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허진호 시나리오, 김해영 지음 / 노블마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걱정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일반 소설과는 다른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영상을 염두에 둔 글이라 그런지 빠르게 읽혔다. 장면마다 영화화 될 장면을 떠올렸고, 황정민과 임수정이 어떻게 연기해 낼지 상상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초반부 당혹스러웠다. 간경변이란 병마에 지친 인물의 파괴적 자의식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아무런 사건도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을 끊고 사라지기 위해, 모든 대상을 냉소하는 주인공(한영수)의 모습뿐이다. 그는 연인이었던 수연, 자기 가게를 차지한 친구 동준을 떠난다. 그들은 힘들어하는 영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수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찿은 어머니 앞에서 되내는 그의 독백. '어머니, 나 잃어버렸어. 열심히 노력하면 찿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보물찿기하던 것처럼 그런 열정적인 마음으로, 친구들 다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보물 한번 찿아볼까?  그런데 어머니, 내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어.'(p.31) 그렇다. 쌓아올린 자기 가게와 여자친구...그 모든걸 그는 잃어버렸다. 갈피를 잡지못하는 파괴된 자아.

분위기가 전환된다. 지금까지 상실감에 휩싸인 사내의 자의식이 그려졌다면, 이젠 희망의 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희망의 집'이란 요양원으로 가는데, 그곳은 요양원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무기력함과는 전혀 다른, 이름 그대로 희망이 넘치는 곳이다. 하이파이브 하자는 원장과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만나게 된 운명적 여인.

아이다운 순수함과 병약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듯'(p.40)한 여인. 계속 마주치는 여인(은희)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영수. 이들의 묘한 관계는 은희를 업고 숲을 산책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발전된다. 은희는 영수에게 업어달라하고, 이들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찿아 어둠 속을 걸어가는 오누이처럼 숲속을 거닌다.(p.76) 이들은 점점 서로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긴다. (수연과 계속해서 은희를 대조하는 영수, 그런점 때문에 그녀에게 반한 것일까?) 희망의 집에서 싹틔운 사랑.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사라지질 않는다.

<행복>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2장, 희망의 집에서 그녀와 나는...'은 영수의 시점에서, '3장, 세 잎 클로버를 꿈꾸는 너는...'은 은희의 시점에서, '4장, 네 잎 클로버, 나의 당신은...'은 수연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리고 마지막 5장은 다시 영수의 시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다양한 시점에서 등장인물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구성은 긍정적이다. 이를 영화상으로 어떻게 구현할 지 궁금하다.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갑작스런 수연의 방문으로 서서히 증폭된다. 요양원으로 찿아온 수연과 동준은 통해 영수는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바깥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갖는다. 이곳에 존재하는 은희와 저곳에 존재하는 수연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결국 영수는 선택한다. 그에게 '희망의 집'은 어차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었다. 불쌍한 은희...그에게 희망의 집은 어떤 의미인가? 은희는 어떤 존재인가? 과연 그는 돌아간 일상에서, 수연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찿았을까?

전반적인 스토리가 진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상으로 묘사될 장면 하나하나의 영상미,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큰 기대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담없이 영수와 은희,수연의 관계속을 파고 들 수 있었다. 이 점 하나만으로 <행복>은 가치를 가진다. 영화를 보기전에 한번 읽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영화를 보고 읽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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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 시나리오에 김해영 소설..
영화로 나올 거라니 기대되네요. 임수정이 과연 황정민과 잘 어울릴지도..

쥬베이 2007-09-18 22:12   좋아요 0 | URL
정말 임수정, 황정민이 잘 어울릴지 궁금합니다^^
스토리가 좀 진부하긴 한데...연기여하에 따라 괜찮을거 같기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