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보노 스토리
킴 워시번 지음, 강명식 옮김, 임진모 해설 / IVP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With or Without you'가 연주되던 순간이었다. 묵직한 중저음의 베이스라인 인트로가 깔리는 순간 돔구장에 운집한 2만여 명의 관중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무대의 대형 스크린은 황량한 모하비 사막에 듬성듬성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비추고 있었다. 기괴하게 뻗은 가지의 끝마다 뾰족한 가시를 품고 있는 조슈아 트리 (Joshua Tree)였다. 천태만상의 뒤틀림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척박한 환경과 외로움을 이겨낸 결과인 것일까? 화면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조슈아 트리를 집중 조명했다.

 


"당신 눈 안에 있는 돌이 보여요. 당신에게 박혀있는 가시가 보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See the stone set in your eyes. See the thorn twist in your side. I wait for you.)

 


데뷔 후 39년 만에 처음으로 내한을 한 이 전설적인 밴드의 음악에는 아직도 대중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황폐하고 쓸쓸한 사막 위로 수많은 LED 조명들이 별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스탠딩 관객 속에 섞여 백허그를 하고 있었고, 곡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키스를 나눴다. 나는 보노와 단둘이 무대 위에 누워 그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던 2001년 보스턴 투어의 한 여성 관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튜브에서 수없이 돌려봤던 장면이었다. 관중들의 떼창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당신은 마침내 당신이 되었군요. 당신은... 당신은..."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2.

고객사 미팅을 막 마친 후 이미 늦어 버린 식사를 대충 때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근처 대형 쇼핑몰로 발걸음을 옮겼다. 벚꽃잎들이 흩날리면서 도시 전체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고, 연인들은 봄날의 한때를 만끽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번의 계절과 몇 번의 연애를 거치는 동안 완연한 봄을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쇼핑몰에 막 들어섰을 때 눈에서 뻑뻑하고 까끌까끌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최근 미세먼지가 극성이더니 안구건조증이 다시 심해지나? 핸드백에서 안약을 꺼내 눈에 넣었다. 잠시 나아지나 싶더니 이물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피로감 속에서 주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율주행 몰 투어링 로봇이었다. 최근 쇼핑몰은 컨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여 쇼핑, 뷰티,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등 온·오프라인 여가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었고, 자율주행 몰 투어링 로봇은 급속도로 증가하는 몰링족 (Malling)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투어링 로봇은 어느새 내게 다가와 조심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심신이 지친 상황에서 귀찮고 성가신 기분이 들었지만, 이를 반전시킨 건 로봇이 검은 화면에 띄운 흰색 글씨의 한 문장을 발견했을 때였다.

 


"혹시 U2 좋아하세요..."

 


내가 U2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고객의 방문 및 구매 이력, 소지품,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 응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투어링 로봇의 기능을 생각해봤을 때, U2를 좋아하는 성향을 분석해낸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U2 내한공연의 티켓구매 이력을 조회해봤을 수도 있고, 현재 내 소지품을 보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내 손에 있는 빨간색 아이폰은 U2의 리더 보노의 제안으로 판매수익금 일부를 에이즈 퇴치 연구를 위해 기부하는 프로덕트 레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로봇이 선택한 문장이 '?'가 아닌 '...'으로 마쳤다는 것이었다.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에서 나는 상대에 대한 조심스러운 배려와 예의를 느꼈다. 어쩌면 내 표정과 행동에서 과잉 마케팅은 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최근의 딥러닝 기술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담긴 미묘한 설렘과 망설임을 고객 서비스에 적용할 정도로 발전한 것일까? 내가 최근의 인간관계에서 이 정도의 배려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진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로봇의 다음 말이었다.

 


"당신 눈 안에 있는 돌이 보여요. 아마도 결막결석인 것 같아요. 제가 잠깐만 더 봐도 될까요?"

 


로봇은 나를 쇼핑몰 중앙 소파로 안내하고, 바리스타가 되어 내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제공했다. 한동안 내장 카메라로 내 눈을 관찰하던 로봇은 헬스케어 기능을 활용하여 간단한 시술을 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 내리쬐는 레이저는 로봇이 건넨 커피 한 잔 만큼이나 따뜻하고 편안했다. 때마침 쇼핑몰 안에는 U2'With or Without you'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 내 가슴이 두근거렸던 이유는 둥둥거리는 베이스 기타 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몇 년 전 공연의 추억이 되살아났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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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1 00: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u2좋아 합니다 🖐 돔 구장 라이브도 갔었는뎅 ㅎㅎㅎ 잭와일드님 12월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차시길 바랍니다.^^

잭와일드 2021-12-01 06:35   좋아요 4 | URL
고척돔에서 한 내한공연 말씀이시죠? 그때 저랑 같은 공간에 계셨겠네요. ㅎㅎ 의미 있는 연말 보내시길 빕니다 ㅎㅎ

새파랑 2021-12-01 07: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U2~! 공연은 못가봤지만 Vertigo 까지 들었어요 ㅋ
... 세개 붙이는건 놀랍네요~!!
조슈아 트리 앨범은 진짜 예술인거 같아요 ^^

잭와일드 2021-12-01 07:46   좋아요 4 | URL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패러디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12-01 09: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투는 <래틀 앤 험>까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후에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은
밴드지요.

잭와일드 2021-12-01 10:48   좋아요 1 | URL
U2 만의 매력이 있는 듯 합니다.
 
태백산맥 세트 - 전10권 - 조정래 대하소설, 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2017 11 8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대통령 트럼프의 연설이 있었다. 연설의  내용은 한반

도에 공존하고 있는  개의 한국에 대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역사의 실험실에서 한반도를 가르는 

 그어졌고, 오늘날  선은 평화와 전쟁, 품위와 악행, 법과 폭정, 희망과 절망 사이를 가르는 

준이 되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연설을 들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으로 단일국가 수립을 이루어낼  없었던 뼈아픈 역사 때문이었고, 냉전의  축이었던 미국의 대통

령이 결과론과 이분법만으로 현실을 평가하는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연설에는 분단이라는 과거 

리고 현실의 결과만 있을  한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민족 분단의 아픔,  질곡의 세월의 전개과정

 대한 이해와 고려는 없었다.




한반도 내에서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하나의 민족,  개의 한국,  민족적 비극의 기원은 무엇일

? 오늘날 북한이  악의  (axis of evil), 악당국가 (rouge state) 불리게 되었고, 남한은

반공주의 속에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부독재를 겪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

전쟁 발발 전후의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민족적 비극의 근원인

동시에 올바른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통일 민주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달성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소설 태백산맥이 해방부터 정전까지 한국전쟁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 고통스러

 시대의 기억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사건이라고 해도 

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전의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모두 전쟁의 배경이 되었고,

전쟁 이후에는 남북한의 이념적 군사적 대결이 빚어낸 전쟁과 분단의 쓰라린 기억이 민족의 의식 

바닥 깊숙이 망령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국토 분단과 민족의 분열을 겪은 한국인들의 

픔을 상징하는 사건이며 동시에 정전이 된지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극복되지 못한  냉전의 

지막 산물로,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태백산맥은 반세기 전의 과거에 일어난,

이미 확정되어버린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을 다루고 있다고 

 있다.




태백산맥은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깎아내는 그믐달이 갈대밭을 아득하게 비추는 가을밤을 배경으로

시작하여 별들이 스치듯 흐르는 어둠 속으로 하대치 일행이 사라지는 가을밤에 끝을 맺는다. 태백산

맥은 밤의 이야기, 어둠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밝아오는 새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수많은

죽음과 희생, 좌절과 패배가 담겨 있고, 그들이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은 역사의 과제로, 민족의 숙원

으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빨치산 투쟁은 이제 현실투쟁에서 역사투쟁으로 전환

된다고  염상진의 말처럼 태백산맥의 인물들은 실패했지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제시함으로써 현대의 독자들을 애써 덮어두었던 지나간 시대의 진실과

마주하게 하고, 고조되는 삶의 위기를 피부로 체감할  있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독자들은 

비극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태백산맥의 열린 결말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 시대의 어둠을 넘어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단편적 사건들의 단순 합이 아니라 시대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들의 총체인 동시에 이들이 빚어낸 유기적 결합물이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이 영웅서사

 아닌 민중서사인 이유이다. 민중이란 특정 계급이나 계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를 

루며 역사를 구성하는 유동적인 계급, 계층의 연합을 의미한다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다양

 계층의 인간과 그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과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망하고 있다. 소설  인물들의 개별적 행동에 근거한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적 의미가 아닌 

 상황성의 구현에 기여하고 있는 이유는 객관적 자료를 기반으로  작가의 고증에 있다. 작가 

정래는 평범한 민중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개인적 존재인 ''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우리'

 되어가는 과정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구현해낸 시대적 공간과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의 교차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인 벌교는 당시 오만의 읍민들  9할이 농민이었고,  농민들 중에서 8할이 소작인이

었다. (1 p. 332) 벌교뿐만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국은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고,

 농가의 86% 소작농이었을 정도로 농업은 핵심적 경제기반이었다. 갑오농민혁명, 일제하의 소작

쟁의에 이어 토지제도의 모순이 소설의 주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중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은 지식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체험을 통해  문제 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시대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인적 동기는 사회갈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집단적 이념으로 확장되

었다. 문서방의  맺힌 외침은 이를  표현하고 있다.




"가난허고 무식헌 것덜이 믿고 의지헐 디웁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처웁애고  전답 

나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들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1 p. 161)




태백산맥은 이념의 대립을 민중의 삶과 의식의 변혁 과정과 연결하여 표현하였고, 이를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힘의 존재기반은 민중에게 있으며, 이는 분열과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태백산맥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추상적인 이념논쟁으로 소설을 끌고 가지는 않는다. 이는 사람’, 그리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시각만으로 재단할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여기서 벗어나야만이 "사람",  "

" 실재를 확인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많은 소작농들은 비로소 반공주의 

주적이 아닌 이웃으로, 동료로, 깨어있는 민중으로 인식될  있다. 소설 속에서 손승호의 전향 사유

 이데올로기에는 '인간부재의 현실'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념이라는 것은 새로운 구속일 ,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하나도 해결한 것이 없소. 왜냐하면 그것

 모순투성이고 부정확한 존재들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오. 인간이 인간을 장담하는 

처럼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은 없소. 나는 다만 인간이고 싶을 뿐이오.” (2, p. 180)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인간이 희생되어서는  된다는 작가의 신념은 민족주의자 김범우의 존재와

주의를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주의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김범우의 염상진에 대한 비판

에서도 확인할  있다.




역사적 욕구 앞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이 없소.  욕구를 효과적으로 해결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고, 빛을 내게 되어 있소.” (6 p. 301)



이데올로기란 현실  욕망들이 투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이데올로

기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현실의 사회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실현을 억압하였고 개인을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이념에 종속시켰다. 현실  자유주의는

원칙과 기준을 잃고 표류하였다. 그것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한 성장이었고 이는 결국 자유의 부재로

이어졌다. 민중이 현실을 바라보는 기준은 좌우이념 보다는 상식과 정의에 있었다. 그들의 투쟁은 

실에서 살아  쉬는 가치를 지키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봉건적인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들의 몸부림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정 속에서 다시  

왜곡되었다.




현재 세계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중심으로 분리와 해체의 물결이 너울치고 있다.

 물결은 영국의 EU탈퇴, 스페인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이라크로부터 쿠르드족의 독립을 이끌어내

었고, 북핵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민족사적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규명하고, 그것을 극복

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소설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의 비극,  균열의 기원을 탐구하고 

족과 민중 속에 내재된 힘에서  극복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는 이념 안에 갇혀있는 역사적 

순의 극복 없이는 갈등은 해결될  없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서 좌로  우로 절룩거리는 우리의 

현대사를 재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밤과 , 깊어가는 어둠과 어둠 사이에서 하대치는 가슴 속으로 투쟁의 의지를 다지며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하대치가 바라본 것은  이상 광막한 어둠이 아닌 가을밤을 빛내는

무수한 별이었고, 수많은 동지들의 불꽃과 함성이었으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희망이었다. 2016

10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2017 4월까지 이어졌고, 오히려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세계 31

개국 71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공익정치 재단 '프리드리

 에버트 재단'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우리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 ''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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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꿈꾼 나라 - 실록으로 읽는 세종의 위업
이석제 지음 / 인간과자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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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과 글인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먼저 한글은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들 중에서 창제자와 창제년도가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문자이며, 다른 나라의 문자를 빌려 쓰지 않고, 제자(制字) 원리의 독창성을 보유한 문자라는 점이다. 또한, 발음 기관의 모양을 상형하여 기본자를 만들고, 획을 더해 소리 세기를 나타냄으로서 글자 모양에 소리의 자질을 반영하여 과학적으로 구성된 문자라는 것도 한글의 우수성을 잘 대변해주는 특징이다. 음소 문자이지만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를 함으로서 의미를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 정보 처리의 효율이 높다는 점과 몇 개의 기본 글자로 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갖춘 문자라는 것도 한글의 또 다른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적은 수의 문자를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다는 점이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으로 인해 유네스코(UNESCO)는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세종이 꿈꾼 나라>는 저자 이석제가 한글창제 등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업적들을 남기기 위해 세종이 보냈을 셀 수 없이 많은 불면의 밤들, 수많은 생각과 고뇌들을 <세종실록>이라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료를 통해 돌아보고 정리한 책이다. 오늘날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기능적인 글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한글 창제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공동연구에서 탕생한 것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세종이 꿈꾼 나라>는 한글의 우수성을 조명하기보다는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 한글이 어떠한 배경과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실 한글의 진정한 위대함은 문자적 우수성 보다는 그 탄생 배경에 있는지도 모른다.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음을 가엾게 생각하는 ’애민정신‘,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주정신‘, 이로 인해 독창적으로 새로운 문자를 만든 ’창조정신‘과 누구나 글자를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 ’실용정신‘이야말로 진정한 한글의 위대함을 나타내 주는 것 아닐까? 이러한 세종의 애민정신은 노비들에게 100일간의 출산 휴가를 부여하고, 출산 1개월 전 복무를 면제시켜준 사례와 (세종실록 50권, 12년), 사역인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 노비에게도 육아 휴가를 부여한 일화 (세종실록 64권, 16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를 만난 적은 없소.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그를 하루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안중근 의사가 거사 후 체포되어 심문 중에 한 외국인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누구이고 왜 안중근은 한명의 이방인을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며, 최상의 예를 갖추어 존경을 표했을까? 안중근이 지칭한 사람은 평생을 한국을 위해 헌신한 호모 헐버트 (Homer B. Hulbert) 박사이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 ‘육영공원’의 교사가 되어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조선 말글을 공부했으나, 한글을 접하자마자 그는 한글에 매료되었고, 배운지 4일 만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허버트 박사는 단순히 우수성을 전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그의 일생을 걸고 투쟁했다. 맹목적으로 한자만을 고집하던 사대부들의 보수성에 맞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며 한글 전용을 주장했고, 1889년 조선 말글의 우수성에 대해 <뉴욕 트리뷴>지에 기고하며 한글의 자모를 세계 언론에 최초로 소개했고, 1891년에는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했다. 일부 한국인들마저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삶을 택한 엄혹한 시기에 한국에 아무런 의무가 없는 한 이방인에 불과했던 헐버트 박사는 어떻게 자신과 가족의 삶까지 희생하며 이렇게까지 한글을 알리고 한민족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을까? <세종이 꿈꾼 나라>를 읽으며 헐버트 박사의 헌신 이유는 어쩌면 한글 창제 배경에 대한 깊은 감복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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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1-30 13: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버트 박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잊어서는 안될 고마운 분이 맞을듯요. 독립신문에서 한글이 최초로 띄어쓰기를 시도하는데 그것도 헐버트 박사의 공이었대요.

잭와일드 2021-11-30 14:12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아리랑을 서양식 음계로 처음 채보한 것도 허버트 박사였죠.

mini74 2021-11-30 1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버트 박사님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요. 한국에 묻히고 싶다하셨던 분. 잘 읽었습니다 *^^*

잭와일드 2021-11-30 19:20   좋아요 2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scott 2021-12-09 16: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일드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감동의 리뷰 였습니다 👍

잭와일드 2021-12-09 22:30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mini74 2021-12-09 16: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 축하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2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2-09 20: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리뷰에 당선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쎄인트saint 2021-12-09 17: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2-09 18: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4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09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되신거 축하드려요 ^^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3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2-09 21: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1   좋아요 4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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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의 제목 <직지(直指)>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의미한다. 소설을 접하기 전부터 <직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민족적 가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확한 명칭과 의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학창시절 의무교육을 통해 <직지><직지심경>이라는 불교의 경전으로 오인될 수 있는 이름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이는 '백운화상이 편찬한 마음의 실체(근본)를 가리키는 선사들의 중요한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직지>는 백운화상이라는 고려시대 고승이 역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정리한 '요절(要節)'로서 부처의 말씀을 아난존자가 옮겨 적은 걸 의미하는 '불경(佛經)'이 아니다. (직지 151)



앞의 것이 이미 사라지는가 하더니 뒤의 것이 다시 생기고...

앞과 뒤가 이어져 진리에 닿을지니. (직지 191

 


소설을 접하기 전에는 고려시대 불경의 보전을 위해 청주의 작은 사찰에서 탄생한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이라는 것이 <직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직지>의 정확한 명칭과 의미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나아가 <직지>가 담고 있는 가치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앞과 뒤가 이어져 진리에 닿는다.<직지>의 문구처럼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새롭게 깨달은 진리의 파편들을 완전한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벗어나 끊임없이 진리를 향하여 다가설 것을 독려하는 <직지>의 위대한 통찰,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실에의 접근을 시도하는 소설 <직지>와도 그 맥을 같이 하는 듯 했다.

 



2권으로 구성된 소설 <직지>는 창으로 심장을 관통 당한 채 귀가 잘리고 목에 흡혈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참혹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1권은 기자인 '기연'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잔혹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직지>와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렇게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진실은 <직지>의 미스터리로 연결된다. 2권에서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탄생한 조선의 여인 '은수'<직지>와 구텐베르크의 연결고리가 되어 조선과 유럽을 무대로 펼치는 활약을 다룬다.

 



저자는 '최고의 목판본 다라니경에서부터 최고의 금속활자 직지, 최고의 언어 한글,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로 이어지는 흐름을 언급하며 지식의 전파와 보급의 측면에서 인류의 지식정보혁명에 기여해온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직지 17)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지식과 정보를 전파하고 공유하려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알파벳과 문장부호 등을 포함해서 약 60자 정도만 주조하면 되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에 비해 <직지>는 수많은 한자를 주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금속활자 인쇄의 장점은 수많은 활자를 미리 주조해두고, 필요한 것만 가져다 조판하여 빠르게 인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직지>는 한자가 갖는 언어적 특징 때문에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탄생하기 이전에 세종대왕은 한글을 반포했다. 한글은 만든 목적이 분명하고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세계 유일의 언어이다. 글을 모르고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의 향상, 문화의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애민정신과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탄생한 한글은 오늘날 우리가 학문적,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소설 속에서 과거의 '은수'와 현재의 '기연'<직지>의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된다. 그들이 닿고자 했던 진리, 애써 전하고자 했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은수는 목에 걸린 은십자가 목걸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목걸이에 새겨진 글귀를 되뇌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Tempus fugit Amor Manet)',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 (직지 2157

 



인간이란 무엇일까? 욕망을 품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고 그 욕망을 어떻게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이었다. 이는 진리는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이 아닌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idea)에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이나 사사로운 욕심에서 발생하는 마음인 '인심(人心)'과 인의예지라는 본성에서 기인하는 '도심(道心)'과 관련한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론 논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인간에게는 행복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야. 인간은 때때로 행복보다 불행을

택하기도 해. 그게 더 의미가 있다면... (직지 289)



소설에서 과거에서 또 현재에서 진리를 추구했던 두 여인이 깨달았던 것은 부처의 지혜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져 온 우주가 연꽃같은 장엄함으로 가득찬 세계가 된다는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 아닐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작은 싹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무거운 흙의 무게를 이겨낸 후 땅 위로 몸을 내미는 순간의 장엄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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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조지 오웰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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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 동물농장 -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다. 평등하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한 상태를 더욱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평등하다는 것 자체가 등급이나 수준 차이 등의 높낮이가 존재하지 않는 동등한 상태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미 평등한 상태에 도달한 대상을 어느 쪽이 더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평등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과 민주사회 구현을 목표로 했던 혁명가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특정집단에게만 특권을 부여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반민주적 행태를 보인 것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지켜봐왔다. 조지 오웰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의 계명을 통해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외치며 실제로는 특정 집단에게 권력과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특권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조지오웰은 1945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하면서 "동물농장, 한 편의 동화 (Aniaml farm : A fairy story)"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제에서도 나타나듯 동물농장은 정치적 알레고리 (Allegory)이자 동물우화이다. 동물농장은 사건의 배경과 이를 묘사하는 언어가 축어적이고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는 비유적이고 이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일차적으로 동물세계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오웰이 표현한 동물농장의 이면의 의미는 볼셰비키 혁명과 소비에트연방의 수립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이다. 유산자와 무산자간 계급차별이 사라진 자리에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라는 또 다른 계급이 생겨나 평등과 자유 실현이라는 이념은 한낱 구호에 그치게 된 동물농장 속 동물들의 삶은 혁명 전 제정 러시아 시대나 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 시대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민중들의 삶이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오웰은 작가의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들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출발점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스탈린과 소비에트 전체주의 체제를 겪은 오웰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 이는 이 시대에 살면서 전체주의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해 글을 쓰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라는 오웰의 발언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동물농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단지 러시아의 근현대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웰은 특정시대만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근원으로 반복되는 사회구조와 역사에 주목하였고, 이는 소설 동물농장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풍자 대상은 당시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독재체제에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물농장은 반세기 이전의 과거에 일어난, 이미 확정되어버린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을 다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알베르 까뮈는 모든 혁명가는 압제자 (oppressor)나 이단자 (heretic)로 끝난다고 말한다. 혁명가의 말로는 혁명의 동기가 된 순수한 이념과 열정을 망각한 채 헤게모니를 쥐고 지배하거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이단으로 단죄 받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나폴레온은 부패한 압제자가 되었고, 스노볼은 변절자로 몰려 농장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모든 혁명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동물농장의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오웰은 혁명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권력층의 배반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대중의 무기력함 또한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혁명의 이념이 지배층의 권력욕으로 변질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대중들의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체주의와 독재는 지배층만의 산물은 아니며, 오히려 권력에의 무비판적 순응이 역사의 진화를 가로막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가 들자 도살업자에 팔려가 죽임을 당한 말 복서는 비판의식 없는 어리석은 충성심의 상징이다. 한나 아렌트의 주장처럼 악은 대중들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사유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고, 대중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체제에의 동조로 작용한다.

 


또한 오웰은 악성 프로파간다와 날조된 사실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대중을 분열시키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나치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를 연상시키는 스퀼러는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를 상징한다. 대중을 선동의 대상으로 여긴 괴벨스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을 잘 믿고 이는 곧 '진실'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러시아어 프라우다는 역설적이게도 '진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스퀼러의 존재는 과거는 객관적 진실의 영역이 아니고, 기록의 조작과 기억의 통제를 통해 왜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물평등을 규정한 불가침의 7계명에 대한 기록을 날조하고, 이에 대한 기억마저 왜곡시켜 결국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라는 단 하나의 계명만이 남는 과정 속에는 항상 스퀼러가 있었다. 대중의 기억을 말살하고 조작하기 위해서 스퀼러는 과거를 지우거나 왜곡하고, 각종 궤변과 공포를 이용한 선전·선동전술을 사용하였다. 오웰의 풍자는 의제설정을 통한 여론통제와 사실 왜곡을 일삼는 언론, 거짓이 사실을 압도하는 가짜뉴스 (fake news)와 탈진실 (Post-truth)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오웰은 구성원들이 건전한 비판의식을 가진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식인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대중에게 객관적 사실이 충분히 제공되는 것만으로도 편견과 오판을 줄이고 독재체제의 등장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보편적 기만과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고 사실을 수집하는 것 자체가 혁명적 행동'이라고 표현하였다. 결국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짓 선동과 사실의 말살이며,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와 거짓을 정화하고 진실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개인의 자유도 지켜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동물들의 힘으로 건설한 동물농장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장원농장 (The manor farm)으로 회귀하고 동물들은 다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나폴레온을 비롯한 돼지들은 이웃 농장주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카드놀이를 하며 술을 마신다. 그 광경을 지켜본 농장의 동물들은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분 조차할 수 없었다. 자본과 권력을 대변하는 이들 지배층들은 영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지배계층은 결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을 호위하는 ""들이 아니라 의심의 순간에 대중들을 침묵시키며 그들의 지배를 단단하게 유지시키는 우둔한 ""들이며, 비판의식 없이 지배당하는 ""들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완벽할 수 없고, '사람' 그리고 ''은 이념만으로 결코 재단할 수 없다. 항상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과감히 저항하는 용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부패한 권력의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그날 저녁, 농장의 동물들이 밤하늘 속에서 절망적인 어둠이 아닌 빛나는 무수한 별들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희망을 보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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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28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제자나 이단자가 되지 않은 혁명가는 죽임을 당한 혁명가뿐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잭와일드 2021-11-28 23:06   좋아요 1 | URL
네 같은 의미로 알베르 까뮈도 모든 혁명가는 압제자 (oppressor)나 이단자 (heretic)로 끝난다고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