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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골든 슬럼버>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중 최고다. 이제껏 선보였던 그의 재능은 이 작품에서 정점에 올랐다. '작가의 대표작'이란 바로 이런 작품에 붙여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예전 한 인터뷰(<다빈치>07년 4월)에서 이 작품을 ''다이하드'처럼 마냥 도망치고 싸우는 이야기'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렇게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의 흥미진진함, 바탕에 깔린 매스컴과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그야말로 대작이다.
먼저 구성을 살펴보자. <골든 슬럼버>는 1부 '사건의 시작', 2부 '사건의 시청자', 3부 '사건 20년 뒤', 4부 '사건', 5부 '사건 석 달 뒤', 이렇게 다섯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의 85%이상인 4부가 핵심임은 쉽게 알 수 있지만, 4부 앞뒤에 배치된 나머지도 절묘한 역할을 한다. 3부를 보라. '사건 20년 뒤'는 시간상으로 본다면 5부 뒤에 위치해야 맞다. 왜 저자는 3부를 중간에 위치시킨 것일까? 3부는 '가네다 총리 암살사건' 관련자들의 20년 후 모습과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점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사건에 숨겨진 의혹과 비밀에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한마디로, 3부의 중간배치는 4부의 도입부로, 호기심 증폭을 통한 시선집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였던 네명의 남녀가 있다. 아오야기, 히구치, 모리타, 가즈. '시내와 현내 패스트푸드 점을 돌아다니며 평가하고 신제품 확인'(p.91참조)을 하는 것이 고작인 동아리였지만, 이들의 우정은 끈끈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은 사회로 나간다. 가정을 갖고, 직업을 갖고, 즐거웠던 기억은 추억속에 남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던가, 충격적 사건의 소용돌이가 이들을 덮칠 줄을.
센다이를 방문하던 새 총리 가네다는 무선조정 헬리콥터를 사용한 폭탄에 의해 암살당한다. 총리암살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경악하고, 연쇄 살인범 일명 '기루오'를 체포하기 위해 도입한 전국민 감시시스템 '시큐리티 포드'(p.33참조)가 발동된다. 비상사태란 명목으로 공공연히 이뤄지는 사생활침해, 폭력행위. 과연 이는 옳을까? 한편, 용의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바로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하루. 아이돌스타 린카를 강도로부터 구해주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택배기사는 총리암살의 유력한 용의자로 급전직하 한다. 이어지는 수많은 증언과 보도-성추행하다 도망쳤다는 증언, 사건의 쓰인 무선조정 비행기를 구입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등등-는 그가 범인임을 단정지어 버린다. 과연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총리암살범인가?
모든 것이 거짓이요, 조작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권력의 손아귀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은 너무나 쉽게 총리암살범이 되었다. 저자는 작품 곳곳에 국가권력과 매스컴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한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아오야기의 사진을 의도적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언론(p.222), 증거를 조작하고 '증거는 나오게 돼 있다'고 떠드는 권력(p.257), 그 외(p.279, 307, 346)등등. 이런 비판의식은 작품전체를 관통하기에 하나의 소재쯤으로 치부할 수 없다.
"널 꾀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p.120)는 친구 모리타 고백과 '무조건 도망치라'는 당부, 아오야기는 도망친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작품의 핵심, 국가권력과 아오야기의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p.163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됨)이다. 후배 가즈와의 만남, 위기, 가즈에게 가해지는 폭력(p.252이하). 옛 동료 '록 이와사키'아저씨의 도움과 탈출시도(p.316이하). 아오야기를 돕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히구치(특히 자동차 배터리를 구입해 탈출을 돕는 장면 p.350). 연쇄살인범 혐의를 받는 일명 '기루오'(미우라)와의 만남, 짧은 우정(p.273, 364등등). 하수관 전문가 호도가와 아스시의 도움(p.415이하)등등. 다양한 인물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쯤에서 구성에 대해 한마디 더하겠다. 아오야기는 도망과정에서 히구치, 모리타, 가즈와 우정을 나누던 대학시절을 떠올린다. 회상형식으로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것이다. <골든 슬럼버>의 회상장면은 영화의 플래시벡처럼 극적이고 효과적이다. 가즈의 집을 찾아가면서 10년전을 회상하는 부분(p.183이하), 택시안에서 도도로키 연화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p.144이하), 히구치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p.341)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제목인 '골든 슬럼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비틀즈의 음악제목인 '골든 슬럼버' 이야기는 주로 아오야기가 대학시절을 회상할 때, 혹은 그와 관련된 정황에서 등장(p.131,249,435,453등)한다. 갈등하던 멤버들을 하나로 모아보겠다며 폴 매카트니가 만든 '골든 슬럼버'를 통해, 아오야기는 평범했던 그 시절, 친구들, 우정을 되세긴 것이다. 아오야기의 되내임, '그때로 돌아가야 해. 그때의 친구를 구해야 해'(p.249)란 간절한 소망이 바로 '골든 슬럼버'에 담긴 속뜻이다.
아무튼 죄여오는 추격에 맞서 아오야기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읽어 보시길. <골든 슬럼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한도 끝도 없다. 그 정도로 흥미진진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골든 슬럼버>, 이사카 코타로가 선보인 충격의 대작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사카 코타로는 잊어라. 이 작품을 읽고 다시 그를 보라.
* <골든 슬럼버>를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르포르타주 소설의 대표작인 <이유>의 장점을 <골든 슬럼버>는 받아들이고 있다.
* 아오야기의 아버지(아오야기 헤이이치)가 무례한 기자들에 맞서, 당당히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장면(p.448이하)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 <골든 슬럼버>는 두말할 거 없는 대작이지만, 옥의 티가 있다. 이는 꼭 집고 넘어 가야겠다. 그건 바로 '이노하라 고우메'란 인물(p.166)이다. 아오야기가 무선조정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이노하라, 고용안정센터에서 만난 이노하라 때문이었다. 사건 정황을 볼 때, 이노하라는 아오야기를 함정에 빠트린 거대권력의 하수인이다. 그러나, '이노하라 고우메를 신뢰할 수 있을까'(p.247)라는 아오야기의 독백이후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저자가 이야기 중반이후 '이노하라 고우메'란 인물의 존재자체를 잊어버렸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