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은 <다다미 넉장반 세계여행>을 먼저 읽었고, 이 작품이 두 번째다. 국내에 막 소개되는 작가라 이름도 통일되지 않았지만(토미히코/도미히코), 두 작품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이 책을 이야기함에,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작, <다빈치>선정 '올해의 책' 1위 따위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읽다보면 그냥 알게 된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기발한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이하 A)와 <다다미 넉장반 세계여행>(이하 B)은 상호보완되는 작품이다. 시리즈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유사한 점도 대비되는 점도 많다. 첫째, A가 '여성화자'(여자후배) 중심이라면, B는 '남성화자'(아카시의 남자선배) 중심이다. 둘째, 연작이란 점은 유사하지만, A는 각 장의 내용이 시간흐름대로 이어지고(1장->2장->3장->4장), B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며 설정과 사건이 조금씩 뒤틀려 있다.(1장 /2장 /3장 /4장) 셋째, B에서도 저자는 개입하지만 A의 개입은 좀 더 직접적이다. 넷째, 치위생사 하누키와 정체불명의 히구치는 모두 등장하지만, 비중은 A (하누키 > 히구치), B (하누키 < 히구치)이다. 이 외에도 양자에는 수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세번째와 네번째를 자세히 보자. 저자는 시점이 여자후배에서 선배로 바뀔 때, 개입한다. '독자 제현, 잘 있었는가.'(p.68)식으로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는 도리미 도미히코 특유의 문체와 결합하며 독특한 매력의 한 요인이 된다. 하누키와 히구치는 매력적인 조연이지만, 비중이 그리 큰 건 아니다. A에서는 히구치, B에서는 하누키의 비중이 아쉬운데, 이 아쉬움은 각각 다른 작품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하누키의 경우, 치위생사란 게 일찍 밝혀져 동일인물임을 짐작 할 수 있지만, 히구치는 마지막에야 동일인 임을 확인할 수 있다. 히구치는 이 작품에서도 B의 주무대인 '시모가모 유스이 장'에서 살고 있던 것(p.359)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도도, 하누키와 여자후배의 만남 / 여자후배와 이백씨의 술마시기 대회. [심해어들]은 선배와 여자후배의 헌책방 탐방기 / 이백씨 주최 경매. [편리주의자 가라사대]는 빤스총반장의 '괴팍왕'공연 등 대학축제를 둘러싼 포복절도 사건이 중심이다. [나쁜 감기 사랑 감기]는 감기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 모든 장이 재미있지만, 3장은 특히 인상적이다. '괴팍왕'공연의 희곡이 이야기와 어울리며 진행되는 구성은, 유머감각 넘치는 천재가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부분이다.

'여자후배'는 천진난만하고 발랄하며 때론 엉뚱하기까지 하다. 보호해 주고 싶고 꼭 안아주고 싶은 사랑스런 그녀. A, B의 관계상, '혹시 여자후배가 B에 등장하는 아카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성격이 너무 다르다. 아카시는 아닌 것 같다. '여자후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을 보자. '월면보행'이란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그녀, 도도란 중년 사내가 말을 건다. 누가 봐도 변태 중년이 '들이대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순수하다.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하나?) 가슴을 만지는 도도를 보고도 '심성이 깨끗한 사람이니까 파렴치한 행동을 할 리 없다. 격려하려고 팔을 올린 게 방향이 어긋난 것이다'(p.28참조)라며 이해하려고 한다. 여장부 하누키가 때마침 등장하지 않았다면 도도의 추행은 계속 되었을 것.

또한, 그녀는 대학축제의 공기총 오락장 '너의 하트를 노려라!'에서 정중앙을 맞춰 대형 비단잉어인형을 받게 되는데, 들고 갈 방법이 없자 업고 가기로 한다^^ "그럼 끈 하나만 주시겠어요? 업고 가게요."(p.199) 하하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렇게 그녀는 대학축제내내 잉어인형을 업고 돌아다닌다. (이 점에서 표지그림은 아쉽다. 잉어인형이 너무 작다. 핸드백 정도가 아니라, 사람키에 맞먹는 크기인데 말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기발한 매력이 톡톡 튀는 책이다. 왜 일본의 독자,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격찬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타무라 가오루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작품을 앞에 두고 이것저것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공허해진다. 그냥 '읽어봐'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내 쪽에서 '어때? 어때?'하고 빙긋이 웃으며 물어보고 싶어진다." 맞는 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머지않아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런 작가의 시작을 함께하고 싶지 않은가?



* 제목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본문에서 두 번 나온다. 모두 이백 씨가 '여자후배'에게 건네는 말인데, 한번은 술 마시기 대결 도중(p.82), 다른 한번은 그녀가 병문안 왔을 때.(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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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9-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읽을일이 없을 것 같은 책인데, 이상하게 신간목록에서 보았을 때부터 자꾸 머릿속에 제목이 맴돈다지요...^^ 나도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슬프기도 하고..

쥬베이 2010-07-15 19:20   좋아요 0 | URL
헉! 시즈님이다!!!^^
문체가 기발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해요ㅋ 하여간 독특한 작품인데
상당히 재미있어요. 음...시즈님은 싫어하실지도 모르겠다ㅎㅎㅎ
천진난만한 여대생이 주인공이에요...톡톡 튀는 캐릭터라 시즈님도 좋아하실거 같은데.....아무튼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