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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마녀
마이굴 악셀손 지음, 박현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일개 독자주제에 주제넘은 짓을 하는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사월의 마녀>는 머지 않아 고전의 반열에 오를 명작'이라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 빼어난 작품성, 비교할 수 없는 흥미진진함을 겸비한 보기 드문 명작'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스웨덴 최고권위의 아우구스트 문학상 수상작이다. 내가 느낀 감동이 혼자만의 감동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긴다.
사실, <사월의 마녀>는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내용과 서술방식도 깊이있게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마이굴 악셀손을 믿고 차분히 집중하면 어느 순간 이야기속으로 빠져든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울림이 가슴을 친다. 새삼 깨달았다. 쉽게 읽히는 책보다, 조금씩 마음을 사로잡는 책의 은은한 매력이 훨신 인상적이란 걸.
<사월의 마녀>의 등장인물을 삼각구도로 정리해 보자. (초반 후베르트손, 크리스티나, 마르가레타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럽다. 먼저 인물의 관계양상부터 알아가는게 좋다.) 삼각구도의 한 축은, 피가 섞이지 않은 세자매 '크리스티나, 마르가레타, 비르지타'(A)이다. 이들은 부모의 부재내지 학대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엘렌에게 입양되어 양육된다. 다른 한 축은 바로 엘렌(B)이다. 그녀는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지만, 여러 사정때문에 곧 아이를 버린다. 세명이나 되는 아이를 입양한 것은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였을까? 마지막은 바로 엘렌에게 버려진 아이, 데시레(C)이다.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놀라운 능력을 가진 미스터리한 인물.
이후 삼각구도의 세 꼭지점(A, B, C) 사이 숨겨진 진실과 삶, 애증, 고뇌등이 이어진다. 놀라운 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서술이다. 기본적으로 중년이 된 이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지만, 매우 빠르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 때문에 독특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또한 입체적으로 등장인물을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작품의 품격을 한차원 높혀준 요인중 하나이다.
세자매 '크리스티나, 마르가레타, 비르지타'(A)에 대해 살펴보자. 부모에게 버려져 지하세탁실에서 발견된 아픔을 간직한 마르가레타는 물리학자가 된다. 마르가레타의 독특한 남자관계가 부각된다. 학창시절 나눴던 앙드레 선생과의 불륜에 가까운 사랑, 그리고 좌절. 크리스티나는 의사이다. 다른 두 자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부각되진 않는다. 비르지타는 가장 비참한 인물이다.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방탕한 삶을 살며 인생을 소비해 버렸다. 늙고 비루한 창녀, 이게 그녀의 현실이다.
마이굴 악셀손은 이야기를 균형있게 구성했는데, '펌프 쌍둥이'(p.149이하)는 크리스티나의 이야기. '벚나무 공주'(p.325이하)는 마르가레타의 이야기. 'Mean Woman Blues'(p.473이하)는 비르지타의 이야기이다. 이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미소'(p.283이하), '천칭거울'(p.443이하)은 데시레의 이야기이다. 이런 커다란 흐름속에서 조금씩 등장인물의 삶을 알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장애를 가지고 버려진 아이, 데시레(C)를 살펴볼 차례다. 주인공격인 데시레는 초반부엔 모호하며 의문투성이다. 그러다 '베난단티'(p.126. 베난단티에 대해선 각주를 참조하시길.)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서부터 데시레는 본격적으로 부각된다. 데시레는 출산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때문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수도 없다. 하지만 이는 신체적 장애일뿐, 정신은 멀쩡하다. 일반인보다 뛰어난 물리지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여자 스티븐 호킹'정도라면 이해가 빠르겠는가?) 더욱 놀라운 능력(p.129이하)을 데시레는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베난단티를 능가하는 초월적 능력, 공기중에 퍼져있는 산소처럼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유령처럼 다른 사람의 몸도 빌릴 수 있다.
데시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데시레를 담당하는 의사 후베르트손. 그는 데시레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고, 여러가지 배려를 한다. 생모 엘렌에 대한 이야기, 데시레의 출산도중의 사고, 버려지게 된 과정(p.139이하) 등도 그가 이야기해 준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의 이중성을 경멸하는 데시레지만, 점점 후베르트손에게 마음을 연다. 데시레와 후베르트손의 이런 미묘한 관계를 주목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하나의 관점이다. (마지막에 데시레와 후베르트손의 뜨거운 사랑도 그려진다. p.466이하. 비록 다른 여자의 몸을 빌어 이룬 사랑이었지만.)
데시레와 병실 동료들(마리아, 엘세게르드, 암네타) 이야기가 이어지는 부분(p.290이하)이 있다. 이 부분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뜻하지 않은 4명의 소녀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더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들은 복지국가란 이념하에 행해지는 국가적 폭력의 피해자로, 저자의 비판의식과 맞닿아 있다. 또다른 부분을 보자. 데시레를 버리고, 세명을 입양한 엘렌의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져보면 그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한 아이의 불행을 대가로 세 아이의 행운을 샀으니, 엘렌은 나라 전체가 이익만을 추구하던 시대에 살았다. 고통스럽고 불완전한 것은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복지국가의 초기단계, 나라 구석구석이 깨끗해야 했고, 온갖 오류와 기형적인 것은 공공기관에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었다."(p.139)
엘렌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데시레 입장에선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몹쓸 엄마지만, 무작정 비난만을 할 수 없지 않을까? 당시의 사회분위기, 열악한 의료수준, 엘렌을 무조건 비난하는 건 또다른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운하지 않은 이 기분은 뭘까? 엘렌을 향한 비르지타의 일갈을 들어보자. "이 집에서 당신은 언제나 성녀였어. (중략) 그야말로 당신은 훌륭한 엄마였어. 어쨌든 마르가레타나 크리스티나를 버린 못된 생모들과는 달랐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당신은 한순간도 그애들의 생모보다 더 나을 게 없었다는 걸 말이야!"(p.588) 맞다. 비르지타의 말도 틀린것은 아니다. 아이러니 아닌가? 자기 딸은 버려놓고, 다른 아이를 입양해 훌륭한 엄마라고 믿어지는 상황이.
나름대로 정리했지만, <사월의 마녀>가 품고 있는 주제의식과 깊이있는 이야기를 모두하는 건 무리인 듯하다. 이제 할 말은 '읽어 보시라는 것' 이것밖에…. <사월의 마녀>, 최고다.
* 처음 이 책을 보고 '아릅답다'란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원색표지, 홀로그램 처리된 다채로운 나비문양, 깔끔한 편집과 두툼한 장정. 책이란 걸 넘어 하나의 예술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책장에서 괜히 한번 꺼내보고는 흐믓하게 오래 오래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