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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난 저러고 있었다. '천사의 얼굴로 악마의 글을 쓰는 작가', 클레르 카스티용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분량을 3일동안 붙잡고 천천히 두번 읽었다. 한번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뭔가 허전했기에. (혹시 오해는 마시길. 단지 생각이 필요했을 뿐.)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23편의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단편집이다. 제목처럼 달콤한 이야기가 없는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저자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긋난 남녀관계, 가족관계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아들을 섹스파트너로 삼는 어머니, 갈등하는 연인들. 이야기초반 호기심을 자극하며 알듯 말듯 진행되던 이야기는 상식을 넘는 반전으로 놀라게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거미'(p.38)를 보자. 유부남과 불륜관계인 '나'가 '그'와 '그의 아내'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의 아내'와 '나'가 같은 생활권에서 꽤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뭘까? 뭐지? 이런 기묘한 관계는 충격적인 마지막 한문장으로 밝혀진다. '그의 아내'와 '나'는 모녀지간이었다. 즉, 아버지 어머니 딸 사이 불륜관계가 벌어진 것. (스포일러,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시길.) 이런 놀라운 반전은 소설집 곳곳에서 계속된다. '콩쿠르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p.77)엔 기묘한 커플이 등장한다. 조금씩 이들의 관계가 어긋하고 결말에 이르러는 가히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클레르 카스티용은 혼잣말하듯,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듯 내면을 드러낸다. 이때문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드는 단편도 있다. 수전노 남편에서 남기는 유서같은 '인색한 마음'(p.74)이 그것이다. 클레르 카스티용의 독백같은 촉촉한 문체은 서서히 마음에 스며든다. 아주 서서히. 한번 읽고 느낀 '허전함'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의 은유와 상징은 대단하고, 때론 모호하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히 싶어내기 쉽지 않다. 친밀한 부녀관계를 유지하는 소녀를 납치하는 '내 사랑'(p.113), 기괴한 가족관계를 다룬 '사회기본 구성단위로서의 가족'(p.101), 나이 차를 넘나는드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심장 뽑아내기'(p.128)등은 근저에 숨겨진 상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단편도, 사실은 아닐지도)
클레르 카스티용과의 첫 만남, 놀랍고 즐거웠다.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한 저자의 작품세계속으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느꼈다고나 할까. 충격적인 설정을 받아들이고, 클레르 카스티용만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순간, 불교의 '돈오'와 같은 또다른 충격을 느끼게 된다.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묘한 매력이 가득하다. 클레르 카스티용,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