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그림책 - 오늘의 눈으로 읽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최석조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 소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자는 그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풍속화 전문가 교수님의 그림해설서'쯤으로 생각했기에 이는 의외였다. 저자도 말한다. "전 '그림 까막눈'입니다. 교육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 한 과목을 수강한 게 그림에 관한 이력의 전부입니다. 여전히 미술은 제게 너무 낯선 세상입니다. (중략) 하지만 이게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그림 까막눈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무얼 어려워하고 무얼 재미있어하는지, 그게 보이기 때문입니다."(p.14) 맞다. 그림 전문가가 아니기에 일반인의 눈높이에 근접한 이야기가 쉬울 수 있다. 그림을 전공했는지 여부는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얼마나 그림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단원의 그림책>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 16편을 이야기한다. 꼭지 도입부에 이야기할 그림을 큼지막하게 수록하고, 이어 그림속 인물, 사물, 사건등을 집중 분석한다. 저자의 관심은 그림의 미술사적 의의내지 전문적인 기법이 아니라, 그림속에 녹아있는 조상들의 삶이다. 예를 들어, [새참](p.154)에선 큼지막한 밥사발에 주목한다. 왜 밥사발이 세숫대야만한 걸까? 저자는 프랑스인 선교사 앙투안 다블뤼의 글(p.158)까지 인용하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등을 언급하면서 조상들의 대식습관과 그 이유를 설명해 나간다. 설명을 듣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면 뭔가 다르다. 인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이야기내내 저자의 입심이 만발한다. 사실, 그림에 대한 해설은 지루해지기 쉽다. 강의와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림에 관심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지루하지 않다. 왜? 유머와 해학을 총 동원해 돌려치고 눙치는 저자의 입심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한 부분을 보자. [우물가](p.82)에 등장하는 저고리를 풀어헤친 남성을, "꼴에, 근육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옷은 죄다 풀어헤쳤다. 요즘도 셔츠 단추 한두 개는 몰라도 저렇게 훌쩍 벗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단추를 다 잠그면 '지성', 한 개 풀면 '개성', 두 개 풀면 '야성'……다 풀면? '실성'이라던데. 이 양반이 그 짝이다. 반쯤은 정신이 나갔나보다."(p.86)라고 이야기한다. 웃음이 절로 난다. 이러한 저자의 입심은 끝까지 계속된다.

둘째, '쉬어가기'란 항목의 흥미로움. 중간중간 '쉬어가기'란 항목이 있다. 중심 그림과 관련된 다른 그림을 살펴보기도 하고, 다른 주제나 화가 이야기도 풀어내는 말그대로 쉬어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놀랍게도 대단히 흥미롭다. 쉬어갈려고 쭈욱 훑어보다 놀라버렸다. 디저트인 '쉬어가기'가 이렇게 흥미로워도 되는거야?^^ 한 부분을 보자. '퓨전 아티스트 김홍도'(p.35)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자화상, 그의 얼굴을 찾아 나선다. 마치 역사추리를 보는듯 김홍도의 얼굴을 발견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흥미진진함 그 자체다. 단원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의 [자화상](p.38)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림은 단원의 모습이라기엔 뭔가 어색하다. (학자-오주석,유홍준-들 사이에서도 이 그림의 정체성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김홍도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한마디만 더하겠다.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하겠다.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것이다. 위에서 저자의 입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단했고 글을 따분하지 않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선 도를 넘어서고 있다. 오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것은 독자에 따라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문제이다. 나 자신도 이중적인 느낌을 받았으니.) 정말 큰 문제는 이런 과도함이, 독자가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할 여지를 줄여버리고, 글을 산만하게 한다는 것이다. 중용, 중용의 덕목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단원의 그림책>, 일반인 관점에서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해설한 흥미로운 책이다. 올컬러로 실린 수많은 그림, 통쾌하고 대중적인 해설, 책의 깊이를 더해준 '쉬어가기'까지, 일반인과 호흡하는 그림 해설서의 새장을 열었다. 삶이 묻어있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싶은가? 박물관도 전시회도 필요없다. <단원의 그림책>, 이 책이면 족하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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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5-2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원의 그림을 만나는 것이 무척 즐거우셨나봐요. 저자는 물론 단원도 쥬베이님에게 고마워할 듯 합니다.^^* 그리고, '단원의 그림책'이라... 책제목도 참 마음에 듭니다.

쥬베이 2008-05-24 07:47   좋아요 0 | URL
아, lazy devil님^^ 저도 '단원의 그림책'이란 제목이 정겨웠어요.
저자가 왜 단원의 그림책이라 이름붙였는지 도입부에 설명 되어 있어요
서평에 인용하려다 말았음ㅋㅋㅋ
단원의 풍속화, 좋더라고요^^

칼리 2008-05-2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단원의 그림책" 이 쥬베이님의 서평을 만나 또다시 훌륭한 그림책이 된듯한 느낌이예요. 저 역시 그림에는 도를 넘어서는 까막눈인데 서평을 보니 "나도 한번 ?" 하는 의욕이 샘솟네요^0^

쥬베이 2008-05-27 23:24   좋아요 0 | URL
그림책 재밌어요^^
저는 오주석작가님 '그림읽기의 즐거움'?인가 읽고 그림의 세계를 알게됐어요
최석조 작가님글도 괜찮으니 한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