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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르네 끌레망 감독, 알랑 드롱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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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들롱의 이 영화는 무척 유명한 영화이다. 알랭들롱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라고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근래에 맷 데이먼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상영하기도 했다. 나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리플리'를 먼저 본 다음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알랭들롱이 참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깍아놓은 것 같은. 우리나라의 장동건하고 비슷한 것도 같은, 그러나 더 깍아놓은 듯한 외모를 볼 수 있다. 잘생긴 남자는 남자에게도 매력을 끌 수 있는 것을 또한 안다.

 줄거리는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모욕을 주었던 친구를 죽인후 그의 재산을 탈취하고, 그의 친구도 죽이고, 그의 애인도 뺏으려다가 나중에는 발각된다. 그러나 리플리는 결말을 좀 다르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죄'가 아닐까? 한 사람의 증오와 질투가 가져오는 엄청난 죄성, 그 파장들을 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다. 누구나. 이것은 인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는 바이다. 저마다 자신이 죄를 짓는다는 것을 누가 부인 할 수 있을까? 다만 죄에 대한 상대성을 무기로, 나는 누구보다 덜 죄를 지었다고 하거나, 누구나 인정할 보편타당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자신안에도 그런 죄성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주인공의 완전범죄를 오히려 더 기대해주니말이다. 영화라고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나에게도 그러한 마음이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받은 모욕, 증오, 질투심. 이 모든 것이 함께 필립을 죽이는 그 범죄에 작용했다. 사람들은 내가 그런 모욕과 수모를 당했으니 그이상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죄인인 우리는 참으로 자기 방어적이다. 죄를 짓고 난 후에는 얼마나 간교해 지고, 계산적이고, 치밀해 지는지. 누구도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철저히 포장하고 철저히 숨기고 속인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이 모든 것들이 드러날 것이다. 행한대로 보응하시리라. 인생의 기준이고, 판단자 되시는 그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그분께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고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만 그 심판에서 건져질 것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바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내용을 기억하고, 성경을 상고하고, 성경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기초해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 같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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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일반판
볼프강 피터슨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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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보고 싶었던 영화다.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나서부터, 그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한번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아마 스펙타클하고, 스케일이 큰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돈을 좀 쓴 헐리우드식 영화를 좋아하나보다. 그만큼 돈을 들였으니 내 영화비로 조금 보태줘야지...이런 생각인가? 어쨌든 그런 영화는 가슴을 넓게, 포부를 크게 만드는 것 같다.
몇 명의 캐릭터가 나오는 데, 그 중에 브래드 피트가 맡은 ‘아킬레스’, 에릭 바나가 맡은 ‘헥토르’, 올랜도 볼룸이 맡은 ‘파리스’. 이 세사람이 줄거리에 축인 것 같다.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가 트로이를 침입하는 얘기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헬레나’를 데리고 간 것이 발단이 되었지만 아가멤논왕의 야심은 이미 그것은 건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왕의 야심으로 트로이를 침입하게 되고, 그리스의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는 참전하게 된다.

 아킬레스를 선봉으로 해안에 발을 디딘 그리스군은 또한 아킬레스의 불참으로 패배를 맡게된다. 그것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용맹과 지략 때문이었다. 헥토르는 꽤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 동생을 보호해 주고, 나라를 사랑하고, 수호하는 훌륭한 왕자였다. 그러나 가만있으면 퇴각할 그리스를 트로이의 잘못된 판단으로 공격을 해 버렸다. 신들의 제사장(트로이는 아폴로 신을 너무 잘 섬기고 있었다)의 판단과 왕의 판단은 신이 트로이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판단이다. 맹신은 위험하다. 신을 자기 이익의 수단과 방편으로 삼는 주관적인 신의 해석은 위험하며 잘못된 것이다. 신이 자기편이라는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잘못된 맹신은 국가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헥토르가 아킬레스의 사촌동생을 죽임으로서 헥토르와 아킬레스는 전투를 하게되고 헥토르는 전사한다. 헥토르의 장례를 기념하는 12일동안 그리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의 영내에 침입한다. 그를 통해 트로이의 왕과 백성은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에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가 발목을 맞게 되는데, 아킬레스의 건을 의식한 듯 하다. 겁쟁이였던 ‘파리스’가 남자로서의 구실을 한다. 브리시리스, 아킬레스가 사랑한 여인, 그 여인 때문에 다시 트로이 성안에 뛰어들었지만 죽음을 맞는다.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두 인물은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아킬레스의 리더쉽은 전형적인 전사의 카리스마다. 그것은 곧 실력에서 나온 영웅화이다. 아킬레스는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었으며, 왕도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그가 명령을 듣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한 일일 뿐이다. 그에게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없었고(존경받지 못한 왕, 명분 없는 전쟁일 시에는 더더욱),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이끄는 부대는 그의 진격에 따라가며, 그의 명령에 따르는 충실한 50여명의 군사뿐이다. 그러나 그를 통해 선발대가 승리하면 그 나라 전체가 승리의 순간을 앞두고 있게 된다.

 그러나 헥토르는 조금 다르다. 그는 형제애, 국가애, 가족애에 바탕을 둔 진실된 왕자로서 손색이 없다. 명분 없는 싸움은 싸우지 않으며, 갖게 된 전쟁에는 목숨 걸고 용맹하게 싸운다. 그는 전략적으로 지휘하며, 부하들의 신임을 받고, 앞서서 싸워나간다.

 두 장수 모두 앞서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러서서 명령만하지 않는다. 둘 다 선두에서서 직접 싸우면서 지휘한다. 그러나 헥토르는 리더로서, 왕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아킬레스는 훌륭한 장수로서 존재한다. 아가멤논은 그를 다스리지 못했다. 명분 없는 정복야욕은 그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헥토르의 지휘에 아킬레스가 있었다면 아마 그 시대를 평정했을 것이다.

 잘못된 종교심 또한 얘기할 만 하다. 트로이의 사제들 역시 계시를 받고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의 계시는 무엇인가? 전쟁에 질 것을 몰랐지 않았나? 잘못된 신, 자신의 전통에 따른 신, 자신의 이기심에 지원자로서의 신은 잘못된 것이다. 오직 약속과 그 약속에 따른 계시에 의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뿐이다.

 이시대도 전쟁은 계속된다. 과거엔 보이는 우상의 전쟁이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상의 전쟁이다. 헥토르의 모습과 같은 지키는, 수호하는 리더쉽,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군사, 지도자가 필요하다. 아킬레스와 같은 뛰어난 전사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상실한 목표는 위험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경륜과 역사에 방해될 수 있다. 옳게 분별하여 옳게 쓰임받음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뜨겁게 사람많이 모으고, 힘을 일으켜 내는 사람보다는 바른 삶의 모델을 보여주고, 바른 가치관에 따라, 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선을 이뤄내고, 그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세상이 통치되고, 사람들의 심성에 품어지는 구속의 나라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 나라가 오기까지 묵묵히, 한 걸음씩 주님의 시간을 구속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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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액츄얼리 - [할인행사]
리차드 커티스 감독, 리암 니슨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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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한마디로 휴머니티. 사랑 지상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로부터 근거를 두어서, 원천에서 나오는 사랑은 불완전하고, 채워지지 않는다. 정작 지금 당장은 강하고, 오래 지속될 것 같고 영원한 것 같아도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불완전한 죄성의 존재이기에 점차 이기적인 속성이 올라오고 그것 앞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그것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고, 그 사랑이라는 상대적인 논리 앞에 또 모두가 공감하는 주제이므로 이해해 주고자하고, 모든 대중문화의 대표 주자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내 스스로, 타락한 죄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죄성이 변화된 다음, 거듭난 다음, 성령의 역사로 내 자신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된 다음 나는, 또한 상대방도 진정한 사랑을 배움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사랑과 이 세상의 남편으로서의 사랑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순서는 먼저 변화된 다음 새로운 인종의 사람들 끼리,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성령의 교제가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젊은의 사랑(12-14세 초-중학생이상). 미국, 영국 애들은 부모와도 오픈open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섹스의 얘기도 농담으로 하고, 그 나라의 문화자체가 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표현을 하라는 말을 했고, 가슴에 묻어 두지 말고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있다. 그런데 마구 고백하는 것은 좋은 것일까? 건전한 고백과 건전한 교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이 결혼과 연관되지 않고, 그때의 느낌이나 감정 앞에 지배받아서 책임지지 않고, 자신이 책임질 필요도 없는 그 문화가 되면 흥청망청,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고, 나아갈 목표의식도 없다. 애들에게도 사랑은 할 수 있으되,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살되, 책임을 지는 삶을 살라. 성경이 말하는 성에 대해서 가르쳐 주라. 그리고 open 해서 자녀와 대화하도록 하라.

국경 없는 사랑 where 의 차이가 없는 사랑 , 수상과 비서와의 수직의 차이가 없는 사랑, 미국지상주의 현재의 환경을 넘어서면 더 나은 사랑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결혼한 친구의 아내를 좋아한 사랑 그 사랑도 고백하는 게 좋다는 책임질 수 없는 사랑, 그것은 이기적인 게 아닐까?  환경의 한계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자신이 맡아야할 책임이나 사명이 있는 가운데서 해야 하는 사랑, 이 사랑은 크리스천하고 비슷한 거 같다. 우리에겐 사명이 있으므로 같은 사명이 없는 사람과는 함께할 수가 없다. 사랑은 같이 하나의 미래를 보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자기에게만 집중하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많은 사랑,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었는데 크리스마스에는 그 사랑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이렇게 돼버렸나? 세상의 로맨티스트들이 기다려오고, 자기 마음껏 고백하고, 자기들끼리 즐기는 시간이 되었단 말인가? 아 슬프다. 아 안타깝다. 성탄절의 참 의미를 알고 싶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를 알려주고 싶다. 교회가 품은 이 깊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와 그 모든 사랑의 원천과 근원을. 그리고 그 근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할 사랑의 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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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한정판 - 일반판 + 싸인액자(동판+아크릴) + 스페셜북 + 엽서6종 + 양장본케이스 (3Disc)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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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로서 참 잘된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생각 안하고 봤는데, 주제의 문제의식, 감독과 각본자의 깊이있는 역사적 탐구와 그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잘 묘사했다.

 설경구,안성기,정재영 등과 조연들의 연기들은 실감있었고, 폭력적인 장면과 잔인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리얼하게 묘사하였고, 특수효과나 전투장면들은 한국영화의 차원을 한차원 높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성기가 마지막 장면에서 교육대장으로서 자기가 키운 병사들을 죽이는 임무는 참으로 가혹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 대처하는 방식은 불만이 좀 있다. 실미도 부대원이 듣게하고 교관들도 듣게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전쟁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나약한 리더쉽은 어떤것인가? 지도자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나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미리 더 대화를 하여야 끝까지 투쟁(鬪爭)해봐야 되지 않았을까? 내가 죽던지.. 참 모를 일이다. 어려운 문제다.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도 받는 다. 역사 왜곡이라. 역사는 항상 누가 해석하고, 어떤 사관에 의해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만 fact, 즉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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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징 레인스 - 할인행사
로저 미첼 감독, 사무엘 잭슨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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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일(사무엘 잭슨)과 벤 에플렉이 주인공이 된 영화다.

처음엔 차 사고로 저마다 법정에 가는 길목에서 늦어서, 또는 파일을 놓고와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분노를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탓하고 회개할 수 없는 딜레마같은 상황을 접한다. 해결하려 해도 어찌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모습앞에 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해결점은 자기들 끼리 찾아 나가게 될 수 있으며, 나중엔 인간이 그런 좌충우돌, 산전수전을 거친후엔 자기들끼리 공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하게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남겨둔다.

어떤이는 돈에, 어떤이는 알코올에, 어떤이는 재난에 빠져서 자신의 불행을 탓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채 살고 있는 현실, 그리고 참 복잡하고 분주하고, 한치에 양보도 없으며, 속고 속이고 물고 물리는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이런 영화를 어떻게, 어떤 관점과 입장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복음이 실제 사회에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여기서 얘기한 대로 하나님이 무관심하단 말인가? 하나님이 어떤 택하신 특정 존재에게만 관심을 가지기에 그 존재에게만 임하는 하나님을 기대한단 말인가? 딜레마다. 나도 어떤 대안이 없다. 하나님께 곰곰이 물을 수 밖에.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 복음의 이해, 대안제시가 아니라 시대를 품고 하나님의 시대를 향한 뜻과 말씀을 바르게 대언하는 사역자가 되야 한다. 주께서 아내도 함께 이런 고민을 하고 세워주시길 기도한다.

< 저는 사역자라 그런지 그런 관점에서 리뷰를 쓰네요.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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