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1문자 살인사건>은 출간된 지 20년 가까이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다. 읽기 전에 약간 걱정했다. 고리타분하지는 않을까, 괜히 실망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다행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몇몇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인 추리의 흐름이 괜찮고 반전도 기대 이상이다.

아쉬웠던 부분 먼저 이야기하겠다. 첫째, '유미'가 화자에게 사건 해결의 키가 되는 말을 하는 부분(p.244이하). 어린아이가 저런 구체적인 진술(문이 몇 번 열렸고, 그때 주변에 누가 있었고, 냄새는 어떤 냄새가 났고 등등)을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고, 왜 유미가 화자에게 말을 해주는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둘 사이에 어떤 유대관계가 있기에 저런단 말인가? (유미와 화자사이 유대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설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위기에서 유미를 구해준다' 같은) 둘째, 연쇄살인의 원인, 숨겨진 비밀 등을 '요트사건'에 집중시켜 놓지만, 막상 밝혀지는 요트사건은 시시하다. 전모도 뻔할 뿐더러 충격적이지도 않다. 셋째, 제목인 '11문자 살인사건'도 와닿는 제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11문자 살인인지 알고는 실소가….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화자와 함께 사건해결에 적극 나서는 편집자 '후유코'의 역할이 왜 이리 미미하지? 좀 비중 있게 서술했으면 좋을텐데…'라고. 하지만 이는 의도적이었다. 결말을 위한 저자의 베일 씌우기. 어쩐지 뭔가 감춘 듯 미스터리하게 보이더니.

화자는 여성추리 작가다. 편집자인 '하기오 후유코'의 소개로 '가와즈 마사유키'라는 미남 프리랜서 작가를 알게 되고, '연인'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가 된다.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 된 자리에서 마사유키는 말한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그리고, 저 말은 현실이 된다. 마사유키는 살해당했다. 화자는 마사유키가 남긴 스케쥴표, 자료 등을 토대로 사건을 파헤치고 사건의 실마리가 작년 여름 발생한 '요트사건'에 있음을 알아챈다. 과연 요트사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요트사건의 대략적인 개요 p.84참조)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여성의 내면은 언제나 미스터리'라고. 어찌보면 성차별적인 말이지만, 남성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 여성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남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등장하는 여성들의 헌신적인-이라고 해도 될까?-사랑을 보라. (특히 등장인물 XXX의)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미스터리야 미스터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접했다. 깊이는 최근작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새롭다고나 할까, 느낌은 도리어 좋았다. 특히 여성이 화자인 작품은 처음인데, 이것도 특기할 만하다. (<백야행> <환야>도 여성이 화자라는데, 아직 읽지 못했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한번 읽어 보시길.



* 살인 후 도착하는 편지가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11문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11문자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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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1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미스테리한 나머지 남자들은 여성의 내면이 짐작이 잘 가지 않나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들은 얼마 읽지 않았지만, 여성심리를 정말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네요..;;
그나저나 ->옆에 배송예정인 책들을 보니 핑거스미스가 있네요!꺅!!>ㅅ<
너무 두껍고 거대한 분량이라 쥬베이님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작년 최고의책이었습니다.^ㅅ^乃즐거운 독서되시길~

쥬베이 2008-01-10 09:00   좋아요 0 | URL
ㅋㅋ맞아요 전혀 짐작가지 않습니다^^
핑거스미스, 시즈님 서재에서 보고 샀어요
꿈꾸는 책들의 도시,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은 평이 좋길래 그냥ㅋㅋㅋ
아무튼 핑거스미스, 정말 기대되네요~ 시즈님 최고의 책이었다니...

2008-01-27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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