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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관의 살인 3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음
구시렁 구시렁대며 <암흑관의 살인>을 다 읽었다. 1권을 읽고 과연 2,3권을 읽어야 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읽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야 말로 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의 원류임을 알았기에. 하지만,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누군가 이 작품에 대해 묻는다면, '지루한 작품'이라고 답해 주겠다. 200자 원고지 6000매라는 어마어마한 분량만큼이나 단점이 너무 많다. '지루함, 설정(트릭)의 억지스러움, 시점변화의 어색함-을 포함한 잦은 시점변화'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단점이다.
3권은 우라노 겐지가 츄야에게, 우라도家 및 자신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겐지의 진술을 통해 2권에서 츄야가 정리했던 의문 상당수가 해소된다. 의혹이 해소되고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할 수밖에 이 부분이 안타깝게도 늘어진다. 겐지의 이야기는 장황하고, 많은 것을 숨기고 (사실 겐지도 아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인물트릭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있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겐요ㆍ다쿠조 죽음의 비밀, 암흑관에 발생한 대형화재, 달리아의 정체 및 '달리아의 밤'때 먹었던 '살'의 정체(p.103이하), 미도리ㆍ미오 샴쌍둥이 자매의 비밀(p.309이하), 에나미의 정체(p.422이하)등이 차례로 밝혀진다. 겐요, 달리아 부부의 충격적인 행각에 경악해 버렸다. 부부가' 다른 영역'(?)에서 어찌나 경악할 짓거리를 했던지…대단하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인물트릭'이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을 연상시키는 인물트릭이 두 차례 사용된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겐지 / 다다노리)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분명 인상적이었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인물트릭은 이 작품의 핵이다. 내용구성의 뼈대인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문제점이 대두된다. 나중에 언급) 또한 사실상 주인공인 '츄야'의 정체(p.552) 역시 인상적이다. 처음 이 작품이 '관 시리즈의 원류'라고 언급한 것은 바로 츄야의 정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말하고 싶어 근질대지만, 하지 않겠다.)
<암흑관의 살인>을 읽으면 아쉬웠던 점을 살펴보겠다. 첫째, 시점변화의 어색함 및 잦은 시점변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 본다. 일단, 아야츠지 유키토가 어떻게 시점을 변화시키는지 보자. '시점은 일단 겐지를 떠나 같은 날 밤의 다른 장소로 날아간다. (중략) 시점은 이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제3자의 시점으로 공간을 떠다니며 그곳의 광경을 바라본다.'(p.37) 저자는 '시점'이 자유의지를 가진 것으로 전제하고, 변사처럼 이야기한다. 이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저런 시도도 할 수 있겠지. 저자는 200자 원고지 6000매 분량을 하나의 시점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변화의 어려움을 저런 식으로 얼버무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잦은 시점변화와 맞물려 이야기 흐름을 뚝뚝 끊어버린다. 이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없게 하고 지루하게 만든 원흉이다.
시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있다. 물론 시점 자체를 하나의 트릭으로 볼 수도 있다. 인물트릭과 맞물려 가와미나미의 꿈 혹은 미스터리한 플래시벡은 곧 '시점'인 것이다. 즉, 생명력을 가진 변화무쌍 시점은 가와미나미의 꿈 혹은 미스터리한 플래쉬벡 속에서 가와미나미 시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시점변화의 어색함'은 실험적 설정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호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잦은 시점변화 때문에 뚝뚝 끊어진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점 변화는 빈도는 2권<3권<1권 순인데, 이는 몰입도와 정확히 반비례한다.)
둘째, 이야기의 장황함 및 등장인물의 소비. <암흑관의 살인>을 차라리 한권 분량으로 임팩트하게 서술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특히 1권), 대화는 장황하다. 굳이 등장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인물도 여럿 등장해 흐름을 산만하게 한다. '이치로'. 이치로는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버렸다. 초반 이치로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이런 생각을 품게 한다. '혹시 이치로는 겐지, 에나미, 츄야의 어린시절과 관련 있지 않을까? 즉, 이들이 상실한 기억의 일부가 바로 이치로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치로는 생뚱맞게 그냥 이웃이다. 이치로는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우연하게 이치로가 목격한 것, 이치로와 신타의 우정, 스토리의 소비일 뿐이다. 특히 결말 즈음에 언급되는 이치로와 신타의 우정은 전혀 공감할 수 없다. 감정이입 자체가 안 된다. '이사오'나 '세이쥰'의 역할이 미미한 것도 아쉽다. 용의점을 부여해 좀 더 미스터리를 강화했다면 하는 아쉬움. 아예 빼 버리던가.
셋째, 인물트릭을 포함한 스토리전개의 억지스러움. 저자는 인물트릭을 위해 설정의 공교로움을 감내한다. '이 정도는 봐줄만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돌이켜 생각하면, 우연성, 억지스러움이 너무 심하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트릭을 보자. 우라노家 사람들이 에나미로 부르는 암흑관에서 부상당한 정체불명의 청년, 가와미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가장 큰 이유는 달리아의 시계, 즉 T.E라고 적혀 있는 시계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둘 다 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름 역시 공교롭게도 江南로 같다. 참, 공교로움의 연속이다. 거기다, 부상당하는 상황과 장소역시 같다. 에나미=가와미나미 공식에서 자유로웠을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뭐, '달리아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넷째, 설정의 비윤리성. 소설의 설정을 두고 '윤리'니 뭐니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암흑관의 살인>의 설정은 도가 지나치다.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여 임신시킨다. 딸은 그 아이를 출산하고, 아버지는 또다시 딸이 출산한 아이마저 강간한다.' 말하기도 역겹다. 또 '어머니를 살해하고, 살은 염장鹽藏 보관하고 뼈는 가루를 내, 온 일가식구들이 해마다 먹는다.'는 것은 더 대단하다.
다섯째, 세부설정에서 아쉬웠던 부분. 미도리ㆍ미오 샴쌍둥이 자매의 비밀을 고려할 때,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츄야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을까?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 텐데. 또한 달리아가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는 동안, 경찰등 사법기관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암흑관에 대한 소문까지 나돌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더욱. 또한 달리아의 살을 먹으면 영생한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부활한 겐요등과 연관 지어서 말이다.
* 책 표지나 오노 후유미가 작성한 도판은 인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