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있을지도

아비코 다케마루의 작품은 <미륵의 손바닥>에 이어 두번째다. 여러모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교차 서술되는 구성(형사/교사, 마사코/미노루/히구치)이나 충격적 반전, 속도감 있는 전개등등. 또한 형사내지 경찰인(혹은 이었던)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 프리랜서 기자가 사건 해결에 참여한다는 점, 역시 사소하지만 유사하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미노루의 체포과정과 범행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범인이 누군지를 미리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주관심사는, '누가 범인인가'가 아닌 '다른 어떤 것'임을 알 수 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마사코, 미노루, 히구치' 세명의 시점이 교차서술 된다. '마사코' 최근 발생한 잔혹한 엽기 살인이 아들의 짓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아들을 관찰하고, 혼자 가슴을 졸이는 모습. '미노루' 연쇄 살인범이다. 어떻게 범행을 자행하는지, 범행 이야기가 이어진다. '히구치' 전직 경부. 두번째 피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수사관서와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결국 사건을 파헤친다.

<살육에 이르는 병>의 묘미는 단연 서술트릭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마사코의 아들, 미노루가 연쇄살인행각을 벌이고 있고, 마사코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눈치채고 걱정하고 있다. 히구치가 이들과 나란히 서술되는 것은 두번째 피해자와의 관계 때문이다.'라고. 저자가 던진 미끼를 꽉 물어버린 해석. 이야기는 물 흐르듯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미노루의 엽기적인 행각도 계속된다. 그러다 마지막 마사코의 한마디로 이 책은 도발한다.

'뭐지, 뭐야? 저 반전이 성립하려면 앞 서술 일부가 모순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특히 p.216이하 '방에서 살인행각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 자위하다 갑자기 들어온 어머니를 밀쳐내는 장면' p.325이하 '호텔로 간 미노루와 누군가의 다툼'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을 고려해 꼼꼼히 다시 읽으니 완벽하게 들어 맞는다. '이게 이 작가의 능력이구나' 감탄했다.

p.216이하의 어머니는 마사코가 아니었다. 대단한 서술트릭. 또한 p.325이하 갑자기 등장하는 '그 녀석'이 바로 마사코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대학에서 수업중에도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p.15)란 표현이 나오는데, '수업중'이란 말의 중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미륵의 손바닥>때부터 느낀 것인데, 아비코 다케마루는 참 '예쁜' 추리소설을 쓴다. 탄탄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특히 충격적인 결말은 인상적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 좋은 작품이다. 추천한다.


* 미노루의 엽기행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가족삼각형,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에로스/타나토스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거의 왠만한 개론서 수준. 특히 미노루가 어머니에게 사랑을 느끼자 아버지가 미노루를 구타하는 장면은 완전히 '프로이트 가족삼각형'을 풀어놓은 것이며, 어린시절 목격한 부모의 성교장면이 미노루 변태적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것도 쉽게 이해 가능하다.(p.215~228, p.326 참조)

* 한가지 의문이 있다. 미노루는 자기를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는데, 그가 과연 대학원생으로 보이기나 했을까? 그의 나이(p.339)를 고려해 보면 말이다. (이건 완전 강력 스포일러군) 아무리 미남형에 대학XX라고 해도 말이다.

 

-----------------------------------------------------------

* 내용추가. (2012.2.26)

p.216이하, p.325이하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자세하게 하고자 합니다. 완벽한 스포일러입니다.


 

'가모우'가家의 구성원은 미노루, 마사코(미노루의 처), 미노루의 어머니(A), 미노루와 마사코의 아들(B), 딸(C,아이), 이렇게 6인이다. 서술트릭의 핵심은 미노루를 마사코의 아들로 착각하게 하는데 있다. 즉, 모자관계인줄 알았던 미노루와 마사코가 실은 부부였다는 게 핵심.

1) p.216이하 '방에서 살인행각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 자위하다 갑자기 들어온 어머니를 밀쳐내는 장면' /// 독자는 여기서의 '어머니'를 마사코로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사코가 아니라 A이다. 작가는 A의 이름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어머니'라고 함으로써 독자를 교란한다. 작가는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마사코라고 한 적이 없다.

2) p.325이하 '호텔로 간 미노루와 누군가의 다툼' /// 미노루는 가오루를 꾀어 호텔로 가고, 이어 '그 녀석'이라는 인물이 등장(p.324)한다. '그 녀석'은 미노루에게 "당신은 병이야, 병. 그 사람을 놔줘요"(p.324)라고 하며 제지하지만, 미노루는 '설득에 귀 기울이는 척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와'(p.325) 기습적으로 '그 녀석'을 살해한다. 이후 경찰관계자들은 살해당한 '그 녀석'을 연쇄살인범으로 오인하게 되는데, 여기서 독자의 혼란은 정점에 달한다. 그럼 '그 녀석'은 누구인가?  

'그 녀석'은 바로 미노루의 아들 B다. 딸인 C는 '아이'라는 이름이 제시되지만, 작가는 역시 독자를 교란시키기 위해 B의 이름을 제시하지 않는다. B는 미노루의 행각을 간파하고 호텔로 들이닥쳤다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 2007-10-3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도 스포일러 제대로...)
재밌지요~특히 인간관계 트릭이 인상적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한명이 존재해서 그걸로 반전이 샤삭~서술형 트릭은 언제나 치사하면서도 속아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헤헤

쥬베이 2007-10-30 21:28   좋아요 0 | URL
아 시즈님^^ 전 처음에 '이거 뭐야? 쳇' 했는데,
다시 앞으로 가서 하나씩 읽어보니 정말 치밀하게 서술이 돼 있어
놀라버렸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