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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여, 안녕! ㅣ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이여, 안녕>은 <체인지링>을 시작으로 한 장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작가가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쓴 작품이라 역시 대단했다. 마음에 담아두었지만 미쳐 하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심하고(^^) 써내는데, 명작이 아니 나올 수 없지 않는가? 실로 오랜만에 거장의 향취를 느꼈다.
부상당한 고기토가 조금씩 회복단계에 이르고, 지카시와 마아등 가족은 고기토의 퇴원 이후 생활을 고민한다. 마아와 이메일을 주고 받던 건축가 츠바키 시게루는 일본으로 돌아와 고기토와 함께 지내기로 결심한다. 고기토는 시게루와의 추억을 되새김 하는데(p.24이하), 이들의 관계는 그리 절친한 것도, 유쾌했던 것도 아니었다. 특히 '네 엄마는 하녀야'라는 취지의 망발에 고기토는 벽돌로 그를 찍어 버리기까지 했었다.(p.29) 그럼 왜 고기토는 시게루를 거부하지 않은 것일까? 어머니의 죽음,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속에서 어머니와 했던 화해,(p.24참조) 노년의 넉넉함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고기토, 시게루의 '기타가루이자와의 집'(시게루의 젊은 시절 대표작)에서의 삶이 펼쳐진다. 시게루가 가르치던 블라디미르, 싱싱도 함께 하게 되는데, 같이 T.S앨리엇을 읽기도 하고, 미시다 유키오의 정치사상에 대해 토론(p.100이하,208이하)하기도 한다. 이처럼 <책이여, 안녕>엔 명작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T.S앨리엇의 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p.183이하), 스타니스와프 램(p.254)등. 명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한층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게, 바로 미시마 유키오와 할복사건이다. <책이여, 안녕>에는 놀랄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생활의 한 축인 블라디미르, 싱싱이 그의 사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다, 자위대 초기간부 하토리 다케시(p.203)가 등장하면서는 완전히 미시마 문제에 대해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다. 사실상 이후 시게루와 고기토가 벌이는 사건도 미시마의 행동과 일정정도 연관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미시마 유키오와 할복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보시길.)
블라디미르와 싱싱의 정체와 성격은 이야기속에서 급작스레 변한다. 시게루가 고기토에게 그들이 '커다란 계획'을 갖음을 말한 것이 계기인데, 아무튼 이들은 비밀유지를 위해 고기토를 철저히 감시하고, 다케 다케시 형제를 불러 오는등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 이들의 이런 급작스런 변화는 당혹스러웠다. 시게루와의 관계부터 재설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싱싱과 블라디미르에 대한 시게루의 말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p.218) 놀란 것은 고기토가 너무나 담담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감금과 감시가 이어지는 데도 고기토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한다. 이는 기타가루이자와 집 자체가 사회에서 고립된 무인도 같은 곳이라는 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게루는 다케, 다케시, 네이오등과 함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준비를 해나간다. 계획이란 '조그만 노인의 집'을 폭파하는 것. 고기토의 견해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묵시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읽어 보시길.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책이여, 안녕>은 한문장 한문장 음미하면서 아주 천천히 읽었다. 조금씩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 놀라운 경험,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한권의 책을 선물한다면, 바로 이 작품을 고르겠다. 달콤한 연애소설도,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도 아니지만, 오래오래 당신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선사할 소설이기 때문이다. 잔잔하게 울리는 거장의 향취를 느끼고 싶다면, 절대 이 책을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