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뢰한 일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2
호시 신이치 지음 / 지식여행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을 때, 뒤에 실린 후기나 해설을 먼저 읽는다. 후기나 해설이 없는 책은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 하다.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내용 그 자체로 충분하고 후기나 해설따위는 필요 없다'는. 호시 신이치는 바로 저런 입장이다. "생각해 보면 소설에 해설을 붙여서 읽는 것은 역시 부자연스럽다. 예전에 영화관 옆 자리에서 일일이 설명을 하는 친구 때문에 질린 적이 있다. 사회 문제나 국제 관계라면 인간 집단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해설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오락적인 것에 쓸데없는 것은 더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한번 생각해 볼 문제.
<의뢰한 일>엔 다양한 느낌의 작품이 고루 섞여 있다. 전체적인 특징을 개관하긴 어렵지만, 인상적인 작품 중 사회 비판의식을 담은 것이 많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밤의 대화](p.10)는 UFO를 타고 온 외계인과 대화를 나누는 남자 이야기인데, 외계인의 존재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더 이상의 언급은 스포일러이니 자제함)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사회 비판의식과 잇닿아 있다.
[외곽단체](p.40)의 메시지는 보다 직설적이다. 계속되는 사건사고로 여론이 악화되자 권력층은 꼼수를 생각해 낸다. '다크 아스피린'이란 정체불명의 집단에 모조리 뒤집어 씌우기로 한 것이다. '다크 아스피린은 무서운 존재로 자리 잡았으나,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효과'(p.50참조)가 있었다. 비판여론도 피하고, 긴장감도 불어 넣고 한마디로 손해볼 게 없는 장사다.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미국이 그토록 떠들던 '알 카에다'가 떠오른다. 현실에서도 우린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다.
[대우](p.64)는 통쾌한 풍자극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청년은 정부 고위인사를 저격하고 체포된다. 교정 당국은 그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다. 괴로워 하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이유로. 이상한 것은 범죄자인 청년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책도 커피도 TV시청도, 그리고 여자까지. 마치 고급호텔같은 교도소라니.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대단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후반부엔 미스터리한 느낌의 작품이 많다. [퇴원](p.174), [술집에서 만난 남자](p.189), [어떤 사업](p.198), [그저께](p.209)등. [퇴원]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쳤던 남자, 잠시 의식불명상태가 되었지만, 상태가 호전되어 곧 퇴원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미스터리한 상황이다. 시체같이 차가운 동료들의 손, 아내의 손, 그리고 충격적인 고백.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떤 사업] 비행기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사는 남자, 보상금이 어머어마했기에 이자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즐긴다. 취미였던 미술 감정을 하고, 사채업을 한다. 그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오는데.
<의뢰한 일>엔 다양한 느낌의 작품이 고루 실려 있기에, 호시 신이치를 처음 접하는 독자가 선택하기 알맞은 작품이다. 호시 신이치의 코멘트를 인용하면서 끝내겠다. "읽어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재미있다고 느꼈습니까?" "YES라는 답이 많으면 ,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