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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남자답게 딸은 여자답게 키우는 반쪽짜리 육아는 버려라
수잔 길버트 지음, 양은모 옮김 / 명진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아이는 세살박이 남자아이다. 기차와 자동차를 열광적으로 좋아하지만 동시에 부엌에 있는 냄비와 숫가락들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우리 아이를 성 역할에 충실하게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남자아이니까 남자답게 길러야지 하는) 그런 것에 대해 걱정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여자아이가 있는 다른 집에 놀러가거나 대형 할인마트에 갔을 때 그곳에 냄비와 가스렌지 등이 있는 소꿉놀이 세트가 있으면 우리 아들은 몇 십분이고 그것에 몰두한다. 친구집에 갔을 때는 그것을 갖고 놀고 싶다고 조르고, 마트에 가선 이제 그만 가자고 억지로 일으켜 세울 때까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나는 그것을 얘기하면서 몇 번이고 아이 아빠에게 사주자고 말했지만 아이 아빠는 남자아이를 여자처럼 기르려 한다면서 끝내 사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가 냄비를 갖고 놀지 않는가. 진짜 냄비만 수난을 겪을 뿐이다.
성 차별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심하다고 말들 하지만, 난 결혼 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었다. 여섯 형제였던 친정 집에서도 남녀의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했고 (유일하게 실감한 것이라면 귀가시간 정도일까) 월간지 기자생활로 떠돌았던 사회생활에서도 내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보다는 실력과 능력이었다. 어쩌면 분명히 차별이 있었는데도 내가 그것을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성 역할과 성 유형화에 대해 절실히 실감하게 된 것은 결혼한 뒤였다. 나는 놀랐고 당황했다. 결혼한 지 4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내색은 않지만 마음 속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일들이 많다. 집안 일들, 엄마와 아내로서 책임지워지는 일들, 그리고 고루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주변의 많은 아이엄마들이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젊은 학생들의 앞뒤 안 가리는 무조건 평등주의도 탐탁치 않지만, 성숙한 자의식이 자라고 있어야 할 아이엄마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바깥을 보기 전에 우리 아이부터 제대로 키우고 볼 일이다.
예전에 언젠가는 이 반대의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영락없이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아이였다. 옷을 여자아이처럼 입혔고 머리카락도 길렀고 노는 모습도, 말하는 모습도 유약하고 여렸다. 성 유형화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반대의 성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자연스런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자연스런 것이고, 그 자연스러움을 아이에게 익히게 하는 일이다. 여성스러움이든 남성스러움이든, 성별에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라면 아이아빠의 잘못된 통념을 제대로 짚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간지러운 곳은 피하고 그 근처만 이리저리 긁다 만 듯한 기분이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성차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곁들여 잘못된 고정관념을 없애려 했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역효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논제가 되는 한 문장을 말하고 바로 그 뒤에 대치되는 과학적 증명을 곁들이는 식으로 하여, 읽다 보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역할놀이를 강조하지 마라-그러나 강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뇌의 구조상 생태적으로 역할놀이를 선택하게 된다-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의 성 유형화를 고착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의 논법은 산만하고 어지럽다. 결국은 같은 내용의 동어반복이었고, 불필요한 말들의 지나친 강조였다.
생각이 관습에 묶이지 않은, 성 유형화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목차만 읽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반쪽짜리 육아는 반쪽짜리 엄마에게서 나온다. 그 외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