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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인사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4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플라시보 시리즈 4권 <우주의 인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범우주적 이야기, 유머코드'로 특징지울 수 있다.
먼저, 유머코드. 블랙유머는 호시 신이치 작품의 한 축이기에 유머코드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럼 왜 유머코드가 특징이 될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유머는 독특하기 때문이다. [원망(願望)](p.23)을 보자. 잠이 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양을 헤아리던 사내, 양무리에서 여우를 발견한다. 여우는 말한다. "당신은 이나리가 생긴 이래 딱 육십만 번째 참배자 랍니다. (중략)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뭐가 좋을지 한번 말해 보세요."(p.26.27)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은 사내, 과연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과연 소원은 이뤄 질 것인가?
놀랍게도, 이 작품은 90년대 인기를 끌던 '최불암 시리즈'의 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불암 시리즈'를 일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떠올리다니…신기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60년대에 나온 것이므로, 최불암 시리즈가 호시 신이치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듯 하다. ('최불암 시리즈' 자체가 기존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재가공한 것이지만)
[기대](p.160)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세계적인 희귀종이 된 백조를 사육하는 친구, 화자는 백조가 갖고 싶어 몰래 백조 알을 훔친다. 부화기 안에 있다 마침내 껍질을 깨고 부화되는 백조 알…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말을 말할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종합한다면 이런 일련의 유머코드는 '허무개그'와 유사한 느낌이다. 호시 신이치의 새로운 면을 접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특유의 블랙유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악당에 약점잡혀 결혼을 강요당한 신부의 이야기 [작지만 큰 사고](p.39)의 결말이 그 예)
다른 특징인 범우주적 이야기. <우주의 인사>는 그 제목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다. [우주의 인사](p.7), [변덕스런 별](p.58), [우주의 남자들](p.80), [반응](p.167), [타임박스](p.188)등등. 특히 앞 두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호시 신이치의 SF적 상상력은 역시 대단.
호시 신이치의 작품엔 등장인물 이름이 N씨, P박사, R씨등으로 나온다. 왜 그럴까 내심 궁금했는데, 도메키 쿄자부로의 해설에 이에대한 언급이 나온다. '왜 이름다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가 하면 현실에 있을 법한 이름을 사용하면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호시는 현실적으로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인물상을 일체 거부하고 작중 인물을 기호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인사>는 호시 신이치의 범우주적 상상력과 독특한 유머코드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피식 웃음 짓게 하는 몇몇 작품에선 그의 다른 면모를 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