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복권을 한 장씩 사서 자기는 꼭 당첨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게 '희망'이라는 무책임한 단어가 아닐까 하고.-116쪽
악보를 넘길 때 난 긍지를 느껴. 이렇게 좋은 음악을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이 뿌듯해. 물론 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화려하게 연주 여행을 하며 음악을 들려주는 것보다는 못하지. 그렇지만 난 산골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2학년 때에야 처음으로 건반을 만져 보았어. 그것도 읍내 교회에서. 그런 내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무리잖아? 물론 윤이상 같은 이의 일생을 늘 생각하곤 해. 분명한 건 난 그 사람만큼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야. 열정도 부족한지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죽어야 하나?-122쪽
사람은 사람에게 우연히 영혼을 받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만남의 연줄이 이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한순간 서로의 날개가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걸치고 있는 조건들이, 의식이, 현실적인 계산이 늘 그것을 가로막았다. 이런저런 얼개를 빼버리면 결국 서로 기대고 비빌 수밖에 없는데도. 극한 상황을 벗어나자마자 본능처럼 불신의 옷을 도로 입는 것이다.-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