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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꿈을 주다>의 최대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다. 흥미롭고, 문장 하나하나 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느새 이야기속에 몰입해 버려 편하게 읽을 수 밖에 없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이후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와타야 리사, <꿈을 주다>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꿈을 주다>는 아역배우로 국민적 인기를 끌게 된 유코의 성공과 몰락을 그리고 있다. '몰락의 원인'에서 국내 인기 여배우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주목할 것은, 유코의 모습에서 와타야 리사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유코 = 와타야 리사'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인기스타가 되어버린 유코, 고등학교 2학년때 문예상을 받고, 아쿠타가와 상도 최연소 수상한 와타야 리사, 그들의 고뇌는 무엇일까? 너무 높이 올라가 버렸기에 자칫 잘못하다간 떨어져 버리리란 두려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숨이 막힌다. 와타야 리사는 이야기 곳곳에 유코가 느끼는 불안을 드러낸다. '타들어가는 불안, 마음의 깊은 안쪽에 자리 잡은 불안이 늘 생활 여기저기에 질척거리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p.178)
유코의 부모 토마(토마는 프랑스 혼혈이다.), 미키코의 사랑과 갈등, 우여곡절 끝 결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키코의 놀라운 계략(^^p.20)과 어쩔 수 없는 토마의 선택은 이후 벌어진 갈등관계를 암시한다. 그러던 중 유코가 태어난다. '유코는 마치 무지개에서 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처럼, 거의 비현실적일 만큼 예쁘고 완벽한 아기였다. 투명하게 흰 살결에 목이며 다리며 두 개의 팔이 모두 소시지처럼 톡 터질 듯 통통하고, 큼직한 눈에 동그스름한 얼굴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미 미소를 기억해서 침에 젖은 앙증맞은 입 사이로 늘 핑크빛 혀가 내보였다.'(p.25) 유코의 천성적 사랑스러움(p.21참조)은 두사람을 바꾸어 놓았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이다.
유코가 본격적으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는 것은 '스타치즈 CF'다. 스타치즈측은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독특한 CM을 기획한다. 소녀를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기용해 그 아이가 스타치즈를 먹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한다는 것.(p.38참조) 유코는 스타치즈를 통해 서서히 인지도를 넓혀간다. 마치 TTL소녀처럼 신비스럽게…. 유코를 국민적 인기스타로 발돋음하게 해준건 뜻밖의 사건이다. 같이 활동하던 걸스클럽 멤버 아케미가 레이서도전기 촬영중 사고사한 것. 유코는 슬픔에 빠져 장례식에 참석한다. 수수한 교복차림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에게서 시청자들은 눈물을 쥐어짰다.(p.192참조) 이제 유코는 1년 스케줄이 쫙 잡혀있는 최고 스타로 거듭난다.
토마와 미키코의 갈등은 이야기의 작은 축이다. 토마는 자신이 '일생의 친구'라 부르는 프랑스 여인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미키코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의 갈등속에서 유코는 힘겨워 한다. 이런 갈등이 어떤 의미인가는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하지만, 난 일단 이 정도로 그치겠다.
또하나 생각해 볼 것은, 유코의 연예활동에 적극 개입하는 미키코의 행동이다. 이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이기적인 발로로 봐야 할까, 아니면 딸을 걱정하는 애정의 과잉으로 봐야 할까? 남편과 사실상 헤어지고 유코만을 바라보는 미키코로서는 모든 걸 유코에게 바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미키코와 유코의 관계, 단순히 모녀관계라고 말하기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꿈을 주다'라는 제목을 생각해 보자. 유코는 인터뷰에서 '어른이 되면 텔레비전을 보는 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여배우가 되고 싶어요'(p.179)라고 답한다. 습관적으로 내놓은 뻔한 답변. 그녀는 생각한다. '꿈을 준다'란 건 뭔가 이상하다고. "'준다'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이상한 거야. 쌀은 안 되는데 꿈이라는 건 당당하게 '준다'라는 식의 오만한 말투가 허락되다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이런 때의 '꿈'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많이 떠들어왔지만."(p.180) 유코는 엄청난 경험을 한 뒤에야 '꿈을 준다'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낀다. ''꿈을 준다'는 것의 꿈은 언제까지고 '타인의 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주는 쪽에서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p.379)라고.
* 유코를 몰락시킨 충격적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연관된 어설픈 사랑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직접 읽어 보시길.
* 도서관에서 읽은 다음, 소장가치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 뒤쪽에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고가 실려 있다. 중앙books, 다시는 저런거 실지 말길 바란다. 도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사고 싶지만, 사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쇄를 바꿀때 저거 빼는지 안 빼는지 살펴보고, 사라졌으면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