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나왔지만 어째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읽으면서 뒷장으로 갈수록 나도 마음이 찡-해졌으니까. 사실 '아직 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이 글이 씌여졌다기보다는, 철이 들어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위해 씌여진 것 같다. 딱히 철이 든다기보다는, 최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상황상황이 이해되고 아기-소년-어른-노인으로 진행되는 인간의 삶을 조금이라도 어림할 수 있어야 이 책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이 어렵지는 않다. 부모가 어떠한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가를, 되풀이되는 자장가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우리는 절로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이런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으랴. 부모인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를 낳았을 때, 그리고 그 아이를 지금까지 키우면서 있었던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된다. 그리고 뒷장에 이르러서는 우리 부모 역시 그랬으리라, 늙어 혼자 몸도 편치 않으신 지금에도 여전히 자식걱정이 앞서는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부모와 아이로 연결되는 사랑 속에 인생의 흐름을 담아낸 좋은 책. 꼭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책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부모 된, 그리고 부모를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책장에 꽂아둘 만한 책이다.
아이들이 보는 눈이란 정말 어른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 책이다. 독자서평과 더불어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이 좋아 구입했는데, 첫눈에 그림도 별로인 것 같았고 내용도 두돌 갓 지난 우리 아기에겐 무리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로 열심히 읽어주려는 노력도 안한 채 '이건 좀 나중에 읽어줄 책이구나'하고 책장에 꽂아놓았는데 며칠 뒤 우리 아기가 책 읽어달라고 이 책을 내게로 가져왔다. 각기 다른 색깔의 크레파스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다소 어지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였다.한 예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책은 내용과 그림이 이 책보다 더 쉽고 재미있는 느낌인데도 아이는 그 책은 안 보려 하고 (아직 좀 어려워하는 듯) 이 책은 본다. '크레파스'라는 소재의 친근함이 큰 몫을 했을 터이지만, 그보다도 이야기가 상상력이 넘치고 창의적이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크레파스 통안에서 작은 크레파스들이 답답하다며 뛰쳐나와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까만 크레파스의 화려한 반전이 있는 이야기.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기에 그만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눈에는 여전히 그림이 흡족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연히 서점에서 보고 사게 된 책. 나는 그림책을 고를 때 제일 먼저 그림을 보고 (그림이 어수선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책을 펼치고 싶지도 않다) 그 다음엔 글이 어떤지를 본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글은 너무 길거나 설명적이면 지루해지기 마련. 간략하면서도 그림과 잘 어우러져 있고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재미있으면 합격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글과 그림의 조화, 그리고 소재의 기발함으로 충분히 합격점 이상이었다.일단 그림의 선이 깔끔하고 주인공이 되는 동물이 페이지마다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보는 느낌이 시원시원하다. 거기에 각 페이지마다 대화체로 이어지는 문장들이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읽어줄 때 재미있는 리듬을 타게 한다.'에그, 이게 뭐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나? 아니야. 내가 왜?''내 똥은 이렇게 생겼는 걸''똥'이라는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는 소재를 통해 아이들에게 동물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또한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동물들과 그 동물들의 똥을 자연스럽게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크기'의 대비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도 이 책의 매력. 너덧살 이상의 아이들이라면 깔깔대고 무척 좋아할 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와 함께 똥의 매력에 푹 빠져보기로 하자.
<키친>을 다 읽고 책을 빌려주었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고마워, 다 읽었어''응, 어때?''깔끔하네. 상당히 감성적이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해''그렇지?...'사실 동생이나 나나 무슨 문학적 심미안이 있다고 아는 척을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끼리의 대화가 이렇게 문 밖으로 나온 것은 이 책이 한번 읽고 잊어버릴 만큼 가볍지는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가볍지 않아서'가 아니라 '잊어버리기 싫어서'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요 몇 년간 바깥세상에 눈을 감고 살았던 나는 <키친>을 읽기 전에 이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무심히 답답했던 속이나 풀자고 집어들었던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바나나? 이름 웃기네' 하면서. 작가에 대한 기대가 없었으므로 이 책에 대한 별다른 기대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내게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키친>은 줄거리로 기억되는 책이 아니다. 모든 책들이 읽힐 때는 줄거리를 따라 읽히지만 그 모든 책들이 그것의 줄거리로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 책을 줄거리로만 파악하고 따져 생각한다면 소녀적인 감성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해놓은 연애소설 정도로 조금쯤 우습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키친>의 세 이야기 중 맨 마지막에 나오는 '달빛 그림자'는 슬픔을 느끼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이 꽤나 감성적이다. 보다 설명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져 있달까. 그래서 오히려 담백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보다는 '키친'이나 '만월'이 훨씬 나이들어 보이고 (작품도 나이로 보자면) 세련되어 보인다.슬픔을 표현하는 방식,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내가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가장 주의깊게 보는 대목이다. 특히나 이 책은 '죽음'이라든가 '인간 본연의 고독' 같은 것을 밑그림처럼 배경에 깔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분명 경쾌한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키친>을 읽으며 우리는 우울해지거나 침울해지거나 하다못해 답답해지지도 않는다. 문체는 일상적이고 단순하며 스타카토 창법으로 노래부르듯 톡톡 끊어진다. 말하자면 쿨하다. 그러나 흔히 쿨하다고 표현되는 '빠른 감각의 전환'과 '시선 돌리기'가 아닌 슬픔을 살짝 덧씌운 담백함 식으로 쿨하다. 정(靜)적인 담백함. 그리고 우린 그 담백함을 껌처럼 씹으며 여운처럼 남는 그 슬픔, 혹은 고독의 향을 즐긴다. 사실 '우리'라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이야기지만. 문득 어느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자 주인공이 어두운 밤 텅 빈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을 하던 장면이 있었다. 그녀는 물 속에 잠겨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왜 그러지? 걱정이 될 정도로. 그렇게 한참을 물 속에 들어가 있다가 후-하고 그녀가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그녀가 슬픔을 내면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울지도 않았고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씬이었다. <키친>은 어떤지. 일상의 모든 일들이 '굉장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별 일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적 같기도 하고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한' (본문 57p) 속에서, 우리는 매일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부산하게 시간을 떠나보낸다. 그들처럼. 세상속 모든 그들처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만2세에게 딱 맞는 책이다. 서점에서 보고 우리 아이가 좋아할 만 하다 생각되어 주문했는데 역시 우리 아이, 이 책 좋아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냥 흔한 정도의 그림책이라고 생각될 만도 한데 아이에겐 편하게 느껴지는 책이 좋은가보다. 책 크기도 손에 잡기 편하며 하드표지의 촉감도 좋다. 총 세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다. 그림도 귀여워서 사고 후회하지 않을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