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조지 오웰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 동물농장 -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다. 평등하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한 상태를 더욱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평등하다는 것 자체가 등급이나 수준 차이 등의 높낮이가 존재하지 않는 동등한 상태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미 평등한 상태에 도달한 대상을 어느 쪽이 더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평등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과 민주사회 구현을 목표로 했던 혁명가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특정집단에게만 특권을 부여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반민주적 행태를 보인 것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지켜봐왔다. 조지 오웰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의 계명을 통해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외치며 실제로는 특정 집단에게 권력과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특권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조지오웰은 1945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하면서 "동물농장, 한 편의 동화 (Aniaml farm : A fairy story)"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제에서도 나타나듯 동물농장은 정치적 알레고리 (Allegory)이자 동물우화이다. 동물농장은 사건의 배경과 이를 묘사하는 언어가 축어적이고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는 비유적이고 이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일차적으로 동물세계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오웰이 표현한 동물농장의 이면의 의미는 볼셰비키 혁명과 소비에트연방의 수립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이다. 유산자와 무산자간 계급차별이 사라진 자리에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라는 또 다른 계급이 생겨나 평등과 자유 실현이라는 이념은 한낱 구호에 그치게 된 동물농장 속 동물들의 삶은 혁명 전 제정 러시아 시대나 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 시대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민중들의 삶이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오웰은 작가의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들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출발점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스탈린과 소비에트 전체주의 체제를 겪은 오웰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 이는 이 시대에 살면서 전체주의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해 글을 쓰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라는 오웰의 발언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동물농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단지 러시아의 근현대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웰은 특정시대만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근원으로 반복되는 사회구조와 역사에 주목하였고, 이는 소설 동물농장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풍자 대상은 당시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독재체제에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물농장은 반세기 이전의 과거에 일어난, 이미 확정되어버린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을 다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알베르 까뮈는 모든 혁명가는 압제자 (oppressor)나 이단자 (heretic)로 끝난다고 말한다. 혁명가의 말로는 혁명의 동기가 된 순수한 이념과 열정을 망각한 채 헤게모니를 쥐고 지배하거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이단으로 단죄 받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나폴레온은 부패한 압제자가 되었고, 스노볼은 변절자로 몰려 농장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모든 혁명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동물농장의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오웰은 혁명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권력층의 배반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대중의 무기력함 또한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혁명의 이념이 지배층의 권력욕으로 변질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대중들의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체주의와 독재는 지배층만의 산물은 아니며, 오히려 권력에의 무비판적 순응이 역사의 진화를 가로막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가 들자 도살업자에 팔려가 죽임을 당한 말 복서는 비판의식 없는 어리석은 충성심의 상징이다. 한나 아렌트의 주장처럼 악은 대중들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사유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고, 대중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체제에의 동조로 작용한다.

 


또한 오웰은 악성 프로파간다와 날조된 사실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대중을 분열시키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나치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를 연상시키는 스퀼러는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프라우다를 상징한다. 대중을 선동의 대상으로 여긴 괴벨스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을 잘 믿고 이는 곧 '진실'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러시아어 프라우다는 역설적이게도 '진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스퀼러의 존재는 과거는 객관적 진실의 영역이 아니고, 기록의 조작과 기억의 통제를 통해 왜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물평등을 규정한 불가침의 7계명에 대한 기록을 날조하고, 이에 대한 기억마저 왜곡시켜 결국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 보다 더욱 평등하다."라는 단 하나의 계명만이 남는 과정 속에는 항상 스퀼러가 있었다. 대중의 기억을 말살하고 조작하기 위해서 스퀼러는 과거를 지우거나 왜곡하고, 각종 궤변과 공포를 이용한 선전·선동전술을 사용하였다. 오웰의 풍자는 의제설정을 통한 여론통제와 사실 왜곡을 일삼는 언론, 거짓이 사실을 압도하는 가짜뉴스 (fake news)와 탈진실 (Post-truth)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오웰은 구성원들이 건전한 비판의식을 가진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식인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대중에게 객관적 사실이 충분히 제공되는 것만으로도 편견과 오판을 줄이고 독재체제의 등장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보편적 기만과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고 사실을 수집하는 것 자체가 혁명적 행동'이라고 표현하였다. 결국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짓 선동과 사실의 말살이며,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와 거짓을 정화하고 진실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개인의 자유도 지켜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동물들의 힘으로 건설한 동물농장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장원농장 (The manor farm)으로 회귀하고 동물들은 다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나폴레온을 비롯한 돼지들은 이웃 농장주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카드놀이를 하며 술을 마신다. 그 광경을 지켜본 농장의 동물들은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분 조차할 수 없었다. 자본과 권력을 대변하는 이들 지배층들은 영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지배계층은 결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을 호위하는 ""들이 아니라 의심의 순간에 대중들을 침묵시키며 그들의 지배를 단단하게 유지시키는 우둔한 ""들이며, 비판의식 없이 지배당하는 ""들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완벽할 수 없고, '사람' 그리고 ''은 이념만으로 결코 재단할 수 없다. 항상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과감히 저항하는 용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부패한 권력의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그날 저녁, 농장의 동물들이 밤하늘 속에서 절망적인 어둠이 아닌 빛나는 무수한 별들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희망을 보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11-28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제자나 이단자가 되지 않은 혁명가는 죽임을 당한 혁명가뿐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잭와일드 2021-11-28 23:06   좋아요 1 | URL
네 같은 의미로 알베르 까뮈도 모든 혁명가는 압제자 (oppressor)나 이단자 (heretic)로 끝난다고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