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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
가엘 노앙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환상적인 바다의 심연, 그 위에 떠있는 을씨년스런 범선, 표지를 넘기면 당신은 만나게 될 것이다. 게렝델家 네형제를 괴롭히는 악몽과 악몽속에 숨겨진 충격적 사건, 그리고 가슴 아픈 진실을. <백년의 악몽>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소설이자, 네형제의 사투와 성장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수백년에 걸친 아픔과 애증의 대서사시이다. 가엘 노앙은 이 모든 것을 완벽한 문학적 장치와 복선속에서 형상화해 냈다. 이 작품을 읽고 충격과 슬픔에 가슴을 부여잡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게렝델家 네형제의 악몽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백년의 악몽>의 이야기흐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악몽에 시달리는 게렝델家 네형제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악몽속 등장인물이 살아가던 백여년전 이야기다. 양자의 시간적 간극은 악몽을 통해 무너지고, 악몽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믿을 수 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꿈의 냄새인 썩은 목재, 요오드, 시체 썩는 냄새가 현실에까지 풍겨오는 것) 의혹은 한가지에 집중된다. '도대체 왜 네형제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는 걸까? 악몽속 인물과 네형제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라는 것.
둘째 뤼네르(게렝델家 네형제는 첫째 브누아, 둘째 뤼네르, 셋째 기누, 넷째 상송이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악몽과 맞서기로 한다. 악몽속에서 듣게 된 '모르방'이란 이름을 단서로 조사를 시작한 것(p.90이하)이다. 뤼네르에게 도움을 주는 '조 산텐'(조제 산텐)신부, '에브네제르 고트로'(약칭 에브), 그리고 '아르델리아 루뒹'. 이들은 악몽과 형제사이 얽힌 비밀의 문으로 뤼네르를 인도해주는 선지자적인 역할이며, 결말에 가서는 왜 이들이 뤼네르에게 애정을 품고 돕게되는지 밝혀진다.
특히 아르델리아 루뒹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초반 밝혀지는 악몽의 모든 실마리는 그녀가 제공한 것이다. 모르방과 얽힌 이야기(p.111이하), 마리 루이스 호의 선장 '이봉 카르덱'에 대한 이야기(p.142이하)등. 아르델리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마치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과 유사하다. (아르델리아는 뤼네르에 알 수 없는 호감을 느낀다. 케익을 구워주고(p.86), 학업을 걱정하는등 아주 자애롭다. 이런 일련의 관계설정은 하나의 복선이다.)
악몽속 인물들의 정체는 조금씩 드러나고, 이들의 백여년전 모습도 구체화된다. 추악한 인간 이봉 카르덱, 아름다웠던 아르델리아, 그의 오빠 아벨. 마리 루이스호의 부선장이었던 뤼시앙 르노아크, 그의 아내 앨로이즈 르노아크. 에브가 뤼네르의 모습에서 '아벨 르 파우'란 인물을 떠올리면서(p.292이하), 충격적인 진실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 모두는 복잡한 혈연관계로 얽혀 있던 것이다. 드디어 밝혀지는 악몽과 게렝델家 네형제사이의 접점.(p.296) 그랬구나.
한편, 로즈 카르덱의 작은오빠 로낭 카르덱, 장남 로낭, 삼촌과 조카는 모두 창밖으로 몸을 던졌음이 밝혀지고(p.338), 이런 피의 저주는 어김없이 게렝델家의 셋째 기누를 덮친다. 기누의 운명은? 한편, 마리 루이스호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p.410이하)은 드디어 밝혀진다. 아, 아...저럴수가. 복잡하게 얽힌 혈연관계는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백년의 악몽>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관계를 그려나갔다. 복잡한 혈연관계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그 흥미진진함이란. (책 뒤편에 가계도가 실려 있다. 마지막에 저걸 발견하고 어찌나 놀랐던지. 하지만 절대로 먼저 보지 마시길. 읽으며 직접 그려본 다음, 나중에 정답 맞추듯 비교해 보시길 권한다.) <백년의 악몽>은 인생의 한 페이지에 기억될 만한, 환상적인 작품이다. 뻔한 스릴러에 질렸다면, 문학적 향취와 흥미진진함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주저 마시길.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가엘 노앙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자기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된다는 것에 아주 큰 기쁨과 영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 설램이 묻어있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가엘 노앙이 좋아졌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는 작가가 되었음하는 바램까지.
* 임호경 역자님의 번역은 정말 대단했다. 역자님의 자신감 넘치는 명쾌한 해설은, 작품이 품고있는 상징과 복선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