은 제목의 상징성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은 삶의 진정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만이 감동할 수 있는 품격있는 작품이다. 당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깊이만큼 감동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은 내 인생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다. 언제가 다시 읽으면, 지금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