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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설래고, 때론 두렵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를 기다리는 심정쯤이라고 할까? 표지와 저자소개를 보고 걱정을 털어냈다. 컬트적이고 유머가 담긴 표지, 그리고 엉뚱한 상상력의 작가 크리스토프 무어, 내가 기다리던 작가와 작품이었다. 남은 것은 두근거리는 설램뿐. … 역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기발한 착상, 광대한 상상력, 놀라운 재미를 발견했다. 더군다나 영미권 특유의 유머와 여유가 더해져 '크리스토프 무어'만의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더티잡>을 간단히 말하면, 아내를 잃고 딸아이와 평범한 삶을 살던 인물이 '죽음의 사자'가 되어 벌이는 감동, 웃음, 사랑의 이야기다. 일단, 기발한 설정에 시선이 가지만 저건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보게되는 감동적 이야기,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웃음, 찰스와 오드리ㆍ민티와 릴리의 사랑등 인간존재에 대한 따스한 시각이야말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근본주제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애셔 중고품점'을 운영하는 찰리 애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찰리는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진 다소 괴짜인물이다. 막 태어난 딸을 보며 손발가락이 21개 같다는 둥, 꼬리가 달린거 같다는 둥, 난리도 아니다. "회복실에서 아기 꼬리를 잘랐을 수도 있잖소.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아기의 꼬리를 잘랐다면 그걸 갖고 싶어. 소피가 나이를 먹으면 갖고 싶어할 테니까."(p.13) 찰리의 이런 성격은 <더티 잡>의 블랙유머같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 출산 후유증으로 아내 레이철이 사망한 것(p.18)이다. 찰리는 병실에서 본 박하색 옷을 입은 흑인남성을 의심하지만, 그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박하색 옷을 입은 이 남자…과연 누구일까? 이제 남은건, 어린 딸 소피와 자신뿐. 이상한 일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월리엄 크릭이란 인물이 사고로 죽고, 찰리는 자신의 책임이라 자책한다. 또한 정체불명의 그림자와 까마귀떼(p.86)가 그를 쫒는다. 꼬리를 무는 의문.
애셔 중고품점엔 개성 넘치는 종업원 릴리, 레이가 있다. 큼지막한 엉덩이에 창백한 얼굴을 한 16세소녀 릴리, 인터넷과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서른 아홉의 독신남 레이. 릴리는 찰리앞으로 온 '죽음의 백서'를 받는다.(p.46) 찰리가 죽음의 사자로 선택되었다는 걸 본인보다도 먼저 알게되는 것이다. 찰리는 의문의 빨강머리여성(p.96)을 만난 후에야 자신이 '죽음의 사자'가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찰리는 아내의 병실에서 만났던 흑인(민티 프레시)을 만나 '죽음의 사자'의 역할과 '죽음의 백서'관련 내용(p.163)이하을 듣는다. 죽음의 사자, 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지하에는 모리안자매와 네메인등 어둠의 세력이 음모를 꾸미고, 소피는 점점 자라면서 충격적인 능력(p.210이하)을 보여주는데…곧이어 등장하는 오드리와 다람쥐인간, 그리고 악어인간. 이야기는 점점 통제불가능한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죽음의 사자와 어둠의 세력, 이들의 운명은? <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의 상상력과 유머가 버무러진 통괘한 소설이다. 두툼한 분량이지만, 앞 3페이지만 읽어보시길. 순식간에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